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무화無化시키는, 노력
상태바
한계를 무화無化시키는, 노력
  • 성유원
  • 승인 2019.12.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유원의 사유의 정원_여덟 번째 산책

노력은 영혼을 구원하고, 
 삶은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며, 
 지식의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이다.
—비탈리 랭보

 

성유원
그림 고여정

 

 

‘그 가벼움’에 이르기까지

 

2016년 5월, 한국인 남자 무용수가 ‘춤의 영예’라는 뜻의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세계 최고의 남자 무용수로 선정된 그는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 중이던 발레리노 김기민이었다. 

한국에 잠깐 들어온 김기민을 만났을 때 그가 들려준 삶의 여정과 발레 이야기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 고된 나날에 관한 이야기, 그 기쁜 나날에 관한 이야기가! 

아홉 살 때 세 살 위인 형과 함께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여 세계적인 발레리노로 성장한 김기민에게 발레는 자신의 결점과 한계를 넘어서 반드시 다다르고 싶은 아름다운 세계였다.

두 형제 모두 발레의 매력에 빠졌지만 발레 선생님들의 둘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형 김기완(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은 이상적인 발레리노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동생 김기민은 신체적 조건이 발레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명을 제외한 다른 발레 선생님들은 모두 그의 어머니에게 발레를 시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김기민은 발레를 너무나 하고 싶었기에 자신을 인정해 준 유일한 선생님의 지원에 힘입어 그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 다음부터는 피나는 노력의 여정이었다.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자신과의 극한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실력의 성장과 그 결실들로 이어졌다.

“첫 실기 성적은 20명 중 18등이었는데, 다음 학기엔 10등으로 올라섰고, 그 다음 학기부터는 1등을 했어요.”

놀라운 성장 뒤에는 남모르는 엄청난 연습의 시간이 있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등교해야 하는 먼 통학 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벽에 남보다 일찍 와서 한두 시간 연습을 하고 하루를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도 온통 발레 생각뿐이어서 칠판의 글씨나 그림이 모두 발레 동작으로 보일 정도였다.

“방과 후에는 경비실 아저씨를 졸라서 무용실 열쇠를 받아가지고 혼자 밤 12시, 1시까지 연습을 했어요. 선생님들이 지적하신 부족한 점을 메우기 위해서는 제겐 대여섯 시간 연습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그렇게 매일 연습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분명히 잘하게 될 거라고 믿었죠.”

많은 학생들이 시험이나 콩쿠르를 앞두고 학교에 있는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김기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시험을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은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좋은 결과를 얻은 뒤에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기도실을 찾았다. 노력하지 않고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라는 생각, 완벽하게 준비하여 좋은 성과를 이루었더라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했다는 것이 남다르게 느껴졌다. 

오로지 발레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잠을 극도로 줄여가며 노력한 그의 여정엔 좋은 기회들이 주어졌고, 그 기회의 시간에 최선을 다하면서 김기민은 놀라운 결실들을 맺어갔다.

중학교에서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한 후 17세가 되던 2009년엔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 역으로 데뷔한다.

이어서 다수의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수상하면서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2011년에 동양인 남자 최초로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솔리스트로 입단한다.

입단한 지 3년 만에 수석으로 승급하는데, 이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보통은 이십대 후반이나 삼십대 초반이 되어서야 수석 무용수로 승급하는데 그는 만 23세라는 이른 나이에 마린스키의 수석이 된 것이다.

그것도 단원 300명 중 298명이 러시아인이고, 두 명의 외국인 중에 유일한 동양인이자 한국인 무용수로. 

발레를 하기에 불리한 신체적 조건을 가졌음에도 좋은 조건을 가진 무용수들보다 빠른 성장을 이루고 세계적인 무용수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단 하나였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까지의 무한한 노력!

“가끔씩 후배들이 물어봐요. 형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그때마다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어요. 내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결과만 보는 것 같아서요.”  

정현종 시인의 페테르부르크 연작 시편 중에 ‘그 가벼움’이라는 시가 있다.

 

무용 ‘바야데르카’에서 뛰어오른
그 남자 무용수는 아,
너무 가벼워
몸이 아니라 바람 한 자락,
관객을 열광시킨 그 가벼움,
이 도시의 고통과 생존과 우리의
발걸음의 모든 무거움을 단숨에
기화氣化시키는 그 가벼움에 나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찬탄했느니,
거기에 이르기까지
공기에 이르기까지
무대 뒤의 고된 나날이여
아름답다 심신心身의 뒤안길이여.

 

공기에 이르기까지, 공기가 되어 가볍게 날아오르기까지 그 남자 무용수는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 것인가. 시인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로 찬탄을 표현한다. 무대 뒤의 고된 나날을 상상하며, 그 아름다운 심신의 뒤안길에 대하여.

타고난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도리어 무한한 노력은, 없다고 생각했던 능력까지도 확인하게 해준다. 어떤 분야든지 자기다운 삶의 절정을 살았던 사람들은 끈질긴 노력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운명을 바꾼 사람들이다.

일찍이 문학적 재능으로 주목을 받았던 아르튀르 랭보, 다른 세상을 어렴풋이 보면서부터 놀라운 성장을 이루며 유럽 문단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천재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를 따르는 ‘천재’라는 말 뒤에도 치열한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언어 속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찾고, 수정하고, 형용사를 옮기고, 행을 바꾸고, 지우고, 고치고, 버리고…. 어릴 때부터 그런 노력의 시간을 보내며 고전을 섭렵하면서, 랭보는 어떤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런 아들의 교육에 대단한 열정을 보였던 어머니 비탈리가 교리를 가르치듯이 반복해서 한 말이 있다. 

“노력은 영혼을 구원하고, 삶은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며, 지식의 산에 오르면 오를수록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이란다.”

비탈리는, 노력에는 영혼을 구원할 만한 힘이 들어 있고, 성공적인 삶이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며, 많이 배울수록 인생을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의 마음에 새겨 주려고 했던 것 같다.

정작 랭보는 어머니의 애정과 열의를 구속으로 느꼈지만 교리와 같았던 그 가르침이 알게 모르게 그의 존재 속에 스며들었던 것은 아닐까?

타고난 능력이 바탕이 되었더라도 스스로의 노력이 없었다면 짧은 생을 살았던 랭보가 그처럼 뛰어난 시를 문학사에 많이 남길 수 있었을까? 분명 노력이 천재를 만든 것이다. 잠재된 능력의 절정을 끌어내면서. [전문 보기 : 한계를 무화無化시키는, 노력]

 


성유원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2017년까지 예원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어린 예술가들과 풍요로운 나눔의 날들을 보냈다. 퇴직한 후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과 직장인으로 구성된 인문학 독서모임을 이끌며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사유의 정원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고여정 글쓴이 성유원의 예원학교 제자이자 함께 독서하며 생각을 나누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학생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