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라는 선물로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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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라는 선물로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 이진경
  • 승인 2019.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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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토요일 

7월 25일 목요일 새벽은 잊히지 않는 순간일 것이다. 새벽 1시경 눈이 떠졌다. 오른쪽 가슴이 무척 딱딱하게 느껴지고 불이 나는 것 같은 뜨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왼쪽과 비교하여 만져보니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아, 몇 주 전인가, 한 달 전인가 좀 이런 증상을 보였었는데, 그땐 그냥 넘어갔었지.


넘어간 건,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게 병, 정확히 말해서는 암이라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암이 이렇게 갑자기 커질 리 없어,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주기 때문에 자연스레 생겼다가 사라지는 그런 거겠지, 하고 넘겼다. 아니, 넘기고 싶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겠다.
게다가 우리 집안에는 가족력이 없었다. 요즘,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을 종종 보았어도 그게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니, 나에게 해당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암에 걸린 젊은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깊이 침잠되는 것은, 아주 솔직히 말하면, 그에 대한 걱정보다는 나에 대한 걱정이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새벽에 눈을 떠서 가슴을 만져보고 나는 그때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나는 최근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왜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디폴트(기본값)로 생각하여 감사하지는 않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것을 원망하고 불평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숨 쉬고 먹을 것을 먹고 마실 것을 마시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화장실 다녀오고,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디폴트가 아니라 우리에게 거저 주어진 특별한 선물임을 깨달으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며 원망할 근거를 찾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래서 나는 일상의 모든 것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었다. 새로운 일터에서 수업을 들어갈 때마다 이 수업이 예배와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좋은 일터를 만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에 감사했다. 내 주변의 좋은 벗들과 신앙의 동반자들로 인해 감사했다. 심지어 걷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숨을 쉬고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새벽의 기도 때 나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더욱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지금까지 건강했던 것, 그래서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 너무도 감사한다고.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기도를 하면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마음엔, “괜찮을 거야”라는 속삭임과 함께 깊은 평안이 흘렀다. 그 “괜찮을 것”이라는 마음은 내가 반드시 병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괜찮음”이었다.


나 역시 “이것이 절대 암이 아니게 해 주세요” 라는 기도를 감히 드리지 못했다. 그럴 마음의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염치없음을 휘두를 수 없었다.


주무시고 계시는 엄마에게 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침대에 앉자 엄마는 “왜? 왜? 무슨 일 있니?” 하고 놀라 벌떡 일어나셨다. 엄마는 내 가슴을 만져보시더니 당장 화장실부터 가셨다. 엄마는 마음이 불안해지면 화장실에 가시는 습관이 있다. 아침이 되면 곧바로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다.


나는 내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이상하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엄마가 내게 다가오셨다. “엄마, 내가 그동안 짜증낸 거 정말 미안해. 그래도 내가 얼마나 엄마 사랑하는지 알지? 그리고 난…사실 엄마랑 똘이(우리 강아지)가 나보다 먼저 죽을 게 많이 두려웠었어…. 그게 자연의 순리일지라도…. 그래서…난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다 싶어…. 누가 내 앞에서 아프고 먼저 죽는 거, 이제 못 견디겠거든….” 엄마는 가만히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셨다. “그리고…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거 많이 하고, 잘 놀았던 것 같아. 유학도 가보고, 온갖 여행도 다녀보고, 많이 배우고…재밌었어…. 돈만 버는 삶을 살지 않았던 게 다행인 것 같아….”


내 입에서 저절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었었고, 그런 삶을 추구했다. 순간순간 흘러가는 삶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간혹 내 안의 욕심과 욕망에 걸려들어 우울 가운데 있었지, 나는 누구보다 삶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건, 죽음에 대한 책을 세 권 쓴 경험이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온몸을 통과시켜 어떤 생각을 낳는 것인데, 시한부 암환자였던 두 명의 주인공에 대해 죽음을 주제로 책을 쓰고, 죽음에 대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2016년 말 무렵부터 시작한 영성 지도 모임에서 이런저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죽음에 대한 대화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믿는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이며, 그 부활의 의미를 다루기 위해서 죽음을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죽음? 생각보다 대단한 게 아니네? 죽음? 그건 나쁜 게 아니네?’라는 생각이 점점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들어올 무렵이었다.
종합병원엔 갈 수 없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인의 소개로 개인병원에 갔다. 예약 환자인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의사선생님은 나보다 더 긴장하시고, 나보다 더 힘겨워하시는 것 같았다. 일단 만져보더니 크기를 말씀하시고 대략 어느 부분에 걸쳐 있다고 하셨다. 그런 후 초음파에 들어갔다. “무서워요….” 내가 말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저도 무서워요….” 하셨다. 그 선생님의 공감 한마디에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다. 이 분야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분의 공감은 참 큰 힘이 된다. “음…평범한 건 아닌 것 같네요. 암이라면 독특한 암이에요….” 하시면서 계속해서 초음파를 보셨다.


초음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내 눈을 잘 맞추지 못하셨다. “소엽암이라고, 바닥에 깔려 있다가 불꽃처럼 팍팍 튀어 오르는 암이라서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크게 되었을 때 발견하게 되는 암이 있어요. 암이라면 그것인 것 같네요.”
“염증일 가능성은 없나요?”
“지금으로선 거의 없어 보여요.”


당시 두 주 정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허물어질 정도로 크게 피곤했는데, 아마도 암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조직검사를 응급으로 맡겼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가장 먼저, 나는 나와 소모임을 함께하는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알렸다. 누구보다 침착하게 대응해주시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알려주실 수 있는 분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올바른 영성의 관점에서 해석해주시고 함께해주실 분이 필요했다.


건강도 우상이 될 수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건강을 잃었다고 해서 울부짖고 슬퍼하고 죽을 것같이 고통하고 계속 우울해하는 것은, 죽음을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산다’고 하면서도 왜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할까, 의아했었다. 살 때는 살아서 즐거워하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면 이제 고락이 없는 영원한 평안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에 기뻐할 순 없을까. 내가 그런 경지에 들어갔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어찌됐건 우리의 모든 선조들은 다 죽었다. 이르건 늦건 죽긴 죽는다는 엄연한 진실 앞에, 죽음을 그토록 두려워할 건 뭔가.


그러나 나는 그 생각보다, 사실 지금은, 암이라면 앞으로 겪을 치료 절차가 두렵다. 어쨌든 몸으로 직접 겪어낼 것이 아닌가. 어제, 가까운 지인 중 같은 암을 먼저 겪어내신 환자분께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지금까지의 치료 절차들을 들었다. 그분은 워낙 유머러스하게 얘기하시는 분이라 적잖이 웃겼는데, 내가 바라는 바도 “아프더라도 유머러스하게 아프자”는 것이다. 그러나 4기만 초대될 수 있다는, 초대가 아니면 들어올 수 없다는 밴드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분의 4기는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전이됐다’는 말 자체만으로도 온몸이 두려움에 흔들릴 정도였다.


일단 잤다. 잠을 많이 자면 좋다는 말에 “제 별명이 잠의 신이에요. 잠은 걱정 없어요”라고 했지만, 아프면 잠도 못 잘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나는 현실을 깨닫고 내 가슴을 부여잡고 기도했다. “하나님, 되도록이면, 암이 아니면 좋겠어요. 주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기적이라도 좋으니, 아니면 좋겠네요.” 아직도 내 가슴은 묵직하니 무겁고, 딱딱하고, 열이 느껴진다. 나는 그 안에 있을 뭔지 모를 그것을 따뜻하게 감싸 안고 말했다. “나는 너도 사랑해. 한 사회 안에 암적인 존재도, 사랑을 못 받아서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잠식하는 거잖아. 꼭 그렇게 되고 싶진 않았을 거야. 난 너를 사랑해줄게. 그러니 너무 퍼지지 말고 일단 그 자리에 있어다오”라고.


가까운 친구는 벌써부터 나에게 온라인으로 좋은 채소를 배송해주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모두 기도해주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나보다 더 큰 존재와 연결될 때만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데, 그리고 사랑으로 다른 존재들과 연결될 때만이 그렇게 되는데,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믿음을 일찌감치 주셔서 감사하다.


어떤 상황이 되건, 당당하고 유머러스하게 지나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생명은 가장 먼저는 몸에 있지만, 가장 깊이는 영혼에 있다. 어떤 상황이 되어도 영혼에 생명이 가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 가득한 영혼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내 삶 전체가,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그토록 내게 많은 사랑과 은총을 쏟아부어주신 하나님께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다.[전문보기: 암이라는 선물로 노래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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