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줌마 소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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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줌마 소셜 클럽
  • 임지원
  • 승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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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공감일기

 

지금 당신이 속한 공동체는 어디인가요? 이 질문은 받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야할 거 같다. “동네 아줌마 소셜 클럽에 속해 있어요.” 이 클럽은 회비도 없고 회원증도 없다. 회원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학교 운동장에서, 근처 놀이터에서,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를 챙기기 위해 돌아다니는 엄마들이 바로 동네 아줌마 소셜 클럽의 멤버다. 

며칠 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이가 학교 끝났는데, 엄마 왜 안 오냐고 물어보는 거다. 아이고 어쩌나,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그래도 나는 당황하지 않고, 몇 술 남은 밥을 먹고 나갈 테니 같이 오는 친구랑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대충 끼니를 마무리 한 뒤 음료수 몇 개를 챙겨 놀이터로 뛰어나갔다. 요즘 같이 무서운 세상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하굣길과 놀이터에 거의 늘 동네 아줌마 소셜 클럽의 멤버가 있기 때문이다. 역시나 초면의 멤버가 자기 아이와 우리 아이, 우리 아이 친구까지 돌보며 서 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서로 살짝 분위기 파악을 한 뒤, 아이가 몇 학년인데 키가 그렇게 크냐며 슬쩍 칭찬의 말을 날리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 멤버 어디 있다 이제 나왔나 싶게 탁월한 유머감각을 장착한 우수 멤버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깔깔 호호 웃으며 대화를 하다 보니, 나는 우리 아이가 27주, 미숙아로 태어났으며 이후 경과는 좋았지만, 그래도 눈 수술을 받고 지금은 다른 사교육은 하지 않고 오로지 건강만을 위해 수영을 열심히 시키고 있다며 오만가지 나의 정보를 공개했다.

그 멤버 역시 자신의 둘째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났고, 지금 댁의 아이와 함께 그네를 타고 있는 우리 큰 아이는 현재 1학년이고 몇 년 간 다른 곳에 갔다가 다시 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적응 중이라고 했다.

앞으로 놀이터에서 자주 이 멤버와 유쾌한 대화를 나눌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참 편하다. 나의 사회적 이력을 소개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자격 하나로 이렇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놀이터에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들어오면 기분이 좋다. 미숙아를 낳는 엄마들도 생각보다 많다. 나한테만 찾아온 특별한 불행은 아니다. 왠지 안심이 된다. 그리고 그 멤버의 얼굴에 묻어 있는 피곤함, 꾸밀 겨를도 없이 툭 올려 묶은 머리 한줌에서 느껴지는 동질감도 좋다.     


최근에 가까워진 멤버는 놀랍게도 나와 동갑내기다. 둘째아이가 늦둥이다 보니, 멤버 대부분이 나보다 어린 편이다. 데리고 다니는 아이들(그녀는 세 아이의 엄마다!)이 어려서 나는 그녀가 한참 어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동갑이란다. 어찌나 반가운지. 그녀도 동갑은 처음이라며 좋아한다.

어느 날 아침 등굣길에 마주쳤는데, 자꾸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나이 때문에 얼굴에 탄력이 없어져 자고 일어나면 얼굴에 베개 자욱이 계속 남아 있어 짜증이 나 펴는 중이라는 거다. 어머! 어머! 나도 수영을 하면 얼굴에 수경 자욱이 오후까지 남아서 다들 수영했냐고 묻는 통에 수영장 가기가 싫다고 말했더니 너무 웃기다고 깔깔 웃는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 쉰을 바라보는 여성의 노화와 질병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나는 내 고질병인 이석증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러자 자신이 아는 엄마들도 그 병 때문에 너무나 고생을 한다며 마치 자신의 아픔처럼 나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어찌나 고마운지….

갑자기 떠오른다. 작년인지 재작년인지 남편이 내 이석증이 딱 꾀병 같다며 그냥 갑자기 어지럽다고 하면 끝이냐고, 무슨 병이 그러냐고 했었는데…. 어찌나 억울하고 서운하던지 나중에 어디 아프다고만 해봐라 내가 아주 똑같이 해주고 말리라 다짐을 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녀와의 수다는 더할 나위 없는 위로와 힐링의 시간이었다. 

 

얼굴이 가장 어두운 멤버들은 단연코 중학생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그녀들의 특징은 일단 앉으면 한숨을 쉰다는 거다. 가슴이 답답한 거다. 나 역시 큰 아이와 치열하게 싸우며 보낸 시간이 있기에 그냥 그 마음이 느껴져 한마디 건넨다. 

“중학생… 너무 힘들죠?” 

그럼 이제 봇물이 터진다. 원래 그래요? 중학생 이상하다더니 완전 이상하다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답답해 죽겠고, 꼴 보기 싫어 미치겠다고. 나는 슬쩍 한 마디를 해준다. 

“고등학생 되면 눈 똑바로 뜨고, 사람 되니까 조금만 참아요. 나도 아주 징글징글 했어요.” 
“부엌 싱크대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몽쉘통통을 다섯 개씩 먹었어요. 이 뱃살, 그때 만든 뱃살….”  
“정말요? 하하하하”

예전엔 나이 어린 멤버들을 만나면 뭔가 선배로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처한 상황도 다르고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미 나의 충고는 그들에게는 과거형으로 무의미하거나 잔소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시간이 알려준 사실이 있는데, 나보다 한참 어린 멤버들이 훨씬 지혜로웠다. 어떤 멤버는 같은 식기세척기 세제를 나보다 훨씬 저렴하게 구매했고, 심지어 커피머신 캡슐도 대체가능한 저렴한 제품을 찾아내 쓰고 있었다! 진정한 쇼핑의 고수인 것이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는 대화의 고수도 나보다 어리다.

지난 번 모임에서 한 멤버는 모두를 웃게 했다. 다이어트 할 땐 힘이 없었는데, 막 먹고 살이 찌니 더 건강해졌다고 좋아한다! 왠지 마음이 놓인다. 다이어트는 해로운 것이다. 많이 먹고 건강하게 살아야지! 모두 깔깔 웃으며 행복한 결심을 했다. [전문 보기 : 동네 아줌마 소셜 클럽]

 


임지원 주부. 딸 둘과 남편, 넷이서 경기도 일산에서 씩씩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CTK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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