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세 가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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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세 가지 오해
  • 권해생
  • 승인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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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난제 해설 No.12 누가복음 2:6-7; 마태복음 2:1-12; 누가복음 2:13-14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7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마태복음 2:1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누가복음 2:14 

 

성탄절이 다가온다. 성탄절 설교에는 어떤 성경 본문이 적합할까? 교회마다, 설교자마다 다양한 설교 본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실제 탄생 이야기가 나오는 성경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뿐이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예언이나 그 의의를 말하는 성경 본문은 더러 있지만, 예수님의 실제 탄생 이야기는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따라서 성탄절에 설교자들은 주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설교한다.

그러나 이 본문들에 대해 습관적으로 잘못 해석하고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세 가지를 짚어보고, 그 오해를 바로 잡아 보자. 

 

첫 번째 오해: 빈 방이 없는 여관?

예전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교회마다 연극 발표회를 많이 했다. 그중 대표적인 연극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이다.

집집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요셉과 마리아를 거절하고, 심지어 여관에도 빈 방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출산을 하고, 아기 예수를 여관의 마구간 구유에 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누가복음 2:7에 관한 전통적 해석이다.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6-7)

그래서 설교자는 우리도 각자의 마음에 다른 것으로 가득 차서 정착 예수님에게 내어드릴 마음의 방이 없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고 권면한다. 그러나 이 본문의 의미는 과연 그러할까? 태어날 때부터 거절당하고 냉대 받은 아기 예수의 모습을 말하는 것일까?

먼저 “여관”으로 번역된 헬라어 ‘카탈루마’는 대부분의 영어 성경도 ‘인’inn으로 번역하지만,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 ‘카탈루마’가 여관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방문객을 위한 가정집의 객실guest room을 가리킨다.

그래서 누가복음 22:11은 정확하게 “객실”로 번역하였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상업적인 여관을 뜻하는 더 전문적인 단어인 ‘판도케이온’이 따로 나온다(누가복음 10:34).

따라서 본문은 요셉과 마리아는 베들레헴의 한 가정집을 방문했으나, 그 집의 방문객을 위한 객실이 다 차서 그들이 머물 방이 없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 아기 예수를 구유에 뉘였다는 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요셉과 마리아 가족이 아주 냉대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머물 곳이 없어 사람들이 거주하지 않는 마구간으로 쫓겨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베일리Kenneth E. Bailey의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에 따르면, 1세기 유대인의 일반 가정집 구조는 주인의 방과 마구간이 붙어 있었다.

구유는 여러 사람이 머무는 방에서 그나마 아기가 누울 만한 적당한 크기였을 것이다. 방문객이 머무는 객실이 다 차서 주인은 아마도 자신들이 머무는 안방에 요셉과 마리아 가족을 초청한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가족은 냉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인으로부터 귀한 환대를 받은 것이다. 베일리의 주장이 옳다면, 독자들은 여기서 방문객을 위해 객실을 내줄 뿐만 아니라 안방에까지 방문객을 들이는 주인의 따뜻한 손님 접대를 만날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렇게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환대로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신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세상에 오신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명의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다.

겉으로는 로마 황제 아우스도나 수리아 총독 구레뇨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인다(누가복음 2: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무명의 사람들의 따뜻한 행동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베들레헴 시골의 이름 없는 한 촌부는 그의 환대를 통해  메시야를 영접하는 위대한 사역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 주위 사람에게 소홀하지 말자. 나를 찾아오는 사람을 환대하자. 오늘 내가 하는 따뜻한 행동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께서는 작지만 따뜻한 나의 섬김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실 것이다. 올 성탄절에는 내 주위 사람을 좀 더 따뜻하게 대하자. [전문 보기 :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세 가지 오해]

 


권해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작은목자들교회 협동목사. 「요한복음 주석」(고신총회출판국, 2016)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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