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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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와 금주
  • 이상규
  • 승인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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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폐습을 목격한 선교사들이 시작했지만 우리의 자발적 절제운동으로 발전
ⓒ DONALD N. CLARK, MISSONARY PHOTOGRAPHY IN KOREA
ⓒ DONALD N. CLARK, MISSONARY PHOTOGRAPHY IN KOREA

 

구한말, 한국에 온 선교사들 특히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은 신학적으로 보수주의적 인사들이었고 청교도 생활이념을 가진 이들이었다. 미국에서의 제1차 각성운동, 제2차 각성운동의 영향으로 일어난 선교운동의 결과로 파견된 대부분의 미국 선교사들은 신학과 생활에서 보수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을 성수하고 카드놀이를 범죄로 생각했으며 먹어도 유익이 없고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술과 담배, 아편 등을 금하였다. 초기 주한 선교사들이 금주, 금연을 권고하게 된 것은 선교 과정에서 주초의 폐단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이와 더불어 한국인의 위생과 보건 환경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초기 주한 선교사들은 한국의 구습을 타파하고 비합리적 인습과 비과학적 의식을 개조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들은 백정 해방, 신분계급 및 남존여비 사상 타파, 여권 신장을 위해서 노력하였고 도박과 축첩을 금하고 혼인이나 장례 등에서의 악습을 개혁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술과 담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나 처음부터 이를 금한 것은 아니었다. 한국 교회 초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성탄절이 되면 술을 빚어서 교인들이 함께 나누어 마신 일이 있고, 예배당에 들어올 때 신발장 옆에 담뱃대를 정렬해 두었다가 예배가 폐하면 함께 담배를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

장로교회의 첫 선교사인 언더우드H. G. Underwood도 한때 흡연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덜란드 개혁파 계통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던 그는 한국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흡연한 일이 있으나 후일 건덕을 위해 단연하였다.

미국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선교할 때는 아편에 대하여 엄격한 입장이었으나 주초문제는 관대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사정이 다름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선량한 사람도 일단 술을 마시면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하는 현상을 목도하고, 음주로 패가망신한 경우를 목격하면서 금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금주, 금연 운동을 추진할 때 크게 3가지 점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였다.

첫째는 신앙에 유익하지 않다는 점에서였다. “술 먹다가 죽으면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는 극단론도 있었다.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금주와 금연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둘째는 건강에 해롭다는 의학적인 이유를 제시했다. 셋째는 개화 또는 국민의식 계몽을 위한 의도가 있었다. 

 


술을 경계하다

한국에서의 금주 및 단연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00년 이후로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앞서 술과 담배에 대한 권고와 경계가 있었다. 선교사들은 선교 초기에는 술과 담배에 대해 어느 정도 허용하는 입장이었으나 1895년을 전후한 때로부터 금주와 단연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계주론戒酒論을 펴기 시작했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청교도적 신앙생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한국인의 신앙적 유익과 한국 사회 개화를 위한 의도가 있었다. 곧 술은 백성의 재산을 패하여 백성을 점점 곤궁토록 만들며, 장부丈夫의 기운을 꺾어 회복하지 못하도록 함으로, 건강과 재산의 손실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교회는 계주론을 전파하고 교인들과 일반 백성의 금주를 권고했던 것이다. 감리교는 이미 1894년부터 금주 정책을 견지했는데 그해 8월에 모였던 감리교 선교회에서는 교회의 금주 입장을 공식적으로 결의하였다.

장로교도 이와 유사한 시기에 금주와 단연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1897년 4월 <죠션 그리스도인 회보>에는 제물포에서 한 교인이 단주斷酒한 사실을 들어 “참 새로 난 사람”이라고 보도한 일이 있었다.

술의 폐해가 컸기 때문에 금주를 입신入信의 전환적 결단으로 보았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를 전후하여 한국 교회 일각에서는 술의 해악을 지적하는 계주론이 크게 대두되었다.

술은 바른 생애로 수고하야 모흔 제물을 빼아스며 걸인과 죄인을 만들고, 집을 망케 하며, 협잡과 뇌물과 사졍을 셩행케 하야 사무를 그르치고 국재를 람용하며 부셰를 묵엄게 하고 유익한 일에 쓸 돈을 여러 백만금식 해로운 일에 허비하야 항상 이젼졍 군색하게 하니, 만일 술에 업새는 재물을 일용지물에 쓰면 사롱공상이 다 흥왕하고 돈업서 어려워하는 괴로움이 구름갓치 헛터줄지니 경제상으로나 도덕샹으로 보면 술은 업시할 물건이어날 오날 날 어찌 그대로 두니 괴이하도다.

감리교의 조이스Joice 감독은 1897년경 “우리 몸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술, 담배를 금지하였다.

1900년 감리교의 존스G. H. Jones 선교사는 전도인, 속장들의 모임에서 술을 마시는 교우들을 ‘즉시 출교’ 하겠노라고 경고한 일이 있었다.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는 음주자를 치리한 일도 있었다. 이 교회는 음주행위를 4중적 범죄로 규정하였다.

첫째는 하나님께 범죄 하는 일, 둘째는 교회법을 어기는 일, 셋째 부모, 형제, 처자에게 광언지설狂言至說하는 일, 넷째 자기 몸을 망하게 하는 일로 보았다.

초기 한국 교회가 금연운동을 전개한 것은 흡연으로 인한 신체적 해독을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 신문> 1897년 5월 7일자에서는 “담배 먹는 사람은 죽을 때가지 불편한 것시 만흐니라.

이런 사람은 여러 가지 병이 잇나니 힘줄이 약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념통이 더 벌덕 벌덕하고 슈전증이 나고, 안력에 대단히 해롭고 여러 가지 병이 만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차츰 한국 교회는 신체적 해독만이 아니라 도덕적 향상, 흡연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으로서의 몸에 대한 신앙적 동기에서 금연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금주, 단연 운동의 결과로 한국 교회 초기부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술, 담배를 끊는다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세례 받을 때 가장 중요한 다짐으로 조상제사 중지, 금주와 단연, 노름 및 도박 금지, 축첩 금지 등을 요구하였다. [전문 보기 : 한국 교회의 전통이자 그리스도인의 덕목으로 자리 잡다]

 


이상규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이며 「교회개혁과 부흥운동」 등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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