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
상태바
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
  • 박주현
  • 승인 2019.0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은 평소 국제영화제에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도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영화를 선정하여 수여하는 황금종려상을 올해 한국 영화 〈기생충〉이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전작으로 〈살인의 추억〉 〈설국열차〉 〈옥자〉 등을 만들며 섬세한 연출력으로 정평이 나 별명이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인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며,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되었다. 이로 인해 국내 및 전 세계 언론이 떠들썩했으며 사람들은 마치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처럼 뿌듯해했다.

영화 〈기생충〉이 칸에 모인 전 세계에서 온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기생충〉은 영화에 대한 깊은 식견이 있는 전문가들만 이해할 법한 어려운 예술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굉장히 보편적인 주제인 부와 가난에 관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단순하고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봉준호 감독은 본인만의 방식으로 접근하여 색다르게 해석하며 비튼다. 다채로운 인물들의 여러 겹의 감정과 주제가 녹아 ‘봉테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게 매우 섬세하며 또한 기발한 전개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나간다.

[천만을 넘는 관객 수를 찍었지만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있음을 미리 고지하고 영화의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한다.]

이 영화에는 그동안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아오던 흔한 클리셰가 거의 없다. 탐욕스러운 부자가 가난한 자들을 향해 소위 ‘갑질’을 하며 괄시하면 착하고 가난한 이들이 연대하여 악한 부자를 물리친다는 뻔한 전개는 없다. 이 영화에서 부유한 박사장네(이선균 분) 가족은 입이 떡 벌어지게 크고 아름다운 집에 살며, 우아하고 멋지게 차려입은 부부는 항상 예의를 갖추고, 그저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할 뿐, 관객의 화를 돋우는 뻔한 ‘갑질’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난한 기택(송강호 분)의 4인 가족은 어떠한가? 이들은 좁디좁은 반지하에 모여 살며, 누구 하나 제대로 돈 벌 능력이 없어 피자 박스 따위를 접어서 푼돈을 겨우 벌어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들어가게 된 부잣집에서 사기를 치려고 똘똘 뭉치게 된다. 아들 기우(최우식 분)가 친구의 소개로 박사장 딸의 과외선생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시작으로 그가 여동생 기정(박소담 분)을 미술과외 선생님으로 소개하고, 아버지를 사장의 운전기사,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를 입주가정부로 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계획을 실행하는데, 과외선생으로 취직하기 위해 위조한 기우의 가짜 명문대 졸업장을 보며 아버지인 기택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가난한 기택의 가족은 불의를 일삼는 악인들이며, 타인에게 그리고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끼치지 못하며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 같은 존재인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인물 간의 갈등과 가족 간의 대립이 극으로 치닫게 되며 부잣집 정원에서 열린 생일파티가 난장판이 되는 장면이 있다. 극중 인물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개들이 꼬치에 꽂혀있는 고기를 핥아먹는다. 성경에서 거지 나사로의 종기를 핥는 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다. 그러다가,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 가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도 죽어서 묻히었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 (누가복음 16:19)

성경에서 부자가 나사로를 멸시하며 ‘갑질’을 행사했다는 대목은 없다. 그는 그저 자신의 돈으로 비싼 옷을 해 입고 호화롭게 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생전 나사로의 고통을 못 본 척 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직접적으로 나사로에게 피해를 주거나 조롱하지 않았을지라도,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나사로를 철저히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여기고 무시했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해 심판받게 된 것이다.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부자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이들은 우아하고 선한 사람에 가까워 보이지만 결코 선량하지 않으며, 층층이 나뉜 대저택의 모습처럼 주인인 박사장네는 철저히 기택 가족의 위에 군림한다.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기택의 가족들과 한 공간에 머물지만 부를 전시해놓은 듯한 호화로운 자신의 구역에 그들이 침범하는 것을 용납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가난을 ‘냄새’로 표현하는데 박사장은 기택에게서 가난한 ‘냄새’가 난다고 언급하고 이를 엿듣게 된 기택의 가족들은 모멸감을 느낀다. 이 영화에서 박사장네 부부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철저히 송강호의 가족을 멸시했으며, 그들에게 어떠한 선의도 베풀지 않는다.

물론 기택의 가족이 했던 ‘기생충’ 같은 나쁜 행위들도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이웃을 자신들의 발 아래로 보며 멸시한 부유한 박사장네 부부 또한 결코 선한 이들로 여겨질 수는 없을 것이다. 부자인 박사장네 부부나 가난한 가족 모두 죄의 본성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부자 부부는 거기에 선한 사람인양 남을 속이고 어쩌면 자신들마저 속이는 위선의 죄까지 짓고 있는 것이다. 부를 과시하며 자신들의 세상이 전부인 양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지탄받고 있는 이유와 닮아있어서 씁쓸하다.

박사장네 부부는 기택 가족의 어려운 사정을 돕지 않으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밤, 정원에 세워둔 박사장네 꼬마의 (해외 직구한) 고급 인디언 텐트는 끄떡없이 서있지만, 기택의 반지하 집은 물에 잠겨 모든 것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다. 임시처소에서 처절한 밤을 보낸 기택의 가족을 자기 아들의 생일파티에 초대하는 연교(조여정 분)의 행동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들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상하관계에서 ‘을’인 기택의 가족은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때 기택과 가족들의 심정이 얼마나 처참했을지는 생일파티에서 인디언 모자를 쓰고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기택의 복잡하고 참담한 표정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박사장네 부부의 이기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저택 정원에서 칼부림이 나 기정(박소담 분)이 칼에 찔려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박사장네 부부는 기절한 자신의 아들만 챙겨서 도망가려고 피 흘리고 있는 딸 곁에 있는 기택에게 차를 운전하라고 소리친다. 물론 박사장네 부부는 기정이 기택의 딸인 것은 모르고 있었지만, 진짜 선한 이웃이었다면 피 흘리며 누워있는 기정을 먼저 도우려는 약간의 제스처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이와는 대조적으로 박사장네 딸은 자신이 좋아하는 과외선생님인 다친 기우를 업고 밖으로 대피하고 있다.

이렇듯 이들 부부는 일말의 이타심도 동정심도 없이 자신들이 가진 것만을 지키려고 하는 죄인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선과 이기심, 그리고 이웃에 대한 근원적 무관심까지, 이런 모습이 진짜인 박사장네 부부는 선한 이웃이 아닌 죄인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메시지가 명확한 종교영화는 아니다. 박사장네 부부가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한 기택의 가족을 돕고 선을 베풀었다면 재미없는 영화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황금종려상도 수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나 이 영화에 보며 이웃을 대하는 태도와 죄에 관하여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이웃들의 마음과 상황을 헤아리고 그들의 어려움에 동참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영화 〈기생충〉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으로 한시도 지루할 겨를이 없는 재미있는 영화이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복잡하고 구조적인 관계로 나뉘어 있는 동시에 얽혀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영화적 재미를 느끼지만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어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분양 아파트와 임대 아파트를 단지 내에 함께 조성하자 분양 아파트 입주민들이 임대아파트 입주민들을 차별하고 적대시한다는 뉴스가 들려오는 요즘 같은 세상에 우리가 함께 조금 더 평화롭게 공존할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CTK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