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일곱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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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일곱 단계
  • 사라 섬너 | Sarah Sumner
  • 승인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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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거짓말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했다. 인간은 공통적으로 거짓말의 독성을 축소하려고 한다.

인간의 타락을 잘 보여주는 행동이다. 우리는 특정한 형태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잽싸게 라합과 코리 텐 붐을 떠올리며 그들은 거룩한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혹은 거짓말을 아예 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없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 글의 초안을 읽은 지인 중 몇 사람은 언제나 진실만 말한다면 무례한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겠냐며 우려했다. 짐 캐리가 주연한 영화 <라이어 라이어>에서는 상대방에게 무조건 솔직하게 말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준다.

재치 있는 말과 죄를 짓는 거짓말이 다르듯이 무례하게 생각을 내뱉는 말과 진실한 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실을 말하는 법을 고심하기보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가 많다.

대다수 사람들은 거짓말을 방어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방어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의 성품과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는 거짓이 없다(딛 1:2).

거룩하신 그분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행 1:5)고 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없기에 거짓말은 분명히 죄다.

거짓말에 조금이라도 옳은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시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이 마음에 어둠과 거짓을 품는 일은 분명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거짓말을 사용하시는 순간이 있다고 해서 거짓말이 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라합이 인정받은 이유는 거짓말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었다(히 11:31).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했다. 비록 기생이었지만 라합은 정탐꾼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구해주리라 신뢰하며 믿음으로 위험을 무릅썼다.

라합은 주 여호와를 경외했다. 그녀는 여리고왕을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러나 왕에게 사실대로 말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구하실지 시험해볼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지는 못했다.

게슈타포의 눈을 피해 유태인을 숨겨주어 수많은 생명을 살렸던 코리 텐 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태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이 네덜란드 여인의 행동은 가히 영웅적이다. 하지만 코리가 거짓말을 한 것은 하나님을 닮은 행동이 아니다.

수많은 죄악이 자행되던 당시 상황에서는 거짓말이 최선의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코리의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거짓말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마저 믿음의 행위로 간주될 만큼 이 시대가 타락했다는 점이다.

모든 형태의 거짓말이 하나님의 거룩함에 위배된다는 말은 비논리적이며 극단적인 흑백논리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영적인 데 있다. 우리가 거짓말의 죄성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진리이신 하나님의 온전한 선하심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논쟁은 이제 우리가 과연 진실을 알 수 있는가로 이어진다. 물론 진실을 100% 완전하게 알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하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에 진실을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아무리 타락한 인간이라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

달라스 윌라드는 호세아 선지자의 말을 빌려 “사람은 자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안다”고 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의 길을 걷던 호세아 당대에는 죄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금지했다. 마찬가지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오늘날 문화에서도 죄라는 단어를 금기시한다. “정의”를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은 또 어떤가.

우리는 사회 정의를 외치면서도, 세상을 불의하게 만드는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는 말은 아낀다.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거짓말에 대해서도 거의 말하지 않는다.

솔직하려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아름답지만 깨어진 이 세상에는 가슴 아픈 일이 가득하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하는 진실과 대면하려면 탄식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절실한 정도로 이 세상이 타락한 것은 아니라며 상황을 실제보다 너그럽게 판단하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소망이 없다는 정반대의 거짓말에 속아 끝없이 절망하고 싶을 때도 있다.

사회적 통념이 된 선의의 거짓말,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하는 거짓말, 자기보호를 위해 직장에서 하는 거짓말, 믿음의 행동과 결합한 거짓말,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세상은 괜찮다는 거짓말, 그리스도의 구원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짓말 등 거짓말의 유혹은 실제이며 빠르게 확산된다.

 

 

거짓말의 일곱 단계

부자셰프스키는 자신의 저서 「우리가 모를 수 없는 일」(What We Can't Not Know)에서 “추락의 일곱 단계”를 제시했다. 나는 이를 거짓말의 일곱 단계로 설명하고자 한다.

 

  • 1단계 거짓말

한 번의 거짓말은 모닥불을 지피는 성냥개비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거짓말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갈 가능성이 높다.
 

  • 2단계 자기보호

자신이 거짓말했다는 사실에 대해 거짓말한다. 일단 한 번 거짓말을 하면 다른 거짓말로 이어지기 쉽다. 저자는 “거짓말은 약골이라서 보디가드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 3단계 습관화

이 단계에 이르면 별것 아닌 일에도 습관처럼 거짓말한다.
 

  • 4단계 자기기만

사람들에게 하는 거짓말을 스스로 믿기 시작한다. 자신을 속일 만큼 거짓말에 능숙해진 단계다. 자기를 기만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뒤틀린 인간 본성에 속은 피해자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무죄가 되거나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하셨다.

모르고 지은 죄라도 용서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거짓말도 죄인 건 마찬가지다. 자기기만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누군가에게 속거나 거짓 정보를 듣는 것과는 다르다. 자기기만은 악한 죄다.

본디오 빌라도는 진리란 접근 불가능하다는 자기기만에 빠져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대면했을 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사실 진리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빌라도는 자신의 비겁함을 비추는 진리의 빛을 피하려고만 했다. 빌라도의 이 질문은 예수님의 결백함과 대조되어 그의 연약한 성품을 보여준다.

4단계에 이른 사람은 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기 내면의 도덕적 잣대를 보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다. [전문 보기 : 거짓말의 일곱 단계]

 


사라 섬너(Sarah Sumner)는 캘리포니아 주 레딩에 있는 A.W. 토저신학교의 학장이며 「기준 이상의 리더십」(Leadership Above the Line)의 저자다. CTK 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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