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를 분별하는 여덟 가지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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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날 때를 분별하는 여덟 가지 신호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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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요나도 떠날 결심을 했었다. 다시스로 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하나님이 모르시길 바라며 배에 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됐다.

마침내 요나가 외쳤다. “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시오.”

대신에 “뱃사람들은 육지로 되돌아가려고 노를 저었지만, 파도가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났으므로 헛일이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 뱃사람들이 힘겹게 노질을 할 때 요나는 떠날 결심을 해야 했다. 요나가 배를 떠나자 배의 상황은 나아졌다.

요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성가신 물음을 던진다. 리더는 언제 떠나야 할까?

군대에 있는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퇴각은 가장 위험한 작전이다. 당연하다. 교회와 목사가 모두 만족하는 사역을 마무리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결정이다. 알맞은 때를 분별하는 일은 절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여태껏 목회자의 이상적인 사역 기간이 얼마인지 말해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 감리교단이나 구세군 같은 곳에서는 목사가 다른 일은 못하고 목회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2년을 이상적인 사역 기간으로 본다.

하지만 2년으로는 교회에 깊이 적응하지도 못하고 교인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게다가 임기가 짧은 탓에 목사의 가족은 안정된 가정, 장기적인 관계, 보람된 사역을 누리지 못하고 바쁘게 이동해야 한다.

반대로 내가 영웅으로 여기는 18세기의 찰스 시므온(영국 캠브리지 성 트리니티)은 54년 동안 한 교회를 섬겼다. 내가 살고 있는 뉴잉글랜드에는 한 곳에서 20년 이상 사역하는 목사들이 많다.

나는 그레이스채플을 13년 동안 섬기고 떠났다가 몇 년 후에 다시 돌아와 7년을 더 섬겼다. 어떤 사람들은 두 기간을 고든 1세와 고든 2세의 ‘치세’라고 평했다.

세 교회를 더 섬겼으니 나는 38년 동안 ‘사임’ 결정을 다섯 번 했던 셈이다. 나는 그때마다 두 가지를 느꼈다. 목회자로서 책임을 다했다는 만족감. 그리고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 교회의 장래를 맡겨야 한다는 부족감.

나는 내가 섬기는 교인들이 충만감을 느낀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이 어느 정도 내 리더십에 싫증을 느낀다는 것도 정직하게 인정했다.

나는 현상 유지를 견디지 못하는 편이므로 늘 날카로운 물음으로 교인들을 못살게 굴었다. 내 정신과 마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교회 바깥 활동에도 열심이었는데 물론 비판도 받았다.

나는 늘 시의에 맞는 통찰과 우선순위를 교회에 한아름 제시했다. 하지만 시의성에도 ‘유효기간’이 있었고 유효기간이 지난 시의성은 교인들에게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떠나야 할 순간은 바로 그때였다. 누가 먼저 말하기 전에.

목사는 언제 떠나야 할까. 적기를 가늠할 수 있는 신호는 없을까. 여덟 가지를 아래에 소개한다.

1. 부조화

교회도 좋고 목사도 좋은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교인들은 전임 목사에게는 없는 목회 리더십을 필요로한다.

예를 들면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목사가 있다(‘비저너리’든 ‘교회 성장을 추구한다’라고 해도 좋다). 그는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구도자들에게 집중하는 환경을 만드는 데 온힘을 쏟아주길 갈망한다.

반대로 교인들은 눈을 바깥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들은 목사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한동안이라도 영적인 성장에 집중하길 바란다(늘 부적절한 결정은 아니다).

목사는 교인들을 이기적이라고 여기고 참을성을 잃는다. 교인들은 목사가 기업가적 야망을 위해 자신들을 이용한다고 여긴다. 목사와 교인들은 서로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고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다.
 


2. 정체

교인들은 프로그램의 소용돌이에 함몰되어 방향성을 잃는다. 교회에서 영향력이 큰 몇몇 교인은 미묘한 장악력을 발휘해 조용히(혹은 노골적으로) 목사의 모든 결정에 반기를 든다. 새로운 리더십은 눈치를 보고 주도권을 포기한다. 교회가 교인들의 친목 도모를 위한 폐쇄된 공동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나는 뉴잉글랜드에서 그런 교회들을 자주 보았다. 그런 교회는 교인 수가 90명 안팎이다(많아야 150명). 그들은 목사를 청빙할 때 창의적인 리더십과 전도하는 교회를 당부한다.

약 1년 후 목사는 마피아를 닮은 비공식적인 리더십에 부닥치며 사역은 서서히 실망스런 정치 게임으로 변질된다. 요한3서에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에 관한 구절이 있다. 디오드레베는 지금도 살아 있다!
 


3. 조직의 변화

건강한 교회는 필연적으로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지점까지 성장한다. 목사라고 모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교회가 교인 수 150-200명 이상으로 성장하려면 리더의 관리 능력이 필요한데 훌륭한 교회 개척자들에게는 흔히 그런 ‘재능이 부족’하다. 혼자서 모든 일을 해내는 목사는 교회의 교역자 개발과 관리에는 무능하다.

몇몇 목사는 사역의 터를 견고하게 세우는 능력이 탁월하다. 하지만 교회 개척과 재정립 기간이 지난 후 사역 방향을 재조정하는 일은 서툴지도 모른다. 지혜로운 (그리고 겸손한) 목사는 자신이 가장 잘 섬길 수 있는 교회를 알아보는 눈이 있다.

 


4. 침체

현재 상황에서는 더 이상 재능과 리더십을 함양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가 있다. 목양 정신, 열정이 넘치는 마음, 고유한 영적 재능은 ‘목사가 쓰는 연장’이다. 목사는 자신의 연장을 늘 연마해야 한다. 교회가 목사의 성장을 방해하면 모두 권태와 타성에 젖는다.

나는 도발적인 설교를 사랑했던 그레이스채플 교인들이 고마웠다. 나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실망스런 설교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더 나은 설교를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일주일 동안 붙잡고 살아갈 가르침을 위해 교인들이 성경이나 공책을 다시 펼치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예배당 바깥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교인들에게 새로운 통찰과 실제적인 적용을 전해야 하는 압박은 나를 살아 있게 했다. 교인들이 더 이상 그런 기대를 하지 않거나 내가 성장이 멈추면 떠날 때가 됐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5. 피로

피로는 침체와 비슷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사역에 ‘부흥’을 찾아볼 수 없고 목사는 영적으로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피로를 계속 느낀다.

나는 이런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여 자주 문제에 봉착했다. 나는 교인들에게 나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다. 하지만 실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교인들도 아주 많았고 프로그램도 몹시 많았으니까. 교역자들도 나에게 요구하는 게 많았지만 그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다 도리어 녹초가 됐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느낌도 자주 들었다.

남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내 문제였으니까.
결과는 탈진과 실망뿐이었다.

때로는 교회의 리더십이 이런 상황을 분별하지 못해, 목사를 보호하는데 실패하고 꾸준하고 효과적인 부흥을 일으키지지도 못한다. 목사가 만성 피로를 느낀다면 사역지를 떠날 필요가 있다. [전문 보기 : 언제 떠나야 할까]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는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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