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의 저주는 아프리카인과 아무 관련 없다
상태바
함의 저주는 아프리카인과 아무 관련 없다
  • 장세훈
  • 승인 2019.11.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세기 9:20-27

 

 

가 가르치고 있는 신학대학원은 영어로 수업하는 외국인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몇 년 전이었다.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창세기를 수업하던 중 평소와는 달리 이들에게 조금 화를 내었다.

아프리카에서 유학을 온 한 학생이 창세기 9:20-27에 등장하는 함의 저주를 언급하면서 함을 자기네 조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학생은 아프리카인의 피부가 검은 색이 된 것은 함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 학생의 잘못된 성경이해를 질타하고 아프리카인의 피부색과 함의 저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수업을 마친 후에 그 학생은 내게 찾아와 고마움을 표시하며 성경해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다.

함의 저주는 이 학생의 경우보다 더욱 심각하게 왜곡되거나 오용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아프리카의 낙후성을 함의 저주와 연결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심지어 함의 저주는 노예무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악용되기도 하였다. 노예무역이 1600년대부터 시작될 때 함의 저주는 아프리카인들의 노예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로 사용되기도 했다.

과연 창세기의 이 본문에 언급된 노아의 아들 함은 아프리카인의 조상을 가리키는 것일까? 정말로 함의 저주는 지금도 아프리카에 또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창세기 9:20-27에 등장하는 함의 저주의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본문에는 함의 행동으로 인해 함이 아닌,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저주의 원인과 그 의미는 무엇일까?

 

함의 저주, 원인과 의미

본문은 포도주에 취하여 맨 몸으로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노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벌거벗은 노아의 하체를 먼저 목격한 이는 함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함은 형제인 셈과 야벳에게 알렸고, 셈과 야벳은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하여 노아의 하체를 가렸다.

술이 깬 노아는 세 아들이 한 일을 알게 되었고, 함을 향해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9:25)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왜 노아는 함을 향해 가나안의 저주를 선포한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여기서는 대표적인 두 입장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어떤 학자들은 함의 저주가 그의 그릇된 성적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다시 말해, 함이 아비 노아의 하체를 보고 성적 욕망을 품는 잘못을 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약의 몇몇 본문은 하체를 보는 행위와 성적 행위를 분리시키지 않는다(레20:17).

둘째, 벌거벗은 노아의 모습에 대한 세 아들의 다른 반응과 태도 차이에 집중하면서 함의 문제를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셈과 야벳은 노아의 하체를 보지 않고 뒷걸음질해서 그의 벗은 몸을 옷으로 덮었지만 함은 노아의 하체를 보고 그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말았다. 형제들의 이와 같은 상반된 반응과 모습은 곧 함의 부적절한 처신을 암시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해석 가운데 뒤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여긴다.

예를 들면 고든 웬함Gordon Wenham은 우가릿 서사시의 아캇 1:32-33을 인용한다.

이 문서는 아비가 술을 마신 경우에 아들이 아비를 손으로 부축할 것과 아비가 만취할 경우에는 아들이 아비를 직접 데리고 올 것을 언급한다.

웬함은 만취한 아비에 대한 아들로서의 올바른 태도와 처신을 보이지 못한 함의 문제를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왜 함의 저주가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선언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여기서는 크게 두 가지 입장만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문 보기 : 창세기는 인종주의 성경이 아니다]

 


장세훈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이며 「한권으로 읽는 이사야서」(이레서원)와 「내게로 돌아오라」(SFC)의 저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