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그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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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그 오해와 진실
  • 제니퍼 우드러프 테이트 | Jennifer Woodruff Tait
  • 승인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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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에 앞장선 그리스도인들이 금주 운동에 동참한 까닭은

 

모든 것에 절제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약 2400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적절하게 만들어진 사회 체제 안에서 올바로 살아가기 위한 필수 덕목을 기술했다. 지혜prudence, 정의justice, 중용temperance, 용기fortitude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말들을 지혜wisdom, 정의justice, 절제moderation, 용기courage로 표기해야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네 가지 “주요 덕목”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이것들을 기독교 사상가들은 기독교 덕목으로 채택하여 기존의 덕목인 믿음, 소망, 사랑과 나란히 놓았다. 

몇 세기 동안, 절제temperance는 평균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용”moderation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중용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게 되는 경험에서 먹고 마시는 등의 쾌락들은 적절하게 이루어져야한다는 것, 그리고 모든 외적 행동은 내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때로 이것은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성관계를 하지 않는 금욕 행위를 포함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양상은 특정한 시기(중세시대, “성찬식에 참여하기 전 3일 동안은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나 특정한 사람들(중세 이후 지금도, “수도사는 재산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에게서 나타났다. 

후대에 감리교 신자들은 절제를 “성경이 두드러지게 명령하고 있는 기독교 덕목”으로 정의했다. 이것은 모든 감정, 욕정, 식욕을 이성과 양심의 통제에 따르도록 하는 것을 의미했다. 가톨릭 교리문답서는 지금도 절제를 이렇게 정의한다.

“이것은 쾌락으로 이끌리는 것을 줄이고, 창조된 사물들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윤리적 덕목이다. 이것은 반드시 의지가 본능을 장악하게 하고, 고결한 것들이 욕망을 가두어 제한하도록 한다.” 

물론, 절제가 늘 실천된 것은 아니다. 준수될 때보다 위반될 때가 더 많았다. 때로 이것은 우리에게는 이상하게 들리는 관습을 권장하기도 했다(도대체 성관계와 성찬식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가장 건강할 때의 기독교 전통은 모든 피조물은 선하다는 것과, 그러나 동시에 모든 피조물은 균형 있게 써야 한다는 지혜를 가르쳤다.

19세기에 절제는 미국의 많은 개신교 신자들과 상당수의 가톨릭 신자들에게서 그 의미가 협소해졌다. 그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식민지가 정착될 즈음부터 미국인들은 대체로 과음을 했다. 하지만 1800년 이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위스키(다른 술들은 혁명 시대에 취해진 봉쇄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었다)와 저장맥주lager beer(독일 이민자들이 들여왔다)의 인기가 상승했다.

산업화로 인한 인구의 이동도 한몫을 했다. 사람들은 동네 술주정뱅이들을 조심해야 하고 수동 공구로 천천히 작업을 해야만 하는 작은 마을을 떠나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 받으면서 술을 마실 수 있고, 거대한 기계를 다루기 위해 숙취가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했던 도시로 이주했다.

동시에, 많은 주류 할인점들이 도시 한 복판에 자리를 잡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술을 절제하도록 하는 최선의 방법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합의에 이르도록 이끌었다. 
 


세 가지 오해 

19세기 금주 운동에 대하여는 수많은 오해들이 있다. 첫 번째 오해는 금주 운동은 효과가 없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금주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에 의해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미국인들의 음주량은 1830년대 금주 운동이 시작된 이래 극적으로 감소했다. 1830년, 한 명의 미국인이 1년 동안 소비한 무수無水 알코올absolute alcohol은 7.1 갤런이었다.

(이것은 일 년에 와인 36병을 마신 정도의 수치다.) 무수 알코올의 소비량은 점점 줄어 1835년에는 5갤런, 1840년에는 3.1갤런, 금주령이 내려지기 직전인 1910년에는 2.6갤런을 기록했다.

금주령이 내려지고 나서는 1.2갤런, 그러니까 1년에 와인 6병을 소비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신여성의 등장으로부터 반문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도덕이 전반적으로 느슨해진 20세기 이후에도 미국인의 평균 무수 알코올 소비량은 계속 감소하여 2000년에는 1갤런도 채 안 되었다. 약 200년 전 그들의 조상들보다 1년에 6갤런이나 술을 덜 마신 것이다. 

두 번째 오해는 금주 운동은 고리타분한 도덕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주도한 외골수적이고 편협한 운동이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역사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오랫동안 가져 왔던 생각이다.

1960년대, 미국의 한 저명한 역사학자는 금주 운동가들은 1950년대 “수돗물 불소 첨가, 국내 공산주의, 학교 교육과정, 유엔”에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의 직계 선조라고 기술했다. 금주 운동은 어디까지나 노동자들이 중장비를 효율적으로 다루도록 하기 위한 경제적 책략이었다고 주장한 역사학자들도 있었다.

한 작가는 절제가 금지로 이행한 것은 “기독교적 미덕의 옹호”가 “사회적 금기의 강요”로 이행한 것이라고 묘사했다. 잘 가시오, 신학적 우려여, 어서 오시오, 대중의 아편이여. 

진실은 이것인데, 금주―절제가 아닌 절주total abstinence로 정의된―는 19세기 미국의 진보적 대의명분이었고, 신뢰할만한 과학적 근거를 두고 있었다. (물리학자 윌리엄 보몬트William Beaumont가 환자의 위장에서 상처를 관찰하고 거기에 있는 여러 음식들과 음료들을 검사한 실험을 포함한) 여러 가지 유명한 실험들은 맥주와 와인이 마음의 긴장은 풀어줄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정신에 무조건 안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또한, 1800년대의 의사들은 알코올 과음이 신체와 정신에 미치는 분명한 영향을 설명하는 데 발전을 보였다. 위에서 언급한 절제의 정의가 통용되기 시작한 직후에 감리교 교회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신자들에게 “인간의 경험뿐 아니라 과학까지도 모든 종류의 술이 이롭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다고 선언하는 성경말씀과 일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우리가 금주와 관련된 과학과 성경해석을 어떻게 생각하든, 금주는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남북전쟁 이전, 금주와 노예제도 폐지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예컨대, 1844년에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남부의 감리교 교회 구성원들은 교회법 안에서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원천적 행동 금지의 일부가 부활되는 것에 대하여 신경을 곤두세웠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독주 판매와 더불어 노예제도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1843년 웨슬리파 감리교회가 중산층의 관심을 대변하는 주류에 대항하여 설립된 이후, 그들은 1848년에 저 유명한 세네카 폴스Seneca Falls 여성 인권 집회를 개최했으며, 서반구에서 열린 최초의 여성 목사 안수식에 참석했으며, 금주를 위해 투쟁했다. 

이후에 성결 교단들(자유 감리교파, 나사렛파, 그리고 가장 유명하게는 구세군)도 이러한 입장을 따랐다. 구세군은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계급을 부여했으며 어마어마한 규모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도시 사역을 진행했다. 또한 그들은 극빈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술집에서 일을 하면서도 철저한 금욕을 가르쳤다. 

많은 금주 옹호자들은 또한 여성의 투표권을 신장시켰다. 마침내 여성들은 그들의 가정을 파괴해 왔던 술집의 문을 닫게 하는 투표에 남자들보다 더 많이 참여하였다.

케리 네이션Carrie Nation과 그녀의 손도끼는 가장 유명한 여권의 상징이었지만, 1873부터 1874까지 활동하면서 기독교여자절제회Women’s Christian Temperance Union의 설립을 이끌었던 여성 십자군Women’s Crusade은 더욱 정교한 여성 대표기관이었다.

수많은 여성 십자군 회원들은 술집 앞에서 팔짱을 끼고 늘어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펼쳤다. WCTU를 연구한 한 역사학자는 오하이오에 집결한 여성 십자군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은 두 줄로 걷고 있었다. 작은 사람들은 앞에 서고 큰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지금 모든 WCTU 회원들에게 십자군의 찬송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당신의 두려움을 바람에 날려 보내라”Give to the winds Thy fears를 불렀다.

이 노래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매일 그들은 술집들과 독주를 판매하는 약국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의 주류 상인들이 항복할 때까지, 어떤 때는 술집 안 나무 바닥에 앉아 기도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입장을 거부당해 눈이 수북이 쌓인 출입문 앞 인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기도 했다. 
 
심지어 금주 운동은 알코올에 대한 대안으로 무료 공공 식수대가 도입된 것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금주 운동에 대한 세 번째 오해는 검소한 옷차림을 권장하는 것으로부터 춤과 연극 제작을 자제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금주와 맥을 같이 하는 많은 생활양식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여흥을 즐기지 못하게 하려는 갈망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시대의 많은 문학 작품들 역시 술, 담배, 화려한 옷, 이성에 대한 욕망을 잘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금주 옹호자들이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부분적으로나마 사람들이 부적절한 욕망을 따르게 되면 소위 하층 극빈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이주한 젊은이들은 쉽게 술과 매춘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의 “향락 문화”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때로는 극단에서 일하는 것과 매춘을 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기까지 했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싶어 하는 욕망은 파산을 불러 올 수도 있었다. 교회는 신도들이 자신을 위해 화려한 모자를 사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돈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설파하면서 검소한 옷차림을 권장했다. 

금주를 옹호하는 한 작가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는데 음주가 뭐가 문제냐고 말한다면, 그는 “아내 구타와 자녀 폭행” 그리고 “문명 세계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일고여덟 가지의 모든 범죄”를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장 바람직한 상태일 때, 금주 옹호자들은 중산층들은 술을 적당히 마셔도 그들만의 안전망이 있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의지가 약하여 술을 많이 마시기 쉽고, 안전망이 취약하여 안전을 보장 받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일했다.

1868년에 감리교는 “규율”Discipline을 만들었다. “우리는 세상 사회의 풍조 내지는 사적 욕망의 풍조에 미혹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악을 발현하고 실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에게 호소합니다.…만약 우리의 부가 통속적인 죄들과의 그 어떤 공모를 통해 부패의 원천이 된다면, 그 부는 가장 준엄한 하늘의 저주를 불러 올 것입니다.” [전문 보기 : ‘금주’ 그 오해와 진실]

 


제니퍼 우드러프 테이트는 <크리스천 히스토리> Christian History의 편집장이며, 「독이 든 성배: 빅토리아 시대의 감리교 성찬 포도주와 양식 사실주의」The Poisoned Chalice: Eucharistic Grape Juice and Common-sense Realism in Victorian Methodism의 저자이다. 이 글은 에즈베리신학대학원Asbury Seminary 웨슬리학 여름 세미나Wesleyan Studies Summer Seminar에서 발표한 연구 자료다. 

Jennifer Woodruff Tait, This Is What a Progressive Looks Like” CT 2014:6 최규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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