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과 좋은 성품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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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과 좋은 성품의 상관관계
  • 캐런 스왈로 프라이어 | Karen Swallow Prior
  • 승인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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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이 시대,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읽는다.
하지만 좋은 책과 좋은 성품의 상관관계는 잃고 말았다.

 

어렸을 때, 우리 집 지하실 공사가 끝나자 나는 내 방에 있는 책들을 다 모아 지하실로 가지고 내려가 책꽂이에 꽂아 두고 나만의 작은 도서관을 열었다. 친구들이 책을 빌려가서 읽게 하려고 그랬다 말하고 싶지만, 빌려가 읽으라고 시켰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영문학 교수로서 결국 나는 전문적으로 책 읽는 사람이 되었고, 폭넓은 독서를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일을 30년 간 내 직업으로 알고 열정적으로 해 왔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제 일종의 문학 독서 옹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부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이 학생들의 소심한 부모들과 더불어) 아마도 기독교 세계관에 적대적이라 할 수 있는 문학가들의 “세속적” 작품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대학의 젊은 교수로서 나는 문학 작품을 읽어야 할 성경적 근거를 찾는 것으로 시작하는 교수법을 개발했다. 수업에 거론되는 작품에는 반드시 “기독교적”이라고 할 수 없는 작품까지 포함되었다. 그런 독서가 어떻게 해서 궁극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을 강화해 줄 수 있는지 기회가 닿는 대로 기꺼이 학생들에게 (그리고 때로는 이들의 부모에게까지) 가르쳤다. 그렇게 해서 나는 폭넓은 독서의 유익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 수년에 걸쳐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글을 더 많이, 그리고 더 폭넓게 읽는 것 같다. 다양한 관점, 관습에 어긋나는 생각, 무신론적 주장, 해리 포터 같은 책을 경계하며 피하는 학생은 이제 만나기 쉽지 않다.

블로그, 트위터, “〜하는 법 ○○가지” 류의 기사,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갖가지 장광설 사이에서 요즘 사람들은 거의 하루 종일 뭔가를 읽는다. 손바닥만 들어 올려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 사람들에 비해 더 훌륭한 독자인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과거에 비해 더 나쁜 독자가 된 듯하다(이 말에 의심이 간다면 트위터 글 타래 하나를 2분만 읽어 보라). 그렇다. 바야흐로 읽기가 상승 추세다. 하지만 우리는 잘 읽고 있을까?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읽기 역량을 향상시키려면 사실 스토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인지과학자와 행동과학자의 지난 몇 년 간 여러 연구를 보면, 소설 읽기가 공감 능력을 키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소설이란 게 본디 뭔가를 말하기보다는 어떤 장면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가 실생활에서 날마다 해야 하는 일, 곧 예측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을 독자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실 문학과 인간 성품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인간의 감정을 적절히 계발하게 해 주는 훈련장이라고 주장했다.

예수께서도 비유, 곧 소설적 진실 옆에 실생활의 진리를 투영하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말씀하심으로써 스토리의 힘을 친히 확증하셨다. 구약성경에서 나단은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다윗 왕이 저지른 죄의 진상을 그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역사에 등장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훌륭한 문학이 덕성을 배우는 학교임을 늘 알고 있었다. 잘 읽는 기술을 재발견함으로써 우리는 덕성에 대한 인식 또한 회복할 수 있다.

 

 

탁월하게 읽기

‘덕’virtue이란 한 마디로 ‘탁월함’excellence을 뜻한다. 덕망 있는virtuous 사람이란 탁월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덕을 함양하는 독서, 또는 탁월하게 읽기란 독서가 원래 산출하게 되어 있는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독서에 요구되는 모든 것을 투입하여 읽는다는 뜻이다.

독서가 본래 덕을 함양하는 효력이 있음은 기독교가 말의 종교, 말에 중심을 둔 신앙, 궁극적으로 말씀 자체인 이유가 크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뜻이 돌에 새겨진 것에서부터 성경 66권(이 66권은 시에서 서신까지, 역사서에서 예언서까지 수많은 문학 장르를 포괄한다)에 하나님의 영감이 불어넣어진 것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는 읽기를, 그것도 잘 읽기를 제일로 여긴다.

실제로 근대 이후 세상에 읽기 능력이 확산된 것은 기독교가 준 선물이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 읽는 법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이 말씀을 확산시키고 싶어 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 여러 문화 비평가들이 탈 문자 시대post-literate age라고 하는 이 시대 한복판에서도 교회와 국가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중요한 문제는 읽기를 중심으로 하는 문제들이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는가? 헌법은 어떻게 읽는가? 효력 있는 독서의 핵심에는 서로 나뉠 수 없는 두 가지 분야가 있다. 첫째는 책에 있는 말을 이해하는 간단한 작업이고, 둘째는 그 말의 의미를 텍스트 안에서, 그리고 텍스트를 초월해서 적절히 해석하는 좀 더 복잡한 과제다.

독서를 잘 하는 것이 그 자체로 덕스러운 활동은 아니다. 책을 잘 읽으면 다른 덕목들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읽기 행위가 우리 몸과 정신에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 보라. 침묵, 평정, 깊은 성찰, 집중, 세심함이 요구된다. 수백 년 전,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장시간의 고된 육체노동을 중심으로 굴러가던 시대에는 이런 활동이 얼마나 사치스럽고 한가한 놀음이었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이 많아진 21세기에도 우리 삶은 도저히 조용하게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바로 그 읽기 행위가 현대인들의 삶을 특징짓는 갖가지 ‘과잉’을 삼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과잉을 삼가는 것이 전통 사상에서 말하는 덕행의 본질이다. 이는 과잉과 결핍 사이의 중용, 또는 양극단 사이의 온건함이다.

수많은 선택으로 이뤄지는 세상, 수많은 활동이 우리의 관심을 받으려 경쟁하는 세상에서는 독서 시간을 따로 떼어 두려는 간단한 결정을 내릴 때조차도 일종의 절제가 요구된다. 나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 시대의 삶과 그 시대의 독서 생활을 충분히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이제 집중이 지속되는 시간이 짧아졌고 장시간 진득하게 앉아 독서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들었음을 실감할 것이다.

연구자들은 디지털화된 우리 세상의 분열적이고 파편적이고 중독적인 성질, 하루 종일 딩동거리고 삐삐 울리고 번쩍거리는 전자기기의 요구를 연구한 뒤, 이것이 우리의 정신에 끼치는 위험한 결과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니콜러스 카Nicholas Carr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에서 설명하다시피, “순차적 사고linear mind는 옆으로 밀려나고, 정보를 받아들여 짧게 해체한 뒤 흔히 중복해서 일제히 격발되는 형태로 그 정보를 분배하려 하는, 그렇게 분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종 사고가 등장하고 있다.

이 정보 처리 과정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인간의 두뇌는 논리적이고 순차적인 패턴으로 글을 읽도록 훈련되었을 때의 작동 방식과 이 트윗에서 저 트윗으로,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이 화면에서 저 화면으로 계속 튕겨 다닐 때의 작동 방식이 다르다.

덕성을 함양하는 독서란 이런 혼돈에 반항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글을 잘 읽으려면 면밀하게 읽어야 한다. 텍스트와 콘텍스트 두 가지 모두에 충실한 자세로, 정밀하고 통찰력 있게 해석해야 한다.

깊이 있는 독서에 필요한 세심함은 문학작품을 읽을 때 필요한 그런 유형의 세심함으로서, 뉴스 기사나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글을 띄엄띄엄 읽을 때의 태도와 대조되며, 이 세심함을 발휘하려면 인내가 요구된다. 또한 읽은 내용을 면밀히 해석하고 평가할 때는 신중한 분별력이 요구된다. 세심함, 면밀함 등 이런 기능을 한 가지라도 실행하면 이 기능들이 요구하는 덕목이 함양된다.

 

맞다, 읽기가 상승 추세인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잘 읽고 있을까? 이건 또 다른 이야기다. [전문 보기 : 덕성을 함양하는 독서방법]

 


캐런 스왈로 프라이어 리버티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On Reading Well: Finding the Good Life through Great Books(좋은 독서: 위대한 책들에서 좋은 삶 찾기, Brazos)가 있다.

Karen Swallow Prior, “The Art of Virtuous Reading” CT/CTK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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