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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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하면 된다
  • 홍승영
  • 승인 201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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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의 쿠키 영상에서 우리의 다음 편을 기대하다

가을이면 우리가 가진 숫자로는 결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나뭇잎이 떨어진다. 놀랍게도 그 수많은 나뭇잎이 제각각 다른 색의 아름다움을 내보인다.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을 고안하셨을까! 하나님께서 고안하신 기막힌 것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주신 방법이다. 창조주의 위대한 말씀을 피조물의 인생 속에 담아 내신 것이다.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 자신의 삶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만일, 어느 이단 종파가 말하듯이, 성경이 ‘금 상자에 쌓여서 하늘에서 내려왔다면’ 더 신비로울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삶을 오롯이 반영하여 낼 수 있는 묘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간 저자의 삶을 통하여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그대로 울림이 된다. 성경은 그런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늘 청년으로 기억되는 마가의 이야기도 그렇다.

예루살렘의 유력한 집안 아들이면서도 그의 가정 이야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요한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이 있으나 마가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더 알려졌다. 어머니는 마리아인데 아버지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일찍 여의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그의 집이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공동체를 이루었던 것과(사도행전 12:12) 인정받는 교회 지도자였던 바나바의 사촌이라는 정도다(골로새서 4:10. 개역성경이 ‘생질’로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대개 사촌으로 이해된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가두었을 때 간절한 기도회가 그의 집에서 열렸다. 그 시기에 안디옥 교회의 구제헌금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바나바와 바울은 귀환할 때 마가를 데려갔다. 당시 안디옥은 로마제국 제3의 대도시였다. 예루살렘과 같은 변방에서 대도시로 가는 청년들은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다. 사실 나 자신도 산골 소년이었다가 열아홉의 나이에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목사가 되기 위해 도시에 왔고 도시 교회의 목사가 되어 도시살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마가의 도시살이는 급하게 끝났다. 안디옥 교회가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한 것이다. 역사상 공식적인 첫 선교팀으로 기록되는 그들은 마가(요한)를 동역자로 데려갔다(사도행전 13:2,5. 개역성경이 ‘수행원’으로 번역한 단어는 비중 있는 조력자를 의미한다). 팀의 리더였던 바나바는 선교팀을 자기 고향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마가의 멋지고 교육적인 도시살이는 중단되었다. 그들은 동서로 200킬로미터가 넘는 구브로 섬을 가로지르며 복음을 전했다. 경기도만큼이나 넓은 면적의 섬 길을 따르는 그 사역이 얼마나 고되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구브로는 아름다운 섬이다. 산이 많기 때문이다. 100킬로미터 길이의 산지가 펼쳐지고 가장 높은 곳(1,951m)은 한라산만큼 높다. 그 섬을 동쪽으로 들어갔던 선교팀은 서쪽 끝의 항구를 통해 빠져 나왔다. 70킬로미터쯤 항해한 배가 도착한 ‘항구 버가’에서 마가는 선교팀을 떠났다. 더 이상 고된 길을 가고 싶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안디옥으로 돌아가지 못했음은 면목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집이 있는 곳으로! 바울이 디모데에게 썼던 것처럼 ‘신앙생활에 파선을 당한’(디모데전서 1:19)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사역에는 파선하고 말았다. 차라리 그 여정에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까?

우연히 인터넷에서 ‘더 나았을까’라는 말을 검색하게 되었다. ‘말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았을까’나 ‘차라리 내가 하면 더 나았을까’ 같은 불확실성의 글이 쏟아져 나왔다. 물건을 사는 것이나 전공을 선택하는 일, 직업과 만남에 대한 의문도 많았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는 다양한 변수의 안타까운 사연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한 이야기, 삶의 생채기들이여! 그 회한의 글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배 안에서 고개를 쳐 박고 있을 마가의 초상肖像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후회조차도 마음껏 하지 못했다.

사역을 하다 알게 된 지인이 한 청년을 소개했다. 등 떠밀려온 그에게서 마가의 낯을 보았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십 수 년 동안 사랑해왔던 사역을 그만 둔 상태였다. 이십대 초반은 신비하리만큼 몰입하는 나이다. 마음이 통하면 그곳에 바위의 따개비처럼 올라앉는다. 그런 친구들 십여 명이 함께했다. 바위 같았던 그들의 리더는 말을 잘했다. 요즘 말로 ‘비전 캐스터’였다. 팀원들은 그가 던지는 비전에 사로잡혔다. 가난하고 고된 사역이지만 의미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십년이 좀 지났을 때 그들에게, 정확히는 리더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만두어야 했다. 자신의 모든 과거가 부정되는 것을 느꼈다. 신비함의 시간을 지나서 현실에 가까워진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공황恐慌이었다. 모든 판단은 자책에 갇혀버렸다. [전문보기 : 다시 출발하면 된다]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49:22) 세상에 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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