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신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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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신념
  • 성유원
  • 승인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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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원의 사유의 정원_일곱 번째 산책

신념이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는 것이며, 
참된 가능성을 알게 되는 것이며, 
속에 배태되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글 성유원

그림 고여정

 

 

마음속의 ‘낙타 이야기’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이야기다. 여름 방학 즈음에 한 졸업생이 신문 기사 하나를 오려 들고 찾아왔다. 충남 공주에 있는 ‘상신리’라는 도자기 마을에 관한 기사였다. 기사에 따르면 그곳은 젊은 도예 전공자들이 철화백자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함께 만든 마을이었다. 계룡산 자락에 둘러싸인, 대문도 담도 없는 작은 마을. 

“선생님, 여기 같이 가요.”

고등학생이던 제자와 함께 그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었다. 오후 7시쯤 버스가 끊어지는, 생각보다 더 외진 곳이었다. 낮에 동학사 쪽으로 난 길을 따라 계룡산 산책을 마치고 상신리에 가려고 했을 때는 이미 마지막 버스가 떠난 후라서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택시를 잡아타고 갔다.

신문 기사의 내용대로 상신리 도자기 마을은 도예와 미술을 전공한 삼십대 후반의 젊은 부부들이 터를 사고 집을 지어 만든 특별한 공동체였다. 서울에서 그곳까지 일부러 찾아왔다고 하니까 대여섯 가구에 사는 도예가들이 한 집에 모두 모여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삼겹살 구이로 푸짐한 저녁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조선 시대에 꽃을 피웠지만 임진왜란 때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간 후 지금은 맥이 끊어져가는 철화백자의 전통을 다시 살리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 가난한 미술인들이 각출하여 이곳에 터를 잡고 각자의 특성을 살린 도자기를 구우며 철화백자를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가장 고민되는 건 아이들 교육 문제예요. 지금은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풍요롭게 자라서 너무나 좋지만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이곳을 지킬 수 있을지….”

남들이 보기엔 거창한 게 아닐지라도, 가치 있는 뭔가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과 고민이 함께 묻어나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나 유행과 동떨어져 있는 것일수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일수록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많고, 그에 따른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일이지만 제자와 함께했던 1박 2일의 짧은 여행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삶을 엿본 추억인 동시에, 신념대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 소신을 지키며 의미 있는 삶을 이루어가기를 바랐던 마음과 함께.

그 무렵이었던가. 지도하던 독서 동아리에서 서영은 작가의 작품을 학생들과 함께 읽었다. 서영은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알게 된 인상 깊은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2, 3학년 때 만난 국어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꼼꼼하게 분석하여 가르치면서도 가끔씩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문학 작품을 소개해 주셨다. 대개는 당시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작가들의 단편소설이었다. 선생님이 작품의 전문全文을 낭독하는 동안 우리는 귀 기울여 듣기만 했고, 그렇게 집중해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듣기 평가’를 받았다. 

그때 수업시간을 통해 감상했거나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작품 중에 〈황금 깃털〉, 〈먼 그대〉, 〈노란 반달문〉과 같은 서영은 작가의 단편들이 있었다. 같은 소설이라도 교과서에 실리면 작품이 가진 본래의 빛깔과 생동감이 사라지는 것 같았던 청소년기에 그 소설들은 색다른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집중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스며들었던 〈먼 그대〉의 주인공 ‘문자’는 처음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H출판사의 편집부에서 10년 넘게 묵묵히 일해 온 문자는 직원들이 직장의 좋지 않은 여건에 불평을 하며 떠나가도 동요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옷도 해 입지 않고 자신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는 문자를 회사 동료들은 측은하게 여기다 못해 언짢게 생각하여 따돌렸지만, 그녀는 그들의 행동이나 험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응하는 그녀의 태도, 그때마다 느끼는 감정, 그녀가 가진 가치관 같은 것들이 보통 사람들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현실 세계에서의 손익을 따져가며 손해를 피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행동하는 반면, 문자는 그런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크나큰 고통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거나 탄식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그녀가 바보이거나 목석인 듯이 보였던 것이다.

더욱이 의아한 것은 힘들게 번 돈을 갈취해가기만 하는 ‘한수’라는 존재에 대한 문자의 태도였다. 혈육을 사이에 두었다고는 해도 자신을 이용하기만 하는 사람을 원망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자가 보여준 그러한 태도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헤아리기 어려운, 무언가를 위해 수난당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녀 안의 무엇이 그것을 감당하게 한 것일까? 무엇이 남의 시선이나 수군거림, 자신이 사랑과 헌신을 바치는 사람에게서 받는 무시, 가난과 결핍 등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그 실마리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다. 그녀 안에 살고 있는 ‘낙타 한 마리’로. 

문자는 한수를 위해 마련한 돈을 말없이 내주고 저녁상을 차리지만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돈만 들고 나가버린다. 멀어져 가는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낙타 한 마리가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 다음 선택도 변함이 없을 거라고, 자신의 삶을 꿋꿋이 짊어지고 살아갈 거라고, 편한 길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고 예고라도 하듯이.

절망적인 상황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낙타. 문자가 사막 같은 험난한 인생을 건너가게 하는 힘의 원천. 온갖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어려움을 넘어서게 하는 그녀 안의 낙타 한 마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히 고통을 견디는 인내일까?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겠다는 의지와 신념의 상징은 아닐까?

십대에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서영은의 주인공들을 대학 시절에 다시 만났다. 단편마다 내용은 달라도 작품 전체를 관통하며 이끌어가는 작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자 비로소 〈먼 그대〉의 ‘문자’를 이해할 수 있었다. 주인공의 내면의 독백 속에 녹아 있는 작가의 목소리도 좀 더 또렷하게 들렸다.  

“너는 할 수 있어. 도달하기 위한 높은 것을 마음속에 지님으로써 너는 고통스러울지 모르지만 그 고통이 너를 높은 곳에 이르게 하는 사닥다리가 되는 거야.”

소설의 내용보다도 이러한 작가의 신념에 깊이 공감한 후부터는 힘들 때마다 낙타를 떠올리곤 했다. 정신적 가치를 지키며 더 높은 차원에 도달하기 위한 시련의 과정을 이겨내게 해주는 신념.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도 상처받지 않고, 그 고통을 더 높은 곳에 다다르기 위한 사다리로 생각하는 자세는 나의 젊은 시절의 어려움을 견디게 해준 버팀목이자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되어 주었다. 찬바람 가득한 세상의 혹독한 날씨에도 마음속에 봄날의 온기를 품게 해준 손길.

그렇게 추위를 견디며 이십대의 끝자락에 이르렀을 무렵에 벼락같은 목소리를 만났다.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말은 크나큰 종소리처럼 긴 울림을 남겼다. 

“한 사람이 겪어내는 고통의 크기는 그 사람의 크기와 같다.” 
“더러운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스스로는 더러워지지 않는 바다가 되어라.”
그의 책에서 발견한 또 다른 문장 하나는 다시 한 번 ‘사막을 건너는 낙타’를 마음에 새기게 해 주었다. 
“나는 사랑한다. 상처를 받고도 그 영혼의 깊이를 잃지 않는 자를!” [전문 보기 : 고통을 넘어서게 하는, 신념]

 


성유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예원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 예술가들과 풍요로운 나눔 의 날들을 보냈다. 퇴직한 후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끌며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고여정 글쓴이 성유원의 예원학교 제자이자 함께 독서하며 생각을 나누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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