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을 통과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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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을 통과한 신앙
  • 제니 맥길 | Jenny McGill
  • 승인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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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 학살 사건 30주년을 맞아 두 명의 반체제 인사가 중국의 소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나요?

: 저는 공산당을 믿는 것 외에는 하나님도, 종교도, 그 어느 것도 없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2년 동안 헤이룽장 성에 숨어 있을 때 농사를 짓는 나이 드신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분에 제게 기독교를 소개하고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녀는 온전한 성경책은 엄두도 못 내고, 손으로 베낀 요한복음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실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에 그것을 내게 큰 소리로 읽어달라며 건넸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제게 설명해주었지요.

일 년 쯤 되었을 때,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무신론 교육 제도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읽은 후에 모든 사람들에겐, 신이나, 믿을 그 어떤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사람들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천안문 시위에 참여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인도함을 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천안문은 나로 하여금 탈출하게 했고, 투옥되게 했으며, 궁극적으로 그 노부인을 만나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우: 저는 고등학교 때 성경을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후에 중국에서 투옥된 후 성경을 읽었고. 저를 신앙으로 인도하려고 애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95년 6월, 미국에서 천안문 사건 1주년이 되자 저는 기념할 만한 장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샌안토니오에 있는 교회 안으로 걸어 들어갔지요. 그곳에서 저는 큰 감명을 받고, 교인들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저는 교회에 있는 동안 유대감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천안문 학살 이후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신 걸까? 왜 하나님은 천안문 사건을 허용하셨을까?”

그 무렵 중국에서 우리가 믿었던 가치는 애국심을 토대로 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정부와 국가가 우리를 배반했습니다.

우리 삶의 이러한 가치는 어디 있는 것일까? 이것이 전환점이었지요. 제가 경영대학원에 가기 위해 시카고로 옮겨간 후, 텍사스에 있는 그 교회의 한 형제가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제게 계속 편지를 썼습니다.

그가 매번 저에게 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예수님을 믿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저는 그 질문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경영대학원을 마친 후, 직장을 구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베어 스턴스에 아주 좋은 직장을 구했을 때, 저는 그 모든 것이 내가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그 이후 저의 생활은 안정되기 시작했고 저는 마음 속 공허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항상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 천안문 시위, 여전히 감옥에 있는 사람들, 중국의 정치 상황을 좇고 있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도 소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겐 공산당원들을 향한 증오심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또 저에게 행했던 불의 때문입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아 저는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하나님께 돌아선 또 다른 이유입니다. 2003년, 우리는 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이 아주 감동적인 설교를 하신 후에 물었습니다. “믿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저는 손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 제 어깨의 큰 짐이 벗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분의 신앙은 천안문 사건에 대한 두 분의 시각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나요?

: 하나님께서는 중국의 상황을 우리가 깨닫도록 돕기 위해 1989년의 사건을 사용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안문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공산당이 중국 국민의 신이 되었을 겁니다. 이 사건은 공산당이 허깨비였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도록 도왔습니다.

 

저우: 제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가 소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속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큰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권 운동의 모든 어려움과 도전에 맞설 힘을 줍니다.

제가 그리스도인이 됨과 동시에 저는 중국에 있는 정치범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즉시 인권을 증진시키고 정치범들과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족을 지원하는 데 헌신하는 비영리 단체 인도중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신앙이 사회운동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나요? 신앙과 사회운동은 어떠한 관계인가요?

: 사실 이 둘은 함께 갑니다. 자유, 인권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지요. 민주화운동은 단지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자유는 함께 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국민의 미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중국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종교적 신념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삶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사고와 생활방식에 있어서 자유가 필요합니다.

 

저우: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저의 믿음과 저의 행동주의는 지금도 동일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서 이것들은 제 삶에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의 영감은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저보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을 좇은 것으로부터 왔습니다.

저의 행동 방식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곧 박해받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고, 정부로부터 핍박을 받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전하는 것입니다. 인도중국은 기독교 사역 단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깊은 관련이 있고, 동기도 유사합니다. 우리는 중국의 가정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들이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상황을 알고 있습니다.

천안문 항쟁과 오늘날 중국의 기독교 교회 사이에는 특별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가정교회 공동체 지도자들 다수가 천안문 항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직접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도 있고, 그 당시 고등학생이었으나 후에 가정교회 목사가 되어 투옥된 왕이Wang Yi;王怡 목사처럼 2세대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천안문 항쟁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세계관 형성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유명한 작가인 위지에Yu Jie;余杰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경우입니다. [전문 보기: 천안문을 통과한 신앙]

 


제니 맥길 사모이며, 인디애나 웨슬리안 대학의 학장이다.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 가운데 여성을 위한 제자훈련 교재 Walk With Me: Learning to Love and Follow Jesus가 있다.   

Jenny McGill, “Faith Through The Tiananmen G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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