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는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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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는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 조 카터, 테드 클럭, 매트 모린
  • 승인 201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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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이종격투기, 참가나 시청은 도덕적으로 옳은가
ufc.com

 

1. 현명하지 않다

100여 년 전 출간된 찰스 쉘돈의 소설「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는 예수가 무엇보다도 상금을 놓고 벌이는 권투 시합에 반대하실 것이라고 믿게 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소설은 역대 베스트셀러 9위에 올랐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론들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What Would Jesus Do, WWJD) 운동으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은 WWJD가 새겨진 팔찌를 차는 대신, 격투기 시합에서 상대방에게 항복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인 탭(상대방, 자신의 몸, 혹은 바닥을 두드리는 행위로 시합 포기를 의미한다/역주)이라는 용어를 써서 “예수님은 탭을 하지 않았다”는 문구가 크게 쓰인 티셔츠를 입는다. 일부 교회들은 젊은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종격투기를 사역에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종격투기 최후 승자를 일컫는 “얼티미트 파이터”에 초점을 둔 사역은 젊은이들에게 성경적 남성성에 대한 왜곡된 견해를 제시한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온유하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야생동물을 길들일 때 사용하는 단어다. 즉,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누울 수 있는 이유는 사자가 자신의 공격적 성향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복음에 나타난 선한 목자를 이종격투기의 초남성적 이상형에 꿰맞추기는 어렵다. 예수님이 목수였으니,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치고받으며 싸우다가 어느 한쪽이 쓰러져 어쩔 수 없이 항복을 외치는 시합을 즐겨 봤을 것이라고 단정하려면 상당한 논리 비약이 필요하다.

‘무술’(martial arts)이라는 용어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을 일컫는 라틴어 ‘마르스’(Mars)에서 유래했다. 역사적으로 무술 훈련의 주요 목적은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도 이것이 가장 합법적인 이유다.

군복무 시절 해병대 무술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전사(戰士) 정신’ 함양이 목적이었다. 이런 훈련은 필요할 뿐 아니라 윤리적이다. 만약 기독교 전통이 정의로운 전쟁을 지지한다면, 무술로 군인을 훈련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제외하고 격투 스포츠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봐야 할 다른 경우가 있을까?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격투 스포츠가 비도덕적으로 비춰지는 한 경우만 떠오른다. 바로 격투 스포츠를 엔터테인먼트로 여기는 경우다.

1993년 출범한 얼티미트파이팅챔피언십(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UFC)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종격투기 대회다. UFC는 “그 어떤 수단도 허용”하는 무규칙이 규칙이라며 경기 중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광고한다. 심지어 선수가 사망할 수도 있다고 선전하는데, 실제로 2007년부터 지금까지 두 명이 사망했다.

사망 사건 직전에 이종격투기를 미 전역에서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UFC 대회를 “인간 닭싸움”이라고 비난했다. 결국 UFC 측은 시합의 잔인성을 낮추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이종격투기는 비교적 순화된 형태로 발전하면서 부적절한 정당성을 획득했고 점점 주류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나갔다. 하지만 격투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종격투기의 목적은 여전히 상대방이 복종할 때까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가격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복종하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다. 이종격투기의 도덕성이 논할 만한 가치가 있든 없든, 분명한 것은 이종격투기에 참여하거나 시청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며 값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고전 6:19-20).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의 책임 있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 몸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은 파이터들이 피투성이로 초죽음이 될 때까지 서로를 두들기는 것을 구경하며 여유 시간을 보내는 데 있지 않다.

 


조 카터(Joe Carter). 해병대 출신으로 뉴욕에 위치한 ‘종교와공공생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에큐메니컬 저널 <퍼스트팅즈>(First Things) 온라인 에디터.


 

 

2. 그게 우리 삶이다

나는 권투 선수다. 「타이슨에 맞서 싸우기: 파이터 열다섯 명과 열다섯 가지 이야기」(Facing Tyson: 15 Fighters, 15 Stories)라는 권투에 대한 책도 한 권 썼고, 지금 한 권 더 집필 중이다. 또한 그리스도인 헤비급 권투 선수의 매니저로서 선수와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권투도 자주 한다. 며칠 전에는 10라운드로 계획한 스파링 중에 9라운드에서 선수가 내 얼굴을 가격해 상처를 냈다. 출혈이 심한 것을 보더니 그는 내 얼굴에 수건을 대고 지혈을 해줬다. 우리는 좋은 친구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격투 스포츠에 대해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나누기 위해서다.
개인적으로 이종격투기를 보지는 않는다. 선수들이 철망을 엮은 우리에 들어가 싸우는 것이 권투보다 아름답지 않고, 좀 재미없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이종격투기에 분노하고 율법적으로 판단하려면, 프로 미식축구나 대학 미식축구, 내가 아끼는 권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미식축구 선수였을 때 경기장이나 탈의실에서 벌어진 사건들은 권투나 격투기 쪽에서 겪었던 어떤 일보다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훨씬 더 잔인했다.

선수 시절에는 코치한테 큰소리로 혼도 나고, 욕도 먹고, 창피도 당하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정도로 심하고 위험한 훈련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미식축구가 좋은 이유는 경기 속에서 용기, 희생, 팀워크를 통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낼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이용해 경쟁하며 즐거움을 얻기 때문이다.[전문보기 : 이종격투기는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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