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기도 못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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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기도 못난이?
  • 드류 다이크 | Drew Dyck
  • 승인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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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루케이도처럼 당신이 목회자라면 많은 사람들에게서 기도 부탁을 받을 것이다. 교회에서, 모임에서, 운동회에서, 생일잔치에서, 또 교인들 집들이에서. 그리고 기도 요청을 받을 때 어떤 느낌인지 다들 잘 알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기도는 개인의 독자적인 행동이겠지만, 목회자들에겐 그 이상이다. 목회자의 기도에는 교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것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또한 목회자에게 기도란 공동체 전체의 필요와 갈망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맥스 루케이도의 최근 저서, 「포켓 기도Before Amen(아드폰테스 역간)에는 “단순한 기도의 능력”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공적인 기도와 기도를 통한 공동체 사역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훌륭한 기도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요?

간단히 말하면 기도란 하나님과의 정직한 대화입니다. 좋은 기도는 기도를 하는 사람과 그 기도를 들으시는 분 사이에 친밀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홀로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무 사이에 숨었던 아담과 하와 이래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생각으로 힘들어 합니다. 따라서 좋은 기도는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회복시킵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포켓 기도」에서 목사님은 “기도 못난이”라고 고백하셨더군요. 어떻게 하면 목회자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교인들로부터 신뢰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실제로 기도 생활을 아주 잘 하고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그러나 목회자도 기도 생활 때문에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정하기만 해도 교인들에게는 큰 격려가 됩니다. 저 역시 분명히 그렇게 씨름하고 있습니다.

아주 바쁜 날들이 있지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여행 일정이 길어진 탓에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더군요. 게다가 제 딸이 제 차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지요.

그래서 저는 사무실까지 태워다 줄 사람을 찾아야 했답니다. 하루를 불안하게 시작했습니다. “나는 매일 일찍 일어나고 긴 기도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도 이렇게 말하고 싶지만, 제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늘 상태가 좋을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지요.

이럴 때면 저는 제가 ‘기도 못난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저 역시 회복이 필요한 존재라고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점차 제 자신을 회복하지요.

다만 목회자들도 똑같이 삶 속에서 동일한 씨름을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는지를 교인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실패했다고 해서 교인들마저 실패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나 단체의 지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맞습니다. 저도 역시 이 문제로 씨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공적인 기도를 통해 회중을 도울 수 있을까요? 공적인 기도를 할 때엔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기도를 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기도 방식이 달라집니다. 사실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것은 목회자로서 우리가 갖는 큰 특권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축복하고, 격려하고, 강건케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은 정말 영예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면, 그 기도야말로 그동안 우리 목회자들이 해왔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공적인 기도는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신실한 기도의 본을 보일 기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삼는 종교지도자들을 호되게 질타하셨습니다.

목회자들에겐 정직하고 진정한 기도의 본을 보일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공적인 기도를 나의 영성을 과시하는 시간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저는 매주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말씀을 전하는 이 사람을 용서하소서. 죄가 아주 많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자, 교인들이 말하더군요.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기 전에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시니, 설교하실 때 더욱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목사인 우리 모두 스스로 그다지 영적이지 않다고 느끼거나 완전히 의기소침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있습니까?

저는 대학교에 다닐 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사님께서 설교하기 전에 이렇게 기도하시더군요.

“주님, 오늘은 제가 그다지 경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힘든 한 주였습니다. 그러나 여기 모인 이들을 격려할 수 있도록 저를 사용해 주신다면 저는 정말 감사할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아주 놀랐습니다. 청년이었던 저는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목회자로서 그런 말을 해도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거든요.

주일마다 언제나 강건하고 경건하다고 느끼는 설교자는 없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인정하는 그 목사님이 사랑스러웠습니다. 그것이 그분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적절한 방법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도 지난 수년 동안 몇 번 그렇게 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설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설교하기 위해 설 때면 항상 열정에 사로잡힙니다. 왜냐하면 목회사역에서 설교는 매우 중요하며, 저 역시 설교시간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이렇게 기도 드린 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주님, 오늘도 변함없이 저를 도와주시지만 웬일인지 저는 영 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공적인 기도를 하는 목회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실수가 있습니까?

늘 범하는 실수는 자신의 지식 또는 화려한 언변을 동원한 기도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기도를 자기과시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교인들에겐 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 알아챕니다. 영성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것도 아닌 기도시간을 이용한다면, 단연코 그 목회자는 신뢰를 잃게 됩니다.

우리 목회자는 진실한 기도의 본을 보임으로써 기도의 참 의미를 전할 수 있습니다. 정직하고 순수한 기도는, 기도를 주제로 한 백편의 설교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기도가 굳이 길 필요는 없지만,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전문 보기 : 기도로 이끄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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