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도 꽃을 피우는,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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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도 꽃을 피우는, 생명력
  • 성유원
  • 승인 2019.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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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나뭇가지_고여정
돌과 나뭇가지_고여정

 

경이로운 생명의 힘

 

2014년 가을, 세종문화회관에서 ‘제네시스’Genesis라는 제목의 사진전이 열렸다. 브라질 경제학자 출신의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ao Salgado의 작품전이었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에 가까운 자연을 흑백 사진으로 담아낸 그의 작품 속에는 훼손되지 않은 생명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경이로운 자연과 때 묻지 않은 생명이! 흑백의 대조가 조율해 내는 빛의 명암은 컬러 사진에서는 볼 수 없는 본질을 보게 했다.

내가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신현림의 사진 에세이집을 통해서였다.

책에 실린 여러 편의 사진 중에서 유독 살가두의 사진 “불확실한 은총”이 긴 여운으로 남아, 학교에 재직하던 당시 특별 수업 교재를 만들면서 그 사진을 넣기도 했다.

“불확실한 은총”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낌도 강렬했지만 나무로 만든 관 같은 것을 어깨에 멘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처연히 가고 있는 모습, 그 발걸음 뒤로 흰 구름이 강물처럼 가득히 흘러가는 모습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삶과 죽음, 인생의 고달픈 여정과 그 끝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시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다른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시선은 그렇게 장엄하고도 깊이가 있었다.

그런 살가두의 사진전에 맞추어 개봉한 빔 벤더스 감독의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해 생명력이 가진 양면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주었다. 파괴의 참상과 창조의 경이를.

1944년생 상파울로 대학 출신의 경제학도였던 살가두는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브라질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다.

국제커피기구(ICO)에서 근무하며 아프리카 출장을 자주 다니던 중, 아내가 사온 사진기에 빠진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풍족하고 안락한 길을 포기하고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 기획한 사진집에는 그의 고향 근처 ‘다른 아메리카’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이후로는 기아로 죽음의 땅이 된 ‘아프리카’의 실상, 세상의 밑바닥에서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고된 ‘노동자’들의 손, 살육으로 얼룩진 르완다 사태와 보스니아의 내전을 다룬 ‘엑소더스’의 현장 등을 가까이에서 찍어 세상에 알렸다.

그의 사진에 담긴 것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한 생명 파괴의 현장에 대한 기록들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잔인한 인간의 실체와 끔찍한 죽음을 눈앞에서 보아온 살가두는 “인간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기나긴 여정의 여파로 몸과 마음은 병들고!

결국 살가두는 사진기를 내려놓고 아내와 함께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주검처럼 황폐해진 땅에 나무를 심고 일구면서 건강을 되찾아간다.

20여 년에 걸친 그와 그의 아내 렐리아의 노력은 죽은 땅을 살아 숨 쉬는 광활한 숲으로 바꾸는 기적을 낳는다. 생기를 되찾은 살가두는 놓았던 사진기를 다시 잡고 태초에 가까운 장엄한 자연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8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그는 인간이 가진 힘을 폭력적, 파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건설했다. 그로써 우리는 더 이상 볼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됐으니…. 창밖의 새를 보고 그 새도 다른 어느 새가 사랑하는 존재려니 상상하는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그 새도 제 새끼를 사랑하고, 저 나무에 둥지를 짓고, 바람에 영향을 받는 삶을 산다는 생각을 못한다. 우리는 이제 그 모든 것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그 옛날 인간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족속들을 자주 만나면서 나는 그 경이로운 것들을 재발견했다.”

작업을 마칠 즈음 그의 마음은 풍요로워졌고, 인간에 대한 생각도 바뀐다. 원래의 인간은 매우 강인하고 뭔가 풍부한 것을 지니고 있었다고. 파괴된 인간도 새롭게 거듭날 수 있고 회복될 수 있다고.

그렇게 시원始原의 삶이 그대로 남아 있는 극지방이나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 등을 찾아다니며 찍은 경이로운 장면들은 ‘GENESIS’(기원, 창세기)라는 제목의 사진집으로 발간된다. 이전의 사진집이 대부분 끔찍한 생명 파괴의 현장을 담은 것이었다면 ‘제네시스’는 완전히 상반된 작품집이었다.

그것은 겨울에서 봄으로, 파괴에서 창조로, 죽음에서 삶으로 옮겨가는 생명의 놀라운 소생을 담은 것이기도 했다. 인간의 생명력은 그처럼 자연과 궤를 같이하면서도 다른 피조물에는 없는 영혼의 힘을 동반한다. 창조와 파괴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生의 힘을.

‘生’(생)이라는 글자는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초봄에 작고 여린 새싹이 단단하고 거대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모양 자체에 생명의 힘이 내포되어 있다. ‘生命’(생명)의 ‘命’은 하늘이 준 목숨이자 명령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생명에는 우리 각자에게 준 소명 혹은 사명이 숨겨져 있고,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초월적인 힘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가진 경이로운 힘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평범한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심의 거리를 뒤덮은 아스팔트 사이로 솟아나온 풀이나 돌담 틈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풀꽃 같은 것을 볼 때,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몇 천 년 전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불의의 사고로 팔, 다리를 다 잃고도 보통사람 이상의 일을 이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접했을 때, 우리는 생명의 경이로움에 전율을 느낀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존재에 깃든 생명력은 그렇게 우리의 제한된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이토록 강력한 힘을 가진 생명은 다른 생명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또한 주변 환경에 의해 생명이 사그라들기도 하고 소생하기도 한다. 죽은 땅에서조차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것이 생명의 경이로움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명의 힘을 세바스치앙 살가두는 자신의 전 생애와 작품집을 통해 보여주었다.

인류 역사는, 간략히 요약하면, 생명의 힘을 파괴적으로 쓴 경우와 창조적으로 쓴 경우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문화 예술을 창조하고 인간이나 자연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 온 삶은 생명의 힘을 창조적으로 쓴 경우고, 욕망과 이기심에서 비롯된 전쟁이나 강제 노역, 착취 등의 사건들은 파괴적으로 쓴 예이다.

특히 전쟁은 무고한 생명을 헛되이 앗아가는 가장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파괴의 역사 속에서도 ‘생명에 대한 사랑’을 꽃피워 왔기에 인류가 그 맥을 이어올 수 있었으리라.

무언가를 싹트게 하고 자라서 열매 맺게 하는 힘, 살아 움직이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힘,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고 다른 사람들과 세상까지도 살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인 생명력!

우리는 이런 생명의 힘을 의식하고 있는가? 그 힘을 어디에서 길어 올려 어떻게 쓰고 있는가? 그것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는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값싸게 낭비하며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아닌가? 영혼을 잠재우고 생명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면서 습관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가진 것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겨우내 굳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초봄의 새싹처럼, 자연이 피워내는 기운과 더불어 소생한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삶처럼, 모든 것을 초월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며 삶을 꽃피우게 해주는 힘의 원천인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잘 사용하는 것이 역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바탕일진대, 어떻게 하면 강인한 생명의 힘을 기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건강한 생명력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 경이로운 생명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감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혹은 알면서도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 뿐. [전문 보기 : 사막에서도 꽃을 피우는, 생명력]

 


성유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예원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 예술가들과 풍요로운 나눔 의 날들을 보냈다. 퇴직한 후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끌며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고여정글쓴이 성유원의 예원학교 제자이자 함께 독서하며 생각을 나누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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