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가르치신 ‘용서’
상태바
주님이 가르치신 ‘용서’
  • 자끄 뷔숄드 | Jacques Buchhold
  • 승인 2019.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의 용서는 하나님의 용서의 원인이 아니라 조건이다.

용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다. 그래서 용서는 상식에 어긋나며 현실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용서는 결국 불공평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우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자. 잘못을 저지른 형제를 부모님이 너무 쉽게 용서해 준다면, 피해를 입은 내 입장에서 볼 때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이런 반대의 목소리 때문에 용서는 더 더욱 어렵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전혀 무감각할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도 용서하려고 애쓰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또 하나님께 억울한 사정을 다 고백하여 그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고는 내면에 생긴 미움을 막연하나마 잊어버리려는 유혹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용서하는 이유를 올바로 이해할 때, 용서에 대한 거부감이나 심리적 부담감,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면 비로소 마음속에서 용서하려는 의지와 힘이 생기게 된다.

“아버지여…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이 기도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가 왜 용서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신다.

 

바람직하지 않은 동기

용서의 여러 동기들 중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용서할 때 가장 흔히 마음에 품고 있지만 고백되지 않는 동기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이해타산일 것이다. 이런 동기를 가지고 용서하는 사람은 진리나 하나님 나라의 의를 찾기보다는 다만 용서를 통해 얻게 될 이해관계를 따진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복종과 포기의 방식을 통해 무조건적으로 용서하는 듯 보인다. 그들은 일종의 ‘굽실거리는 정책’을 취한다. 사실 책망하기보다는 ‘용서하기’가 더 쉽고, 투쟁하기보다는 ‘침묵하기’가 더 쉬우며, 징계하기보다는 ‘무죄석방하는 것’이 더 쉽다.

비기독교적인 용서의 또 다른 동기에는 원한이 있다. 사실 이런 유형의 ‘용서’는 가해자를 미워하기 때문에 취한 하나의 전략에 불과하다.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를 비난하는 아내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용서’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엄격한 절차를 따르게 해 곤욕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내면에 숨겨져 있어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사실 지배하고 복수하려는 욕망으로 용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용서는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세 가지 용서의 동기는 확실히 비기독교적이다. 이런 동기는 심지어 진정한 용서를 방해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이해타산 때문에 용서하거나, 포기하듯이 무죄 처리하며, 복수심을 숨기면서 애써 관용을 베푸는 행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왜 제사장 엘리는 심지어 성전에서까지 못된 짓을 하는 아들들에게 그처럼 관대했을까?(삼상2:15, 22)

왜 다윗은 아들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뒤에도 그를 징계하지 않고 방관했던 것일까?(삼하13:21) 다윗이 군대 장관 요압과 사울의 아들 시므이에 대해 애초에 용서하고자 작정한 마음에서 급작스럽게 복수의 마음으로 돌변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왕상2:5-9) 근친상간한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여전히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고린도 성도의 태도는 무엇 때문인가?(고전5:1-5)

이런 사례들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는 우리가 하는 용서가 긴장완화 정책, 굽실거리는 정책, 교란 정책 따위로 어설프게 하는 용서와 혼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용서는 쉽지 않다. 오직 건전한 동기, 곧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영의 생각”(롬8:6)을 가지고 용서할 때, 아픔도 있고 시간도 걸리더라도 우리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용서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용서하길 원하시기 때문이다. 곧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닮고자 하는 동기에서 우리는 용서를 한다(모방의 동기). 둘째,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용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감사함으로 남을 대하는 것이다(감사의 동기). 셋째,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남을 용서해야 한다(필요의 동기). 이 세 가지 중  가장 난해하고 혼동하기 쉬운 세 번째 동기를 살펴보자.  

 

 

하나님께 용서받기 위해서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신약과 구약 사이에 저술된 유대 문헌을 살펴보면, 용서를 얻기 위해 용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글을 찾을 수 있다. 기원전 190-180년 벤 시라Ben Sira가 기록한 ‘집회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원망과 분노도 가증스러운 것이니 죄인이 좋아하는 것이다. 보복하는 자는 주님의 보복을 받을 것이며 주님께서 그의 죄를 엄격히 헤아리실 것이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면 네가 기도할 때에 네 죄도 사해질 것이다.

자기 이웃에 대해서 분노를 품고 있는 자가 어떻게 주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남을 동정할 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자기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할 수 있겠는가? 자기도 죄 짓는 사람이 남에게 원한을 품는다면 누가 그를 용서해 주겠는가? 네 종말을 생각하고 미움을 버려라. 한번은 죽어 썩어질 것을 생각하고 계명에 충실하여라. 계명을 생각하고 네 이웃에게 원한을 품지 말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계약을 생각하고 남의 잘못을 눈감아 주어라.(27:30-28:7)

복음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러한 용서의 동기에 아주 특별한 위치를 부여하신다. 물론, 앞서 살펴본 것처럼, 모방의 동기(눅6:36-37)와 감사의 동기(마18:23-34)도 용서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다. 이 동기들에 더하여, 예수님은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통해서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형제를 용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신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예수님의 이 말씀에 의하면, 형제 사이의 용서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모든 관계에 영향을 주며, 우리의 가장 긴밀한 표현인 ‘기도’의 조건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오직 용서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신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막11:25)

또 주님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형제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의 예물만을 기뻐 받으신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주기도문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다룬 유일한 기도 제목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이다. 독일 루터교 신학자 요하임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는 이 기도는 “주기도문 중에서 인간 행태에 관해 유일하게 다룬 것이지만 뜻밖의 내용은 아니다…다만 약간 어색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이 기도를 특별히 강조해 부연 설명을 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우리의 용서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용서가 베풀어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 사이에는 정확히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 우리가 하는 용서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설명하는 네 가지 해석이 있다. 우리는 먼저 잘못된 해석이라고 판단되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를 제시한 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보다 다양한 차이점을 세심하게 고려한 나머지 두 가지 해석을 설명하고자 한다. [전문보기 : 주님이 가르치신 '용서']

 


자끄 뷔숄드 프랑스의 복음주의신학교인 보쉬센신학교의 총장이며 신학과 헬라어를 오랫동안 가르쳤다.

이 글은 자끄 뷔숄드Jacques Buchhold의 「완전한 자유, 용서」Le Pardon et L’oubli의 일부를 도서출판 국제제자훈련원의 허락을 얻어 간추려 엮은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