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지막 날들을 하나님께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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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지막 날들을 하나님께 맡기자
  • 킴 쿠오 | Kim Kuo
  • 승인 2019.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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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살을 옹호하는 것은 생의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국가의 법이 우리의 신앙과 완전히 일치하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교회에서 우리는 “죽을 권리”라는 신조에 맞설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명백한 두 가지 원리를 고린도전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3:16-17)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나에게 이 문제는 단지 신학적인 논제가 아니다. 많은 CT 독자들이 잘 알다시피 백악관 공공정책실 종교 담당관이었던 내 남편 데이비드 쿠오는 존엄성과 용기를 가지고 암과 싸웠다.

데이비드는 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대체요법, 임상실험을 거치면서 10년을 버텼다.

그 과정에서 정신과 육체, 감정에 손상을 입었지만, 데이비드는 결코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암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성경 말씀들에 우리를 온전히 맡겼고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다짐했다.

하나님께서 데이비드를 고치실 수 있다고, 설사 고쳐주지 않으시더라도, 하나님께서 데이비드가 살아있는 날들을 온전히 사용하실 것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었으며 그 믿음을 결코 져버리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6개월에서 12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2003년부터 세 번씩이나 들었다. 메이나드가 받았던 것과 똑같은 진단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의 마지막 날을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 사람이, 설사 의사라 할지라도, 할 수 있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진단을 받고서 메이나드는 자신이 죽을 날을 정했다. 그녀와 똑같은 진단을 받은 데이비드는 그 뒤로 10년을 더 살았다. 그 동안에 우리는 예쁜 두 자녀를 갖게 되었고, 데이비드는 암과 씨름하고 싸우면서도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나님의 보좌 아래 있는 그 누구도 인생의 여정이 어떻게 나아갈지 예견할 수 없으며, 앞날을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메이나드처럼 데이비드도 걸을 수도 없을 때가 수없이 많았다. 나중엔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수술과 방사선 치료, 투약의 부작용으로 성격도 확연히 변했다. 갈수록 걱정과 좌절과 분노가 쌓여 갔다. 명랑했던 얼굴도 어두워졌다. 임종을 앞두었을 때엔 처참했다. 몸의 모든 기능이 서서히 무너졌다.

그래도, 데이비드의 하루하루는 소중했다.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도 데이비드는 중환자실 의사에게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홍성사 역간)를 읽어보라고 강권했다.

데이비드와 노숙인 암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신경종양과 전문의는 훗날 실제로 그 사역을 시작했다. 데이비드의 마지막 날들은 적대 관계에 있던 정치인들과 화해하고 친구와 가족들 사이에 있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고통의 시기에 우리는 더욱 담대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진다.

2011년 췌장암으로 죽은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다음과 같은 지혜로운 말을 했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천국에 가기 원하는 사람들조차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 않지요.

그러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이야말로 삶이 만드는 최고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삶을 변화시킵니다.”

데이비드와 나는 우리와 함께 암과 싸웠던 수십 명의 친구와 가족들 가운데서 스티브 잡스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살았던 십 년 동안, 죽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켰다. 우리의 믿음을 단련했고, 우선순위를 다시 세웠으며, 하나님과 공동체와 더욱 깊은 교제를 이루었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오히려 우리 자신은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우리 삶의 목적이 정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면,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우리 삶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힘든 과제

믿음의 사람들에게 이것은 너무나 힘든 과제이다. 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공개 정책 토론을 펼칠 때 우리는 연민에 빠져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 그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고, 그들을 돕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했듯이, 조력자살은 “연민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어느 시점에서든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지은 것과 똑같은 죄, 곧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이다.

진정한 긍휼은 시한부 환자들을 사랑하고, 돕고, 완화치료palliative care를 받게 하면서 그들 곁에 있는 것이다. 호스피스 케어를 통해 죽음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이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죽음은 몸과 영을 가혹하게 갈라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감정이입에 근거하여 대중 정책을 내놓기보다는, 조력자살의 합법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보라. 조력자살이 정책으로 시행되려면 누군가가 그 구체적인 대상 범위를 규정해야 한다.

이를테면 어린아이들도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까? 정신질환자는 어떻게 할까? 환자가 생존해 있는 동안 들어가는 비용에 따라 결정해야 할까? 조력자살이 합법인 오리건 주의 보건당국은 최근까지 생존율이 낮은 암 치료처럼 의료비용이 많이 드는 곳에 의료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명 연장을 위한 치료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드는 독극물 예산은 책정했다.

조력자살이 합법이 된 나라에서 안락사―환자의 생명을 끝내기 위해 의사가 (독극물 주입 같이) 직접 시행하는 조력자살과는 다른 것이다―가 부쩍 늘었다.

2014년 벨기에에서 “자비로운 살인”의 수는 27퍼센트 증가하여 평균 하루 5명에 이르렀다. 벨기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시한부 어린이들도 안락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조력자살이 불법이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법을 사실상 무시하고 있다.

이 나라에는 집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동 안락사 유닛이 있다. 삶이 단지 지겨워진 70세 이상의 노인들을 안락사 대상에 포함하는 법을 만들 준비도 하고 있다. 영국이 조력자살 합법화를 고려하고 있을 때, 네덜란드의 윤리학자 테오 보어는 영국 상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이여,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어떤 비탈길은 정말 미끄럽습니다.”

이 말은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조력자살 논쟁에서 핵심이 되는 질문의 정곡을 찌른다: 우리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될까?

미국 사법 체계의 기본 원칙은 무죄 추정이다: 무고한 한 사람이 고통 받느니 차라리 범인 10명을(나중에는 100명으로 늘어났다) 놓아주는 것이 낫다.

이 원칙은 정부와 법원은 무죄에 무게를 더 실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원칙은 창세기 18장, 의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소돔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아브라함의 탄원의 연장선 위에 있다.

“자비로운 살인”에서 변론을 맡는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법안을 확대한다면, 세금이나 자원을 낭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을 것이다.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들의 장례 기록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벨기에 조력자살의 32퍼센트가 환자의 동의 없이 행해졌다.

스위스에서는 어느 건강한 여성이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 끔찍하다는 이유로 조력자살 비용 2만 달러를 지불했다. 나중에 그녀의 가족은 그녀의 화장한 재와 사망 진단서를 받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기에에서 극심한 좌절감에 빠진 한 여성이 가족과 상의 없이 단독으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안락사를 시행했다. 자살을 지지하는 정책을 폭넓게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런 “변칙 조력자살”을 막을 세이프가드를 마련하는 데는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닐까? [전문 보기 : 우리의 마지막 날들을 하나님께 맡기자]

 


킴 쿠오 작가이며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노스캐롤라이나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Kim Kuo, “Giving our final days to God” CT 2015:9 ; CTK 20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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