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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선이 광야에 머물다아무도 당신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을 때 그분의 눈길을 기억하라
리즈 커티스 힉스  |  Liz Curtis Hi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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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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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여인들_하갈] [창세기 16:1-13] 일러스트레이션 신을련 이 이야기는 기원전 1900년, 두 여인의 날카로운 신경전으로 시작한다. 줄거리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비슷한데 둘 다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야기의 주인공 하갈을 만나기 전에 먼저 살펴봐야 할 인물이 있다. 바로 아이를 간절히 원했지만 아이 없이 나이가 들어버린 하갈의 여주인 사래다. 사래가 얼마나 아이를 바랐는지는 남편에게 했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창16:2). 맙소사! 주인이 여종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은 고대 가나안 사회에서 익숙한 관습이었지만, 사래는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여실 것을 믿었어야 했다. 사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여종 하갈을 아브람의 침실로 밀어 넣은 것이다. 뒤바뀐 상황 하갈은 아브라함과의 동침을 역전의 기회로 삼았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 여주인을 깔보았다”(창16:4). 거만해진 목소리와 과장된 몸짓, 멸시가 담긴 손짓은 우리가 위 영화에서 익히 본 모습이다. 아브람은 둘 사이의 문제에 끼어들기를 거절하며 사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창16:6). 안타깝게도 사래는 하갈을 못살게 굴었다. 어떤 성경 번역은 사래의 행동을 더 강하게 표현한다. “사래가 하갈을 학대했다”(창16:6).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하갈을 대하는 사래의 태도가 정도가 지나친 폭력이었음을 확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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