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에서 글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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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에서 글쓰기까지
  • 송인규
  • 승인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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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규 교수의 책 이야기 | 책집에서

 

책 읽기: 아쉬움을 넘어 현실론적 대안으로

책 읽기의 이유, 유익, 방법 등을 기술하고 크리스천 마인드ㆍ세계관ㆍ영성ㆍ학문과 신앙 등에 관한 책들을 소개한 것으로 인해, 내가 혹시 책 읽기의 “도사”나 “달인”으로 비추어졌을까봐 상당히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나의 책 읽기는 여러 걸출한 인물들에 견주건대 미흡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다. 우선, 기독교 범주 밖 일반 서적과의 접촉이 너무 적었다. 특히 동서양의 고전들과 교양 도서들을 제대로 탐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마음은 원이로되 앞으로도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특히 원래 소설 등 문학류의 글을 좋아했는데,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그만 단절되고 말았다. 또 철학 공부를 뒤늦게 시작한지라 이 방면의 책들도 읽지 못한 것이 많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관련 서적에 있어서도 분석철학 전통의 철학신학이나 개혁파 조직신학(교의학) 분야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다른 분야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놓치거나 부분적으로만 파악한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기독교 사상이나 교리의 역사적 뿌리와 흐름을 논하는 책들―예를 들어, 교리사ㆍ기독교 사상사ㆍ신학과 철학 사이의 상호 교류를 다루는 학제간 전문 서적들―을 섭렵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학문적 응어리로 남아 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신체적ㆍ학구적ㆍ환경적 한계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추구할 수는 없다. 이것은 책 읽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내가 늘 아쉬움과 회한을 지니는 것은 꼭 욕심의 발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결국 나는 책 읽기와 관련하여 일종의 중용을 취하기로 했다. 너무 욕심을 많이 부려 수시로 좌절과 실망에 빠지는 경향으로 치닫지도 말고, 아무런 꿈이나 욕구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현 상태에만 급급하는 지적 게으름 또한 마다하는, 제3의 방도 말이다.

자극을 받고 흥미가 발동하는 대로 낯선 분야의 책을 펼치기도 하고,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이런저런 종류의 책 읽기를 구상하기도 하며, 비록 다 읽을 수 없지만 아직도 관심을 끄는 주제의 책들 앞에서 한참 동안 서성거리기도 하는 것…, 그것이 내 책 읽기의 반복되는 면모이다.

그리하여 나는 아직껏 제칠일안식교의 교리 체계와 그 교단의 움직임에 지적으로 크게 자극을 받곤 한다. 비그리스도인 학자 가운데 진화론을 거부하는 이들의 논거와 설명에 접하면 머리에서 김이 솟을 정도로 골몰하게 된다.

몸과 영혼의 관계에 대한 각종 수준의 책자들, 여러 입장의 논점에 접하면 전 존재가 흡입되는 느낌을 받는다. 구 프린스턴 신학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들 사이의 입장 차이가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항구적인 관심거리이다.

신 무신론new atheism이 종교계―여기에는 기독교계와 복음주의 서클도 포함된다―를 강타한 이후 어떤 종류의 변증학 서적들이 출간되는지, 그 동향 파악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철학 신학에 머물지 않고 이제는 “분석 신학”analytic theology이라는 명칭까지도 획득한 분야의 신학 논제들을 일별하노라면 가슴이 쉬지 않고 쿵덕거린다. 이러한 자극과 욕구가 활성화되는 한 나의 책 읽기는 중단될 수 없을 것이다.

 

글쓰기: 회고와 포부

내가 지은 책자를 살펴보면 얼추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양육과 훈련을 위한 표준 자료standard material로서, 성경 공부 교재, 소책자 및 단행본의 형태를 갖춘 것들이다. 소책자로서는 「행복은 당신에게도」(IVP, 1984), 「오염된 사랑 이야기」(IVP, 1984), 「영성에의 추구」(IVP, 1999) 등이 있다. 성경 공부 교재로는 「새로운 삶의 길」(IVP, 1978), 「행복에의 초대」(IVP, 1979), 「푯대를 향하여」(IVP, 1985), 「아볼로 성경 공부 1, 2, 3」(IVP, 1994) 등이 있다.

단행본의 형태를 갖춘 것으로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IVP, 1984), 「정말 쉽고 재미있는 평신도 신학 1, 2」(홍성사, 2001), 「성경,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 2001),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홍성사, 2003), 「일반 은총과 문화적 산물」(부흥과개혁사, 2012)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표준 자료들은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배우고 깨우쳐야 할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나 스스로의 고민과 괴로움 가운데 몸부림치며 해결을 모색한 끝에 내놓은 글이나 책들이다. 여기에는 주로 단행본이 속하나 가끔 소책자와 책자 내의 일부 기사도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다룬 주제로는 갈등, 용서, 자아상, 비난, 거짓말, 선악과, 복, 구조악 등이 있다. 단행본으로서는 자위행위의 문제를 파헤친 「고립된 성」(IVP, 1998)과 야망ㆍ질투ㆍ경쟁의 이슈를 다룬 「세 마리 여우 길들이기」(IVP, 2004)가 대표적인 예이다.

두 부류의 자료 가운데 아무래도 애착이 더 많이 가는 것은 후자의 범주에 속하는 글과 책자이다. 특히 갈등, 거짓말, 복, 구조악, 자위행위, 야망, 질투 등의 주제와 이슈는 나의 신앙에 난공불락의 장애물로 비쳐졌기 때문에, 그런 괴물들과 싸우면서 나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무척이나 귀하게 여겨진다.

물론 나는 앞으로도 지력과 체력이 쇠하는 그 순간까지 여러 종류의 글/책을 쓰고 싶다. 그 중 오랫동안 초미의 관심사로 자리 잡은 주제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다. 이것은 칼빈주의 입장의 주권관을 신학적ㆍ철학적으로 변호하는 전문서이다.

한국에 장로교도와 칼빈주의자들이 많지만 지금까지 이 주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책이 없기 때문에 꼭 쓰고 싶었는데, 자료만 갖추어져 있고 아직껏 저술 작업에는 착수하지 못했다. 또 조직신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본 이라면 누구나 한국 교회 실정에 맞는 조직신학의 집필을 꿈꾸기 마련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오래 전부터 2권으로 된 ’기독교 교리 개요‘를 쓰겠노라고 계획을 토로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어디 그뿐인가? 나의 향후 희망 저술서 목록에는 ‘창조와 진화: 세 가지 입장’ ‘몸과 영혼의 관계’ ‘열두 가지 설교문’ ‘하나님의 음성이란 무엇인가?’ ‘질문과 답변의 변증학’ 등의 가제들이 자리를 다투며 줄을 서 있다. 혹시 그 외에도 여력이 된다면 종교 철학, 학문과 신앙, 하나님의 영광, 악의 문제, 성경과 과학적 언급, 샤머니즘과 기독 신앙, 조상 숭배와 기독교 등의 주제에 대해 글을 써 보고 싶다.

새로운 주제로 글/책을 쓰기로 한다면, 책집이나 연관 장소의 서가는 긴 간격의 간만干滿 현상을 겪을 것이다. 이 현상은 3국면으로 구성이 된다. 제1 국면은 썰물 현상이다. 이 때 책집의 특정한 서가에 꽂혀 있던 책들이 몽땅 빠져나간다. 이 서가는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책들이 정리되어 있었던 곳이다.

제2 국면은 책자의 집필에 소요되는 긴 기간과 일치한다. 내 경우에는 책집(혹은 연관 장소)에 있던 책들을 내 방의 책상 오른쪽으로 옮겨 놓는 일부터 시작된다. 글을 쓰면서 여타의 필요한 자료가 책집에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낮 시간이건 밤중이건 새벽 3시건―찾아 나선다.

내가 소장하고 있지 않은 책이면 즉시로 구입을 서두른다. 책을 읽다가 연관된 내용이 있다 싶으면 책갈피를 꽂아 두는데, 이것이 반복되면서 책갈피로 표시된 책들이 즐비하게 쌓여 간다. 책상과 집은 크게 어질러지고, 내가 점유한 공간 전체는 이곳저곳에 놓인 자료와 출력물, 논문과 책들로 쑥대밭처럼 혼잡스럽다. 글의 질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이 무질서의 상태로 빠진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제3 국면인 밀물 현상이 도래한다. 각종 자료, 논문, 출력본, 책들은 주제별로 정리된다. 책에 꽂혀 있던 책갈피들은 본래의 보관 통으로 되돌아간다. 모든 책들은 다시금 책집(및 연관 장소)으로 옮겨진다. 긴 기간 동안 비어 있던 서가는 전처럼 책들로 붐비고 작은 공간의 여유도 없이 빡빡해진다. 드디어 책의 밀물 작용이 클라이맥스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글/책을 쓰는 동안에는 길고 짧은 간격의 간만 현상이 예고도 없이 반복적으로 찾아올 것이다. [전문 보기 : 책 읽기에서 글쓰기까지]

 


송인규 한국교회탐구센터 소장, 전 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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