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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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이 필요한 때
  • 이진경
  • 승인 2019.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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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생 투병일기

 

지난 9월호 “암이라는 선물로 노래를 불러드릴게요”에 이어, 이진경 작가의 투병 일기를 연재합니다. ‘대선생’은 이진경 작가의 어머니가, 항암 후 머리카락을 모두 민 글쓴이에게 붙여준 “대머리 선생”을 줄인 말입니다–CTK

 

8월 9일,  불확실성 속의 드라마

큰 레드카펫 속에 각각의 드라마들이 있었는데, 짝이 맞추어지지가 않았다. 말았던 카펫을 펼쳐보며 짝이 맞는지 다시 확인을 했다. 내가 아닌 어떤 여성이 그것을 했고, 또 다른 여성이 도와서 확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꿈에서 깼다. ‘왜 균형이 맞지 않지?’ 

불확실성. 긍정적인 성장의 가능성이 아닌, 무언가 결정적인 것에 대한 불확실성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실은 모든 사람 앞에 놓여 있는 것인데, 나를 비롯한 일부는 그걸 눈에 띄게 알았고, 다른 일부는 아직 느끼지 못할 뿐이다. 상황상, 정황상. 

불확실성 속의 기도는 확실하게 해달라는 기도, 아니면 신뢰의 기도이다. 확실하게 해달라는 기도는 궁극적으로 깊은 안정으로 들어가게는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산다, 안 산다, 낫는다, 안 낫는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기도하지만 그것에 대한 확실한 기도의 응답은 자신이 지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신뢰의 기도는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대로 놓아두는 기도이다.

대신, ‘이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주권 하에 있으니 그 결과가 무엇이건 안전하고 선한 것’임을 믿으면서 기도하는 것이다. 좀처럼 쉽지 않은 기도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태복음 말씀인데, 누가복음에는 여기서 ‘좋은 것’이 ‘성령’으로 되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다. 낫느냐 낫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 그것이 정말 가장 좋은 것임을 믿는가,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주는 분이심을 믿는가, 이것이 내가 당면한, 그리고 수많은 고난에 직면한 이들이 당면한 화두일 것이다. 

문득 하늘을 향해 눈을 들었을 때 내 안에 슬픔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그러나 내게 맴도는 그 말들이 또한 속임수와 감상이란 것도 안다. 나는 그간 무수히 많은 감사할 거리들이 있었고, 생의 충만감도 경험했으며, 행복한 시절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더욱 감사했다. 그러나 이제,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몸으로 아픔을 느끼니 그 순간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자 하는 유혹이 든다. 이 일이 생기기 전, 모든 작은 것들에 감사한 연습들이, 그리고 감사하면서 충만감을 느꼈던 순간들이 지금을 버티게 해주는 요소들인데 말이다. 

실제로 몸이 아플 때에는 육체적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도 어려운데, 대부분의 환자들은 심리적인 불안과 두려움, 공포, 슬픔, 우울까지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힘들 것이다. 

어제, 음악회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이 음악까지도 이렇게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데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자신에게 되뇌였다. 환희와 기쁨, 열정에 찬 선율이 지나고 어둡고 외롭고 힘겨운 선율이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있기에 그다음의 순간이 더 찬란하게 느껴진다. 

어제 유방암 선배를 만나, 서로를 ‘경력사원, 신입사원’이라 일컬으면서 실컷 우리의 암을 두고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선배가 혈액암협회에서 개최하는 각종 세미나들과 암 환우 모임들에 대해 소개해주었다. 선배님도 나도 결국은 사람, 그리고 영혼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기에, 우리는 또 우리와 동일한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군사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다. “거기서 우리 또 소식지 만들고 그러는 거 아니겠죠?” 신입사원인 내가 말하자, “우린 이제 그러면 안 돼”라고 일침을 날려주시는 경력 선배님. 선배님은 항암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경험담을 알려주셨고, 나는 현실의 어려움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들긴 했다. 즐거움과 슬픔과 불확실성, 그리고 강한 유대감과 해학이 골고루 버무려진 시간들을 보내고 있고, 이런 많은 것들이 혼재된 이 시간 또한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는 아름답게 기록될 것이다. 아직은 균형 잡혀 보이지 않을지라도. 

 

8월 19일,  내 영혼의 음식

12일 월요일에 입원하여 어깨와 가슴 사이에 케모포트를 심고, 1차 항암에 들어갔다. “벌써 일주일이 흘렀네.” 엄마와 집 근처 수퍼마켓을 가며 이렇게 말했다. 항암 첫날만 메스꺼움과 어지러움이 있었고, 그 외의 시간은 무난히 넘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며칠 전 열이 오르고 얼마 있다 내려가는 일이 있어서 조심하고 있다.  

아침을 먹고 집에서 실내 자전거를 조금 타고, 스쿼트도 스무 개 정도 했다. 그러곤 아침 잠을 자다가 점심으로 고구마와 감자, 과일들을 먹고, 집안에서 걸어 다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오후쯤 일어나니 며칠 전부터 내가 노래를 부르던 토마토 스튜를 만들어주시기 위해 엄마가 수퍼마켓을 가시려던 참이었다. 많이 먹고 많이 잤으니 좀 걸어보자 싶어서 집에서 15분 정도 거리의 수퍼마켓에 함께 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쓰고 어깨와 가슴 사이에 거즈를 댄 내 모습은 분명 환자 같긴 할 것이다. 엄마와 나는 느릿느릿 천천히 걸었고, 즐겁고 상쾌한 산책길이었다. 장을 다 본 후, 짐을 내가 조금만 들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절대 아무 물건도 들지 못하게 하셨다.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지갑 등이 든 보조가방을 크로스로 멘 엄마. 칠순이 넘은 엄마에게 내가 너무 많은 몸과 마음의 짐을 지운 것 같아 늘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나는 엄마를 위해 기도한다. 엄마는 언제나처럼, 나에게 최선을 다하신다. 이 정도로 최선을 다하다 금세 기력이 쇠하시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수퍼마켓에서 돌아오는 길은 숨이 많이 찼다. 우리 집은 가파른 경사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 경사를 넘고 나면 고요하고 신선한 공기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지만, 그 경사가 내겐 지금 많이 버겁다. 

돌아와 잠시 쉬는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전 세계를 돌아다닌 나인데, 집 앞 수퍼마켓 다녀왔다고 열이 오르네.” 엄마는 몇 번이나 새로 구입한 체온계를 내 귀에 대시며 체온을 확인하셨다. “어떡하지, 병원에 가야 하나” 하며 엄마는 병원에서 받아놓은 책자들을 확인하시고는, 정 안 되면 일단 해열진통제로 해결하면 된다고 하셨다.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데, 엄마가 부르셨다.

“진경아, 토마토 스튜 다 됐다~~!” 그때 나는 어디선지 모르게 솟아오르는 힘으로 벌떡 일어나 부엌에 갔다. 그곳엔, 어렸을 적, 엄마가 아빠의 입맛을 돋우시기 위해 만드시곤 했던 그 토마토 스튜가 놓여 있었다. 난 정말이지 이 스튜를 먹고 싶었다. 이것이 얼마 만에 먹는 토마토 스튜인가. 심야식당에 나오는, 기운을 북돋우는 영혼의 스프처럼, 나는 토마토 스튜를 너무도 맛있게 세 접시나 먹었다. 달달한 토스트와 함께. 물론 옆에서 부들부들 떨며 한입만이라도 나눠주길 바라는 불꽃같은 눈동자를 한 강아지와도 같이 나눠 먹으면서…. 엄만 행복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셨다. 

“엄마도 먹어. 너무 맛있어.” 
“엄만 토마토 스튜 안 좋아해.” 

그렇지 않다. 엄마는 토마토 스튜를 좋아하신다. 꼭 한 접시만이라도 드시길 권하자 엄마 역시 스튜를 맛있게 드셨다.
 
나이가 드시면서 거북등이 되어가고 족저근막염으로 발이 아픈 엄마는 암환자 딸을 위해 열심히 요리를 하시고 위생을 위해 자주 청소를 하신다. 조금이라도 도와드리려 하면 “너 어깨 아프다, 손목 아프다, 절대 하지 마라” 완강히 뿌리치신다. 

내가 엄마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다 갚을까. 나이든 딸이 나이든 노모에게 이런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수고를 받는데, 하나님이 우리 엄마에게 깊고 큰 복과 도우심을 계속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토마토 스튜를 다 먹고 나자 열이 내렸고, 나는 그때부터 노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전문 보기 : 외면이 필요한 때]

 


이진경 CTK 창간 에디터로 일했고, 지금은 CTK에 ‘싱글 이야기’ 칼럼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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