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상을 꿰뚫어보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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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을 꿰뚫어보는, 통찰
  • 성유원
  • 승인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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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원의 사유의 정원_여섯 번째 산책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만이

그 숨겨진 본질을 볼 수 있고,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그 현상만을 본다.

—노자

 

글 성유원

그림 고여정

 

본질과 근원을 보는 눈

지금도 그림을 좋아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엔 한때 그림 그리기에 깊이 빠져 지낸 적이 있다. 때론 밤을 새워가며 스케치북 한 권을 거의 다 채우기도 했다. 나를 그림에 빠지게 한 것, 그릴 때마다 도화지를 채워가게 한 것은 언제나 자연 풍경이었다.

하늘과 구름, 달과 별, 꽃과 나무, 산과 물, 길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풍경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빛깔들을 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이끌렸고, 신비로운 우주의 정교한 질서 속에서 신의 존재와 섭리를 느꼈다. 이때에 스며들어 자리 잡은 정서는 사라지지 않고 평생에 걸쳐 나의 경탄하는 마음과 내면의 풍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시절 이후로 나도 모르게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한 곳을 물끄러미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이다. 옥상에서 바라본 먼 저녁 풍경이나 쏟아지는 빗줄기, 밤을 감싸 안는 달빛과 같이 자연의 한 장면을 마음에 담아 오래오래 바라보곤 했다.

그렇게 한동안 바라보다 보면 처음 볼 때와는 다른 것들이 보인다. 빛을 뿜어내는 광경을 받치고 있는 그늘의 흔들림, 가까운 곳을 가리고 먼 곳을 눈앞으로 끌어오는 비 오는 날의 신비, 대낮엔 가려져 있던 존재의 깊은 아우라를 보여 주는 달빛….

한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이나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물이든, 자연이든, 인생이든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의 이면에 담긴 생의 본질과 깊은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사유하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몽테뉴의 〈수상록〉, 루소의 〈참회록〉 같은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것도 인간과 삶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십대부터였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더불어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사랑, 고통, 고독, 성취, 실패, 온갖 정념 등 인생에 대한 작가 나름의 관점과 생각을 풍부한 언어로 표현한 시와 소설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한 마음의 방향을 따라가다 보니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시를 좋아하여 졸업 논문도 정지용의 시세계에 관하여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라는 시집으로 널리 알려진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만난 것도 대학교 때였다. 그의 시집을 번역한 시인 정현종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알게 된 네루다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감각을 열어 주었다. 인간을 포함하여 만유의 껍질 속에 들어있는 존재의 풍부함을 맛보게 해준 것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이 삶을 보잘것없게 할 수도 있고 풍요롭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해준 시인이 파블로 네루다였다.

네루다의 시를 각별히 좋아하여 강의 시간에 자주 본문으로 삼으셨던 정현종 선생님의 시 중에는 사물이 품고 있는 꿈이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그림자, 그것조차 비껴가는 시선이나 다른 차원의 빛과 예술에 관한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사물을 뒤집어보게 해주고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생각하게 해 주는, 짧지만 인상적인 시가 있다. ‘그리움의 그림자’라는 제목의 시.

 

형체 있는 건 형체 없는 것의 그림자

소리 있는 건 소리 없는 것의 그림자

색 있는 건 색 없는 것의.......

그렇다면?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

들리는 건 안 들리는 것의 그림자

그리움의 그림자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아, 그리움의 그림자

 

보이지 않는 것이 실은 보이는 것을 낳는 실체요, 보이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통찰이 담긴 시다. 본질과 자연의 세계엔 실제 존재하면서 보이는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많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자연은 숨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감춰진 조화는 알려진 조화보다 낫다.” 영혼의 눈을 뜨고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본질이고 자연이 품고 있는 숨은 조화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육의 눈에 현혹되거나 욕망에 사로잡혀 사물이나 현상의 이면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일깨워주듯이 “항상 욕심이 없으면 그 오묘함을 보지만, 늘 욕심을 품고 있으면 그 드러남만 보게 된다”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다른 번역에 따르면,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만이 그 숨겨진 본질을 볼 수 있고, 욕망을 벗어나지 못한 자는 그 현상만을 본다.”

소설가 서영은은 작가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관해 쓴 산문에서 근원적인 것을 볼 줄 아는 눈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우리가 자연을 가만히 지켜보면, 저마다 자기 삶을 충실히 사는 속에서 절대 진리의 중심에 이르는 것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땅 밑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는 힘이 나무의 생명의 근원이지, 땅 위로 뻗은 가지에 꽃들과 새들이 날아드는 부분만 보는 건 근원을 소홀히 하기 쉬운 태도입니다.”

이 말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드러나지도 않지만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뿌리’에 마음을 두고 그것에 충실할 때 진리의 중심에 이를 수 있다는 작가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뿌리는 땅 속에 있어 드러나지 않지만 꽃이나 나무의 생명을 관장하듯이, 육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의 근원임을 잊지 말고 근원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작가에게만 해당될까. 피상적인 것에 현혹되거나 도그마에 휘둘리지 않고 꿰뚫어보는 눈을 갖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대상을 통찰하는 힘은 잘못 보는 데서 비롯되는 많은 실수들을 줄여 주고 인생을 헛되이 소모하지 않게 해준다. 특히 복잡한 상황이나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사태를 제대로 보는 통찰력은 해결점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난관을 만나거나 혼란에 휩싸일 때는 잠깐 멈춰 서서 자신과 삶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겉으로 드러난 것에 사로잡혀서 자기중심적으로 사태를 왜곡하거나 합리화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곁가지들을 걷어내고 본질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려운 상황이 오히려 밝은 눈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하므로. [전문 보기 : 피상을 꿰뚫어보는, 통찰]

 


성유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예원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 예술가들과 풍요로운 나눔 의 날들을 보냈다. 퇴직한 후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끌며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고여정 글쓴이 성유원의 예원학교 제자이자 함께 독서하며 생각을 나누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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