그곳의 전도에서 우리의 선교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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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의 전도에서 우리의 선교를 보다
  • 홍승영
  • 승인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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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슴에 인도를 새겼다_두 번째 이야기
사진_홍승영
사진_홍승영

 

청년ㆍ청소년 집회로 분주한 방학 때면 ‘수련회 삼대식사’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저녁에 돈까스를 먹고 집회를 인도한 후에 아침에 짜장밥을 먹는다. 그리고 찾은 다음수련회의 점심식사로 카레덮밥을 만나면 비로소 수련회의 계절임을 실감한다. 인도에서는 언제든지 카레를 만났다. 점심식사만 세 번하는 수련회의 느낌이랄까! 작은 짐 가방을 들어내는 것도, 교회를 순회하며 낮선 성도들과 예배하는 것도, 계속 새로운 사역자들과 인사하는 것도, 빼곡히 들어앉은 사람들로 예배당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도, 모두 수련회에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시골 여관 같은 호텔에서 일곱 가지의 카레로 아침을 먹은 우리는 임대한 밴의 지붕 위에 짐을 싣고 선교지로 출발했다. 현지인 사역자들과 함께 고속도로와 비포장도로를 네댓 시간 달리는 동안 낯설지 않은 풍경이 지나갔다. 우리가 방문한 선교지는 주로 쌀농사를 짓는 시골이어서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휴대전화의 구글 지도가 우리가 가는 길옆으로 ‘힌두교 사원, 또 힌두교 사원, 그다음에는 회교사원, 그리고 다시 힌두교사원’을 표시하여 우리가 지금 인도에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그 외에는 어떤 건물도 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종종 보이는 개천의 물소와 그 옆에서 멱 감는 소녀들의 풍경은 생경했다. 

점심때쯤 도착한 새 예배당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 선교팀의 제일 할아버지인 원로목사님께서 마지막 남은 퇴직금으로 봉헌하시는 예배당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시골 예배당과 비슷한데 역시 인도 사람의 살색처럼 황토 빛이 돌았다.

1500만원의 적은 돈으로도 짓는다는 그 예배당이다. 입구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어 뒤편의 쪽문으로 돌아들어갔다. “이 많은 사람들은 새 건물의 손님으로 온 것일까?” 쪽문을 통해 들어가면서 그런 의문은 다 사라졌다. 예배당 안에는 삼사백 명이 열정적으로 찬양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님이 아닌 성도들이었다.

인도 시골 교회의 찬양은 인도자의 선창과 회중들의 합창으로 진행된다. 인도자가 한 소절을 부르면 회중들이 똑같이 따라 부르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통나무처럼 생긴 작은 북을 치는 사람이 있고, 더 큰 모임에서는 탬버린 같은 악기를 더한다. 이 예배의 연주팀에는 그 두 연주자 외에 손뼉을 치며 리듬을 인도하는 노인도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특별한 악기가 없고 악보나 글을 몰라도 아무 상관없는, 하지만 소스라치도록 열정적인 찬양이었다. 그리고 마이크가 없었다. 마이크가 없어도 들릴 만큼 성도들은 집중하고 있었다. 앞에서 찬양을 인도하는 이는 이곳에 처음 복음을 전했던 현지인 전도팀원 중 한 사람이었다. 잠시 찬양을 중단하고 그가 무엇인가를 말하자 회중석에서 한 여성이 일어났다. 아마 이 교회의 찬양인도자인 듯 했다. 그 자매가 찬양을 시작하자 리듬이 바뀌었다. 회중들은 이내 새 리듬을 타며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됐을 복음이 더 많은 일군들을 세우며 성장하고 있었다. 

신 목사님과 십여 년간 동역해온 현지인 전도팀이 수년 전 부터 이 곳 사마리 마을에서 복음을 전했다. 수십 명의 결신자가 있었고 가장 열정적이고 지혜로운 사람이 가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현지인 전도팀이 운영하는 신학원에서 매주 이삼일씩 수년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었다.

신 목사님의 교회와 미국의 선교단체가 건축하여 세운 신학교였다. 가정교회는 수백 명으로 성장했다. 성도들은 마을 어귀에 땅을 마련했고 원로 목사님의 헌금으로 자재를 구입해 직접 현장 일을 하며 교회를 건축했다. 전등은 달지 않았다. 밤에는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피아노나 오르간도 없다. 북과 탬버린의 찬양이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로는 강단으로 사용할 테이블과 천정에서 돌아가는 선풍기 석대가 전부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나는 벽에 바짝 붙어 앉았는데 옷에 페인트가 묻어나서 화들짝 놀랐다. 비로소 나는 1500만원 건축비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최소한의 비용과 현지의 문화, 그리고 성도들의 열망을 의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계속 찾아왔고 다 들어오지 못해 입구와 창문에도 수십 명의 현지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나는 “한 마을을 다 전도하면”이라는 말의 의미도 이해하게 되었다.[전문보기: 그곳의 전도에서 우리의 선교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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