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내지 못한, 너무 늦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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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내지 못한, 너무 늦은 말
  • 임지원
  • 승인 201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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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공감일기

 

저녁 식사에 비해 아침은 준비가 수월하다. 나는 빵을 좋아하기 때문에 샌드위치를 주로 만든다. 냉장고에 샌드위치 햄과 토마토, 슬라이스 치즈, 양상추가 모두 구비되어 있다면 브라보! 커피를 준비하고, 끄트머리를 잘라낸 식빵에 말린 자두를 다져 넣은 마요네즈를 바르고, 양상추, 토마토, 햄, 치즈를 올린 다음, 식빵으로 덮어 살짝 눌러준다.

반으로 잘라 접시에 놓으면, 이게 바로 주부의 행복이지! 요즘은 연유를 뿌려 따듯한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하는데, 식빵 넉 장을 프라이팬에 올린다.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뒤집고 두 장의 식빵 위에 슬라이스 치즈를 올린다.

나머지 두 장 위에는 연유를 아낌없이 뿌리고 햄을 올린다. 그리고 햄이 올라간 식빵과 치즈가 올라가 살짝 녹은 식빵을 딱 붙여, 바닥이 넓은 대접으로 꾸욱 눌러주면 따듯한 연유 샌드위치 완성. 아, 맛있어! 오늘은 둘 중 어떤 샌드위치를 만들까!

눈을 뜨자마자 생각한다. 그 날도 그랬다. 전날 장을 본 터라, 모든 재료가 다 냉장고에 있으니 알람이 울리자마자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두 가지 샌드위치를 다 만들겠어! 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샌드위치를 만들어 식탁에 놓고 커피도 놓고 하니, 뭐랄까 주부로서의 자부심이 차오른다.

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가족의 건강을 위해 아침 식탁을 준비하는 주부의 손길이여 복되도다! 우리 늦둥이 둘째 아이가 슬슬 눈을 비비며 식탁으로 온다. 왠지 모르게 골이 난 표정이다. 짜증이 났구나.

샌드위치를 보자마자, “나 빵 싫어! 밥 줘! 계란밥!” 오늘 따라 빵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냥 먹지 또 계란밥을 갑자기 하라니…. 늦둥이의 권력인가! 아빠가 먹던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냉장고로 가 계란을 꺼내 계란밥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란으로 고슬고슬 볶은 밥에 케첩을 뿌려 주자, 뭐가 또 문제인지 대충 쥔 숟가락에, 먹는 품새만 봐도 한숨이 나온다.

좋게 훈육을 해본다. 왜 화가 났냐고 물어본다. 답이 없다. 가족을 위해 참아주면 좋겠다고 설득해보지만, 화를 안 풀더니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정수기를 보며 응! 응!! 그런다.

뭐지? 물을 떠다 바치라는 것인가? 저 버르장머리, 딱 고칠 타이밍이다. 게다가 오늘 아침 식탁이 보통 식탁인가? 나는 오늘 아침 무려 두 종류의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모두 행복하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냥 찾아온 짜증 때문에 다 망쳤다. 한숨이 나온다. 눈을 감는다. 내 인내는 이미 한계다.

 

“엄마가 그만하라고 했지! 대체 왜 이러는 데??”

“이렇게 무턱대고 짜증내면 우리 집 쑥대밭 된다고 전에도 말했지!!!”

“오늘 학교 가지 말고, 이제 엄마라고 부르지도 마!!!”

 

나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샌드위치를 먹던 남편, 갑자기 먹던 빵을 내려놓고 식탁에서 일어난다.

출근하는 남편 앞에서 아내가 소리를 지르니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 그래도 이렇게 되기까지 이 작은 생명체가 얼마나 내 화를 돋우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저렇게 둘 다 꼴 보기 싫다는 듯 일어나 버리면 나는 어쩌란 말인가! 식탁에는 두 종류의 샌드위치가 널려 있고, 아이는 울고 있고, 남편은 떠나버렸다.

겨우 마음을 추슬러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니, 눈물이 나온다. 좀 더 참았다면 좋았을 텐데…. 바닥 친 자존감. 올라오는 죄책감.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망했다.

 

주일날, 공과공부를 하는데 한 아이 표정이 좀 어둡게 느껴진다. 항상 밝고 다정한 성품의 아이가 왜 그럴까? 하던 차,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낸다. 아침에 교회 오는데, 자기가 준비를 늦게 해서 엄마가 기분이 많이 안 좋았다는 것이다.

아, 익숙한 느낌! 그 아이 집도 우리 집도 수도권의 신도시에 위치해 용산에 있는 교회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한 40분, 차가 막히면 1시간도 걸리는데, 네 식구가 준비해서 아침 10시까지 교회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일찍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우리 집도 마찬가지다. 아침 식탁을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가져가야 할 것들을 챙긴다. 그러다보면, 내 준비가 늦어진다. 자기 몸 하나 준비하는 남편은 일찌감치 준비를 마치고, 눈치를 주기 시작한다. 오늘 마라톤 경기가 있어 늦게 나가면 막힌다고 노래를 부른다. 그래도 교회를 가는데, 눈썹도 그려야 하고 머리도 좀 말아야 하는데, 아이는 달려와 자기 머리를 묶으라고 한다.

허둥지둥 준비하고 엘리베이터에 오르면, 교회 가방을 안 챙겼다는 아이. 엄마가 문 앞에 딱 두었는데, 그걸 안 챙겼어!!! 그냥 가자! 성경공부 교재가 있어서 절대 안 된단다. 결국 다시 올라가 가방을 챙겨 나오자, 남편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나도 짜증이 난다.

설상가상, 중간에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아…, 익숙한 동네 아줌마가 올라탄다. 우리 가족의 냉랭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눈치를 살핀다.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는데, ‘대한예수교 장로회 원동교회 유년부’가 프린트 된 가방이 우리 가족의 정체성과 목적지를 말해준다. “아, 교회 가시는 구나….” 얼굴이 달아오른다. “뭐 문제 있어요?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교회 다닌다고 맨날 행복하고 하하 호호 그런 거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다.

강렬하게 말하고 싶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타자마자 “엄마가 준비물 챙기라고 몇 번을 얘기를 했는데!” 가방만 챙겼어도 그 아줌마 안 만나는 건데… 이러고 교회를 가다니… 더 큰 죄책감이 밀려온다. [전문 보기 : 너무 늦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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