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위대한 힘의 원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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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위대한 힘의 원천, 습관
  • 성유원
  • 승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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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원의 사유의 정원_다섯 번째 산책

 

위대한 힘의 원천, 습관

 

참으로 중요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은 
그 생활이 단순하다.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레프 톨스토이

 

성유원

그림 고여정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비밀

십 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광화문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예술영화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작품을 특별상영한 적이 있다. 〈예술영화 르네상스 프로젝트 ‘10년만의 외출’〉의 첫 프로그램으로. 평작이 없다는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희생〉과 〈노스탤지어〉는 예전에 이미 보았고 영화에 대한 그의 철학이 담긴 〈봉인된 시간〉이라는 책도 인상 깊게 읽었지만, 작품에서 받았던 감동과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깊이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두 작품을 한 번 더 보았다. 

“타르코프스키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그냥 지나칠 부분이 한 컷도 없을 정도로 영상미 뛰어난 화면과 철학적인 대사 하나하나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감독에게 ‘최우수 예술 공헌상’을 비롯하여 4개 부문의 상을 안겨준 유작遺作 〈희생〉의 첫 장면이다.  

영화는 주인공 알렉산더가 어린 아들 고센과 함께 바닷가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들은 목을 다쳐서 말을 하지 못한다. 아예 말을 잃어버린 듯하다. 카메라는 이 장면을 멀리서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비춘다. 첫 장면부터 롱 테이크 기법을 사용하는 감독은 상징적인 그 화면이 관객들의 마음에 새겨지는 동안 주인공 알렉산더를 통해 그의 아들 고센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옛날 어느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팜베라는 이름의 그 수도승은 어느 날 산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지. 그리고 제자 조안에게 나무가 살 때까지 매일 물을 주라고 했단다. 그래서 조안은 날마다 물통에 물을 담아 산에 심은 죽은 나무에 물을 주고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오곤 했어. 그렇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3년 동안 정성껏 물을 주던 어느 날 조안은 나무에 꽃이 만발한 것을 발견했단다.…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루어지지. 의식儀式과도 같이 매일 꾸준히 같은 일을 반복한다면 세상은 변한단다.”   
 
이 대사 속에는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조차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다는 타르코프스키의 인생관과 삶의 자세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 또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앙상하게 말라 죽은 나무에 꽃이 만발하게 한 조안이 몸과 마음으로 보여준 두 가지 속에.

하나는, 날마다 우리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매일 맞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마음을 다하여 행하는 지속적인 과정 속에서 무엇이든 이루어가는 힘이 길러진다. 

동양의 교육철학과 형이상학이 담긴 〈대학〉과 〈중용〉에서는 삶의 자세로 ‘성’誠을 강조한다. ‘성’은 ‘하늘의 도’誠者天之道也로서 단어 자체에 말[言]이 이루어지는[成] 경지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기를 속이지 않는다’誠其意者毋自欺也, ‘홀로 있을 때도 삼간다’君子必慎其獨也, ‘마음을 다한다’君子必誠其意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성’에 대해 선인들은 “성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완성하게 하는 근거다”誠者自成也, “성이 지극하면 앞일도 알 수 있다”至誠之道可以前知고 했다. 그만큼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참되게 마음을 다하는 자세가 갖는 힘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바다가 되고 한 음 한 음이 어우러져 감동적인 음악이 되듯이, 매일 정성스런 마음으로 소망하는 삶을 위하여 끈기 있게 노력하는 자세가 기적을 낳는다. 조안이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죽은 나무에 물을 주어 꽃을 피워냈듯이.

이러한 노력에 동반되어야 하는 다른 하나는, 자신이 뜻을 둔 일에 꾸준히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조안은 스승 팜베에게, 죽은 나무에 물을 준다고 살아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터무니없는 일을 시킨다고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매일 같은 시간에 기도를 하듯이 물을 주었다. 이성적 사고를 넘어서는 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조안은 묵묵히 실천하였고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

“사람은 믿는 만큼만 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성복 시인은 자신의 시론에서 말했다. “이 자리, 이 공간과 순간에 대한 믿음 없이는 인생에서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아요. 카프카 식으로 말하면 어떤 행위도 믿음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지요. 모든 행동의 근저에는 반드시 어떤 관념이 있고, 그 관념은 믿음에 의해 움직이지요. 우리의 삶, 우리가 사는 세상은 ‘믿음’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일부일 뿐이지요.”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갈지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그것이 이루어질 거라는 사실만을 알았다. 믿음이란 그렇게 알 수 없는 미래를 생생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히브리서 11:1).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스승들을 비롯하여 인류 역사를 움직여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음의 거장들이었다. 오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마음을 쏟는 만큼 그 일이 이루어갈 미래를 믿는 것은 놀라운 힘의 원천이 된다.

〈희생〉의 첫 장면은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된다. 아버지가 이야기했던 기적이 아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집에 불이 나고 아버지 알렉산더가 구급차에 실려간 후 아들 고센은 아버지와 함께 심은 죽은 나무 아래에 누워 독백을 한다. 목소리를 되찾아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아빠 그게 무슨 뜻이죠?…” 

고센의 독백이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누워 있는 그의 시선을 따라 나무 아래에서 위로 비추며 올라간다. 카메라가 도달한 끝은 찬란하게 빛의 꽃을 피우고 있는 풍요로운 가지들이다. 죽은 나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첫 장면의 이야기를 환기시키듯.

〈희생〉의 주인공 알렉산더의 대사를 통해 타르코프스키가 들려주는 수도승 팜베와 조안의 이야기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면서 멀리 울리는 종소리 같은 여운을 남긴다. 우리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하면서.

‘나는 오늘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하며 보냈는가?’ 
‘나는 어떤 삶을 향해 어떤 미래를 소망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과연 내게 주어지는 날들을 정성껏 살고 있는가?’
‘내가 맡은 일, 혹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고 있는가?’
‘정성을 다하는 가치 있는 일은 열매를 맺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가?’
‘매일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행동에 나도 모르게 배어 있는 습관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반복하면 강화된다. 반복을 통해 강화되는 생각, 말, 행동이 몸과 마음에 완전히 배어들면 습관이 된다. 습관은 무의식까지도 지배할 정도로 힘이 세다. 그런 만큼 중요한 것은 그 습관에 담긴 마음과 방향성이다. 지향점 없이 자신의 영혼에 해害가 되는 생각과 나태한 일상을 반복한다면 삶은 점점 매너리즘 속으로 빠져들면서 정체되고 굳어진다. 반대로 아주 작은 것에서 출발했을지라도 마음을 다하는 노력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그 지속성과 정성이 위대함을 만든다. 오늘은 지나고 나면 어제가 되어 사라지지만 나날의 생각과 행동의 습관은 이렇게 인생 전체의 성패와 연결되어 있다. [전문 보기 : 위대한 힘의 원천, 습관]

 


성유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예원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 예술가들과 풍요로운 나눔 의 날들을 보냈다. 퇴직한 후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끌며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고여정글쓴이 성유원의 예원학교 제자이자 함께 독서하며 생각을 나누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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