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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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죄가 없다
  • 임지원
  • 승인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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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공감일기

 

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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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둥이로 태어난 우리 둘째 아이가 안과를 다니기 시작한 지 8년째다. ‘해리성 상사시’라고, 원인도 잘 모르고 수술을 해도 자주 재발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질환 때문이다. 이른둥이는 의례적으로 확인하는 의료절차들이 많이 있다.

백일 즈음에는 머리 초음파를 했고, 언젠가는 청력 검사도 했었다. 돌 즈음에는 안과 진료. 늘 괜찮다고 했었기에 나는 그냥 확인하는 정도일거라 생각하고 부담 없이 아이를 데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다가 “엄마, 아이 눈 사시인 거 아세요?”

갑자기 훅 들어온 의사의 말에 갑자기 아무것도 안보이게 눈물이 차오르고 눈을 깜박이자 눈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툭 튀어나가는 것 같았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처음 키워보는 것도 아니고 큰 애도 눈이 나빴기에 신경을 쓴다고 썼다.

그런데, 사시라니…. 내가 믿지 않는 것을 눈치 챘는지, 옆에 있는 사진기로 아이 눈을 찍는다. 찰칵 찰칵 그리고 뷰 파인더에 담긴 우리 아이 눈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눈동자 여기저기 퍼져 있는 거 보이죠?

엄마가 아이 눈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니까 제발 인정하시고 정신 차리시고 하는 듯 이어진 팩트 폭격. 아이의 눈만 찍힌 사진을 보는 것도 불편했다. 이전에도 나처럼 인정 못하는 보호자를 만났던 걸까?

왠지 모르게 더 가혹하게 들리는 그의 말투에 ‘이런 차가운 인간을 봤나….’ 그래요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낳은 이른둥이를 돌까지 키우며 이제 조금 죄책감에서 벗어난 엄마에게 너무 불친절하신 거 아닌가요?

그때 그 진료실을 나오며 속상했던 마음, 이상하게 오랫동안 생생하다. 이후 몇 개월에 한번, 때로는 한 달에 한번, 수술을 준비할 때는 한 달에도 여러 번 그 의사를 만나면서 만날 때마다 어쩜 고구마 열 개를 물 없이 꾸역꾸역 먹는 기분이던지. 나는 안과진료를 오라는 확인 문자만 오면 “주여…!” 

결국 나는 병원을 옮기기로 했다. 동네 약국 약사도 눈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무조건 제일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시스템 자체가 다르다며 왜 큰 병원, 큰 병원 하는지 가서 보면 안다고 내 등을 밀었다. 그래! 결심했어.

나는 더 좋은, 더 큰 병원에 가겠어. 이 분야의 최고 명의에게 우리 아이를 맡길 거야! 하지만 그에게 저 병원 옮길 겁니다! 말하며 진료기록을 달라고 하는 건 할 수가 없어 항상 따듯한 말투로 엄마를 지지한다는 표정을 짓는 소아과 의사에게 긴히 부탁해 상급 병원 전원 의뢰서를 받아들고 드디어 더 큰 병원으로 갔다. 

대기실 풍경부터 차원이 다르다. 어떤 아이는 양쪽 눈에 플라스틱 보호대를 붙였는데, 그 보호대를 눈에 고정시킨 반창고가 X자 모양이다.

눈에 X자가 두 개라니 아무리 큰 병원이라도 너무 한 거 아닌지…. 게다가 돌까지는 안돼 보이는 아이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고, 복도 의자에는 환자복을 입은 아이들이 만화영화가 나오는 태블릿 PC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옆에서 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엄마들 표정을 보니, 마음이 무너지며, 내가 너무 엄살을 떤 건 아닌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만난 의사는 미숙아들의 눈 질환 전문의다.

나를 보더니 지금 당신이 다니고 있는 병원의 그 의사를 잘 알고 있다며 충분히 치료할 수 있으니 이렇게 멀리 오지 말고 그냥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를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느니 고구마 열 개를 물 없이 먹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뭐 중요하나 싶고, 엄살 떤 것도 창피하고 나는 그렇게 다시 다니던 병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술해도 재발합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들을 수 있는 가장 가혹한 말이 아닐까. 나는 이 말을 진짜 많이 들었다. 나중에는 “네네 저 알고 있어요.”라고 답을 할 정도로. 그래도 어쨌든 속을 끓여가며 진료를 받고 다섯 살 즈음 우여곡절 끝에 첫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잘 됐고, 이후에는 석 달에 한번 정도 방문해 검진을 받았다. 예약 시간을 맞춰가도 한 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만날 수 있어 검진 날만 되면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그 선생님의 진료 덕분인지 두 눈 모두 교정시력이 1.0 이상 유지되며 잘 지냈다.

하지만 역시 그의 저주 때문인가! 아이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료 때마다 재발한다, 재발한다…, 그렇게 재발한다더니 결국 재발을 한 것이다. 수술 여부를 놓고, 다시 그 고구마 대화가 시작됐다. 

 

의사:    수술해도 재발합니다. 
나:    네네 알고 있어요. 그래도 3학년 되기 전에 도전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의사:    수술이후 더 안 좋은 사시로 갈 수도 있어요. 
나:    그럼 어떡하죠? 선생님이 결정을 해주시면 좋겠는데요
의사:    엄마가 결정하세요. 
나:    더 안 좋은 사시는 안 되죠. 그냥 안 할래요. 
의사:    2학년만 되도 외모에 대해 고민하는데, 우연아, 친구들이 니 눈 이상하다고 안 해? 
우연:    친구들 다 착해서 안 놀려요. 저 수술 안 할래요!!! 
나:    …눈 이상하다고 하면 안 되는데…. 그럼 수술 할게요.  
의사:    재발할 수 있고, 더 나쁜 사시로….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몇 달 동안의 진료에 나는 또 결심을 했다. 다시 큰 병원으로 가서 소아 사시 수술의 최고 권위자를 만나 이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자. 큰 병원에 예약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하며 상담사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다가 그만 울컥해 눈물까지 쏟게 되었다. 다행히도 마음 따듯한 상담사분이 소아안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와 통화까지 하며 엄마들이 좋아하는 의사라며 콕 찍어서 두 달 후로 예약까지 해준 것. 이것은 기적이었다. [전문 보기 : 고구마는 죄가 없다]

 


임지원 주부. 딸 둘과 남편, 넷이서 경기도 일산에서 씩씩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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