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더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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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더 사랑하는 사람
  • 이진경
  • 승인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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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생 투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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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일 화요일 ‘머리카락으로부터의 자유’

첫 항암 이후 열흘쯤 되자 머리카락이 심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그간 케모포트 시술한 쪽에 물을 대면 안 되어 엄마가 머리 감는 것을 도와주셨는데, 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것을 보시곤 나보다 엄마가 더 놀라셨다.

그 전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이 안 빠질 수도 있을 것”이 라는 희망을 은근히 가지고 계신 것 같아, 항암하면 ‘누구나’ 빠진다고, 예외는 없다고, 기대를 내려놓으시게 했었다. 모낭이 신체의 가장 약한 부분 중 하나이고, 항암 후 이미 충분히 내 머리카락은 푸석해졌기 때문에 곧 빠질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다.

머리를 감을 때뿐 아니라 머리를 조금만 빗거나 머리를 묶지 않은 채 돌아다니기만 해도 바닥 이곳저곳에 머리카락 뭉치가 떨어져 내렸다. 누군가가 혹여나 하고 기대하는 것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나는 분명히 못 박아 말해두었지만, 정말로 이렇게 머리카락이 빠지니 산송장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가는 자리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지니, 어느 정도 지저분한 것을 잘 견디는 나도 버티기가 힘들어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한 엄마는 “당분간 청소기로 밀자, 엄마가 가슴이 아파서…”라고 하시며 아예 청소기를 거실에 내놓고 하루에 몇 번이고 청소를 하겠다고 하신다.

내 주변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쓸어 모았다. 모아도모아도 또 떨어졌다. 이제는 머리끝에, 두피에서 저절로 떨어진 머리카락이 대롱대롱 붙어 있을 정도다. 나는 엄마에게 다시 선언하였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가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지, 눈에 보이는 머리카락이 아니라고, 머리카락은 치료 후 다시 나는 것이고, 전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지금 내 목에 머리카락들이 들러붙어 있고 눈이나 입에도 들어가려 하니 위생에 좋지 않으며, 강아지가 먹을 수도 있을 것이라 하니, 엄마는 청소기를 열심히 미시며 금세 수긍하셨다.

마음을 먹고 나자, 나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헤어 디자이너가 있는 단골가게를 갈까, 집 근처 동네 미용실을 갈까 고민하다 정감 있어 보이는 동네 미용실을 택했다. 그 어떤 의식처럼 치러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단골가게를 고려해보았지만, 그곳은 지하철을 타야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는 곳이다. 조용히, 깔끔하게 밀어버리자.

역시 나의 미용실 선택은 탁월했다. 속 깊고 우직해 보이시는 아주머니 사장님은 “완전히 다 밀어드려요?”라고 조심스레 말씀 한번 하시고는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깎아주셨다. 중간에 약간 콧물을 훌쩍이는 내게 휴지 한 장을 손에 꼭 쥐어주셨다.

그러자 눈물이 조금 더 났다. 다 깎고 나자 “두상이 예쁘네요”라고 하시고는 머리를 감아주셨다. 마지막엔 따뜻한 미소로 “꼭 완치되실 거예요” 해주셨다. 아… 이런 속 깊은 감수성이라니. 또 하나의 역사적인 날에 이런 좋은 분을 만나게 해주셔서 마음이 덜 쓰렸다.

머리를 밀어보니, ‘병이 아니라도 한번쯤 삭발을 해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위에 털이 하나도 없으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시원하다. 더운 날, 집에서 민머리로 앉아 있으면 에어컨보다 좋은 냉방장치를 몸에 설치한 것 같다.

미세한 바람을 다른 곳보다 두피에서 직접 속속들이 감지하여 나에게 시원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놀랄 만큼 가볍고 자유롭다. 내 평생, 머리 쪽이 이렇게 가벼워본 적은 처음이다. 머리에 아무것도 걸리는 것이 없으니 이 자유로움은 마치 시야 50킬로미터 내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이 모든 경험들이, 일부러 해보라고 한다면 결코 하고 싶지 않을 경험이지만 막상 들이닥쳤을 땐 감당할 만하다는 게 인생의 묘미인 듯하다.

 

9월 6일 금요일 ‘가난 나누기’

아침에 집 앞 동산으로 운동을 나가는데 요 며칠간에 비해 다리에 힘이 들어찼다. 항암 후 미열이 지속되었던 며칠 동안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아주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늘은 어느 정도 정상 속도로 걸었던 듯하다.

아침을 먹고 잠시 쉰 다음, 컨디션이 좋아 집 앞 놀이터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두 여자아이가 그네를 타고 놀고 있었는데, 얼마 안 가 사라졌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나는 모자를 벗고 쇼생크 탈출의 기분으로 바람 부는 자연 속 민머리의 기분을 누렸다. 엄청난 자유였다. 언젠가 아무도 없는 오지의 자연 속에서 맨몸으로 바다를 헤엄쳐보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상상을 해보았다.

요즘 헨리 나우웬의 「죽음, 가장 큰 선물」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죽음으로 인해 누리는 사람들과의 일치’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산상수훈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가난이라고 나우웬은 쓰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과 명예를 지니고 있어도 막을 수 없는 죽음. 죽음은 진정한 가난이다. 그리고 인류의 공통된 운명은 죽음이니, 그런 공통된 운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일치를 경험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그다지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내가 암이라는 것을 공개했을 때, 자기 자신의 가난을 내게 털어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아파트 층에 사시는 분. 그분은 늘 선한 인상에 또랑또랑한 눈매와 말투, 그리고 거의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시는, 염색을 하지 않아서 흰머리가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아주머니시다.

교사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목소리와 발음이 선명하신 분이었는데 서로 키우는 강아지 때문에 말을 트게 되었다. 그러다 항암받기 직전, 그분과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게 됐는데 그분이 양손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들고 계셔서 “쓰레기가 많으시네요”라고 말을 건넸더니, “우리 작은애가 많이 먹어서요” 하며 웃으며 말씀하셨더랬다. 현관을 나오면서 헤어지는 길에 “실은 제가 암에 걸렸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냥, 자주 마주치는 인상 좋고 속 깊어 보이는 동네 주민인 그분께는 내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그랬더니 양손에 든 쓰레기들을 털썩 내려놓으시더니 내 손을 덥석 잡으셨다. “아… 실례지만 무슨 암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기도할게요… 실은 저도…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 게 이유가 있어요.

우리 작은애가 2년 전부터 섭식장애에 걸려서 한꺼번에 폭식하고 또 토하고 이걸 반복하고 있어요. 자기 외모가 안 예쁘다고 생각해서 그러는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고 부모 입장에서 옆에서 지켜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픈지 몰라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기회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오도록 하시는 것 같아요.

모든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시기 위함인 것 같아요….”라고 우수수 쏟아내셨다. 그러면서 전도서 구절을 인용하시더니,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다. 이후로 아파트 단지에서 간혹 마주칠 때마다 활짝 웃으시며 늘 기억하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하신다.

그 외에도 ‘커피 동지’라고 일컬어주신 또 다른 동네 아주머니는 내가 암이라는 걸 아시고 자신이 얼마나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인지 말씀해주셨다. 또 자신의 시아버지, 시어머니 간병도 어땠는지 알려주셨다. 우리 동네 후배인 옷가게 주인은 내 병을 알게 되자 7년 전 발병한 자신의 침샘암도 털어놓아주고, 때마다 맛있는 걸 사주며, 얼마나 응원해주는지 모른다. 지금도 꼭 맛보여주고픈 아구찜이 있다며 자신이 포장주문해서 옷가게에 갖다놓을 테니 먹고 싶을 때 말만 하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이 말하는 죽음이라는 가난이 가져다주는 일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씩 경험해가고 있다. 자신의 숙명적 가난(죽음)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사람은 윗자리에 앉아, 고난을 겪으며 ‘아랫자리’에 앉은 듯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약간의 동정심을 베풀거나 가십으로 잠시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상석에 있음을 또 한 번 누리고 싶어 한다.

반면, 자신의 가난을 아는 사람은 동일한 인류의 운명이라는 주제에 당장 직면한 사람과 같은 자리에 앉아 연대감을 가지고 함께하는 모습을 보인다. 전자는 ‘분리’의 태도이고, 후자는 ‘일치’의 태도이며, 이는 그저 말하는 내용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인격에서 그대로 묻어났다. 예컨대 내 머리를 밀어주신 미용실 사장님은 별 말 없이 큰 위로가 되어주셨는데, 아마도 많은 우여곡절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가난을 충분히 끌어안은 분이셨기 때문에 그런 아우라가 가능한 것 같았다.

사실, 나우웬이 말하는, 죽음을 통해 ‘인류와 하나 되는 경험’은 나에겐 아직 좀 거창하게 들린다. 나는 아무리 아파도 싫은 사람은 싫고, 좋은 사람은 좋으니 나 역시 싫은 사람에게는 분리의 태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와 하나 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대신, 그가 말하는 ‘우리 존재의 연약함을 함께 나누어 가진 사람들과 일치하는 경험’은 맛보고 있다. 한쪽이 연약함을 내어놓을 때 다른 사람도 자신의 동일한 가난을 털어놓고 우리가 지닌 공통의 운명을 공유하는 것은 진정, 치유의 힘이 있다. 아마도 글을 써서 내 맘을 털어놓고 가난을 공유하는 것이 내게 치유가 되기에 나는 이렇게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나보다. [전문 보기 : 더욱더 사랑하는 사람]

 


이진경 CTK 창간 에디터로 일했고, 지금은 CTK에 ‘싱글 이야기’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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