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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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 김은홍, 정재영, 김선일
  • 승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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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홍=김 교회를 떠났지만 여전히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여기는 사람들,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정재영=정 원인의 하나는 부모와의 갈등이다. 만난 사람들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모태신앙이었다. 모태신앙이라는 것이 자신의 신앙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고 말한다.

“학교 안 가서 혼난 적은 없는데 교회 빠지면 다리몽둥이가 부러졌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는데 그게 굉장히 큰 짐이 되어 누르고 있다가, 자유의지로 판단할 수 있을 때가 되면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교회에서의 부딪힘이다. 목사님이나 다른 교인들과 마찰을 빚는 것이다. 나름 건전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데, 교회 안에서 수용이 안 되고, 질문을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신앙 없는 사람” 취급 받다가, 고민 끝에 교회를 떠난 사람이 많았다.

다니던 교회를 나올 수는 있지만, 그것과 교회 자체를 떠나는 것은 다르다. 그들은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교회에 별 기대감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아예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노력을 해 본다.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교회로 옮겨 가는 단계를 거치는 사람들이 많다.

신앙 자체를 포기할 수 없다? 일단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후한 점수를 줘 보자. 교회 안 나가도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라면, 뭐말까, 신앙의 내공 같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해 보자. 그렇지만, 그들의 다음 세대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김선일=선 교회 안 나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본인들도 구원의 확신이 엷어진다고 고백한다.

10년 전에는 그들 가운데 절반이 구원의 확신이 있었는데 현 시점에서는 그 수가 1/4로 줄었다. 이번 책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과연 그들은 신앙의 전수가 가능할까?’ ‘1세대는 유지할 수 있다 하더라고 신앙이 자녀들한테 전수될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녀는 말할 것도 없고, 10년 뒤 본인의 신앙도 장담하지 못한다.

사회적 지지 그룹이 없기 때문에 신앙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 아닌가?

이런 사람도 있다. 본인은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서 토론이 가능할 거라고, 목사님과의 대화의 문이 열려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목사님이나 교회의 반응은 ‘설교에 토 달지 마’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고, 유사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모임에 나갔다. 거기서 약간 지지그룹이 생겼다. 그래서 그나마 신앙이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런 장도 없이 가족끼리만 주일에 한 번 가정예배를 드린다면 정말 신앙이 유지되기가 어렵다.



그들은 ‘피해자’인가

 

그런 모임이 ‘또 다른’ 교회일 수 있을까?

교회는 이제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교회의 표지’ 곧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했을 때, 지금까지는 주로 말씀과 성례전과 권징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쓴 용어로 설명한다면, ‘선교적 공동체’ 또는 ‘교회 이전의 공동체’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 같다. 그들을 그냥 놔둘 것인가? 전통적인 교회 모델로 계속 끌어들이려 해서는 성과가 없을 것 같다. 자생적인 신앙공동체가 일어나도록 지켜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사회학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그래서 이제 목회적으로도 간과할 수 없을 만큼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것 아닌가. 기성 교회가 이런 현상에 어떤 식으로든 직면해야 하는데,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위해 교회가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교회와 그들 중 누가 생각을 바꿔야 할까?

둘 다 노력해야 한다. 그들에 대한 교회의 시선이 아주 부정적이다. 목사님들만 아니라 교인들도 그들을 ‘아주 교만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토론을 끌고 가야 하니, 악역을 맡겠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우리가 2년 전 통계조사를 갖고 세미나를 했을 때 그들에게 소속 교단을 물어봤다. [다들 아는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특정] 교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교단들보다 서너 배 더 많았다. 당시 그 교단 소속 목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그 교단의 특성이란 게 있다는 것이다. 그 교단 교인들은 자의식이 강해서 교회가 안 맞으면 꼭 다녀야 되나 하는 생각을 쉽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의식의 과잉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상처 준 사람이 있고 상처 받은 사람이 있다고 딱 잘라서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양쪽 다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냉정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냉정하게 질문해 보겠다. 우리가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을 문제 삼을 때, 은연중 그들을 피해자로 상정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과연 100퍼센트 상처 받은 사람들일까?

그들을 순도 100퍼센트 피해자로 전제하면, 결국 순도 100퍼센트의 가해자를 상정해야 한다. 결국 그 가해자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잘못해서 떠났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자의식의 과잉이든, 교만이든, 공동체에 유독 적응 못하는 기질이든, “귀차니즘”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원인이든, 그들에게 단 1퍼센트의 ‘원인’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찾아서 치유해야 하는 것이 진짜 교회 공동체가 할 일 아닌가? 그것이 결국에는 그들의 영혼도 살리는 것이 아닐까?

 

그들만의 공동체, 일종의 ‘대안 교회’ 비슷한 공동체들이 실험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을 보면, 대체로 진보적이다. 자유선택 중심주의자들이고, 개인의 다양성을 중시하고, 간섭 받고 싶지 않는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공동체는 이질성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 공동체의 핵심은 자기부인의 영성이다. 실험적 공동체를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성과가 안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헌신과 섬김에 익숙한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건강한 공동체라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상처 받은 사람들 또는 상처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얼마나 건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을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교회의 표지’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정통 신학이 이야기하는 교회의 표지를 제대로 견지한다면,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이 생길까? 이제 정통주의자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겠다. 말하자면, 뭔가 특별한 “새로운” 교회 공동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신앙의 선조들이 다듬어 우리에게 전수해 준 ‘교회의 표지’에 충실한 교회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오해 없길 바란다. 나는 평신도다.

지금 하는 얘기는 평신도의 자기고백 내지는 자기고발 정도로 이해해 달라. 나를 포함해서 많은 성도들이 유아적이다. 섬김을 받으려고만 한다. 걸핏하면 ‘나 상처 받았어’ 한다. 내가 남에게 상처 준 것은 생각 안 한다. 소비자 마인드, ‘고객은 왕’ 사고방식이 어느 곳보다 팽배해 있는 곳이 교회다. 우리가 목회자들과 직분자들에게 백화점 점원 상대로 “갑질”하듯 하지나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집단이 되어 버린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목회적 접근을 탐구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대체로 대세순응형이 아니라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유형이다. 목사님이 제시해 주는 정답이 아니라 ‘같이 고민해주면 좋겠다’는 그룹이다. 그들을 계속 무시하고 대세순응적인 성도들만 데리고 목회해야 할까? 정답제시형 목회자와 ‘같이 문제 좀 풀어볼까요’ 하는 목회자 중에 성도들은 어떤 목사님을 더 좋아할까?

한국인의 기질을 볼 때 아직은 대세순응형이 많을 것 같다. 누군가가 카리스마 있게 자신을 끌어주길 바라는 성도들이 많은 것 같다. 별 고민 없이 그냥 쫓아가고 싶은 것이다. 두 유형에 다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단 내 안에 질문은 있지만 교회라는 틀을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사회적으로는 개혁적인 행동주의자이면서도 교회라고 하는 전통적인 신앙구조 안에서 조용히 훈련받고 안심하고 싶은 사람들도 많다.

그런 것을 풀 수 있는 것이 소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목사님이 두 그룹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설교를 하기란 어렵다. 소그룹을 통해 교인들 스스로 치열하게 토론도 해보고 논쟁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먼저 목사님들이 소그룹을 다양한 고민과 주제들을 나누고 표현할 수 있는 곳으로 인식전환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목사님들이 소그룹을 조직 관리 측면에서 일사분란하게 이끌어가기 원한다.

어느 교회 성도 한 명과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우리 교회는 14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개척교회 같다’고 했다. 질서정연하지 않고 체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그게 오히려 장점이다. 교회를 짜임새 있게 하면서도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다. [전문 보기 :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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