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기도하는 공동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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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기도하는 공동체가 사라졌다
  • 아담 스태드밀러
  • 승인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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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렸다. 일어나 기도할 시간이라는 신호다. 새벽 3시, 나는 잉글랜드 중부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열린 ‘기도하는 공동체 만들기’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있었다.

몇 달 전 컨퍼런스 안내문을 읽을 때만해도 새벽 3시에 기도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심지어 낭만으로 느껴졌다.

한밤중, 따뜻한 새털침낭에서 빠져나와 비바람을 맞으며 예배당을 향해 180여 미터를 걸어가니 또 다른 차가운 석조건물이 나타났다.

수도원 석조건물에 대한 매력은 이제 거의 사그라져 버렸다. 내가 추운 주말을 영국에서 기도하는 사람들과 보냈듯이, 초대교회도 기도를 통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했을 공동체였다. 사도행전에서 누가가 말했던 것처럼, 그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

오늘날엔 이와 같은 기도 공동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회들이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기도를 사역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기보다는 제반 목회활동에 수반되는 부차적인 행위로 여긴다.

오늘날 우리 문화가 키우는 영성은 분주한 영성이다. 우리는 이것저것 다른 일을 하다가 채 몇 분도 안 되는 시간만 예수님께 드린다.

간혹 있는 극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교회 지도자들은 기도와 말씀의 권위에 사도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기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많은 목회자들이 차후 계획과 프로젝트, 또는 사역을 위한 열정만 가득 충전한다. 도대체 그 원인은 무엇일까?

교인들이 지닌 결단력과 카리스마, 또 재능으로 빚어낸 효율적인 방법들이 점차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가 변할수록 교회의 계획은 점차 그 효율성을 상실하고 있다.

교회문화의 조류도 쇠퇴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겉만 번질하거나 시대조류에 편승하는 예배보다 강력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예수님의 고난과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 다시 모인 사도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기도였다. 그들의 복음전파 전략은 기도가 전부였다. 오늘날 우리에겐 그 사도들의 뒤를 따를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가 기도하지 않는 교회라면, 성도들에게서도 많은 기도를 기대할 수는 없다. [전문 보기 : 기도하는 공동체는 기도에 헌신하는 지도자에게서 시작]

 


아담 스태드밀러 캘리포니아에 있는 라호이아LaJolla 기독교 공동체의 목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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