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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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른가?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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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열두 가지 특징

 

나는 군사훈련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늘 그 훈련 방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성 바울도 그랬던 듯하다.

한번은 호기심으로 군사 전문 기자 토머스 릭스가 쓴 「해병의 탄생」(Making the Corp)이라는 책을 보았다. 신병에서 해병으로 거듭나는 실제 청년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책이었다.

릭스에 의하면 신병들은 보통 한밤중에 버스를 타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패리스 섬에 있는 훈련소에 입소한다. 정문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패리스 섬, 변화의 시작.”

어떤 변화가 시작되는 걸까. 완전한 해병은 어디가 다른 걸까. 절도 있는 자세, 흠잡을 데 없는 군복, 대화에서 느껴지는 굳은 결의와 집중력이 먼저 눈에 띌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없을까. 뚜렷한 극기력, 강인함, 복종심, 전우애가 있다. 해병은 군사훈련으로 길러낼 수 있는 최고의 군인이다.

해병만이 변화에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교와 신학교도 변화를 말하며 저마다 세계 최고의 교육기관이라고 주장한다. 기업도 직원이 최고의 영업사원이 되지 않으면 이윤을 남길 수 없다고 믿는다(스타벅스가 생각난다).

예수를 헌신적으로 좇는 제자를 기르는 게 목표인 교회는 어떨까. 제자로 변화된 이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교회의 목적은 상처와 이기심으로 얼룩진 존재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전하고 쓸모 있는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바울은 ‘온전함’이란 말로 인생의 변화를 설명했다. 바울은 “여러분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까지…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의 변화가 교회의 목적이라면 교회는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병을 어렵지 않게 알아보듯 영적으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핵심 자질은 무엇일까.

이 물음은 오래전 대규모 전도집회에 초청받았을 때 처음 나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스턴은 변할 겁니다”라며 부추겼다. “수십만 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겁니다”라고 약속했다.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말이었다.

초청받은 우리 중 몇몇이 물었다. “보스턴이 어떻게 변할까요?” 그 물음은 그때부터 내 마음에 남아 계속 깊어졌고 지금도 세상의 변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른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이 변화됐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전쟁이 없는 세상? 가난이 없는 세상? 사랑이 넘치는 세상? 누가 더 기부하는지 경쟁하는 세상?” 이런 물음에는 답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답이 필요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내 물음에 답을 해볼까 한다. 변화된 사람은 어디가 다를까.
영적 지도와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내 말을 넘겨짚을 듯하다. 몇몇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이런 물음에 답을 해준다면 더 좋겠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내 식대로 열두 가지 특징만 잡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경의 경건한 사람들의 특징을 잡아내는 일은 한도 끝도 없을 테니까.

열두 가지 특징을 쓰다보니 이건 이미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란 것을 깨달았다. 즉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가 우리를 온전하게 완성할 그날이 오기 전에는(빌립보서에 의하면) 우리가 온전히 변화되거나 성숙하게 되진 않을 듯하다. 이건 우리의 큰 소망이다.
하지만 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무엇일까.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바로 이것이다.

 

 

1. 예수에게 깊이 헌신한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그에게 ‘헌신’한다는 말이 더 좋다. 아무래도 ‘사랑’이란 말에는 감상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좇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들의 관계에서 감상적인 사랑을 찾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헌신은 더 계획적이고 심지어 계산된 것이다.
분명히 정서적인 면이 있지만 정서가 헌신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헌신이란 예수의 성품, 성자가 성부를 알듯이 하나님을 알라는 그분의 명령, 그분의 은혜와 죄사함, 즉 예수를 중심으로 살겠다는 결단이다.

변화하는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본받겠다는 뜻을 꾸준히 새롭게 다짐한다. 확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헌신하겠다는 ‘자세’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일수록 예수를 본받겠다고 더욱 부지런히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날마다 (영으로) 아내와 결혼하기로 다짐하듯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결혼했음을 증명하는 서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내와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외치고 싶다. 아내가 더 좋아할 것이다. 내 구주이자 랍비 예수에게 헌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분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중심으로 내 삶을 재정비한다.

 


2. 성경적 세계관을 추구한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과 명령을 잘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바쁜 생활, 기술 발달, 넘쳐나는 온갖 역본, 주일학교의 붕괴 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성경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 우리는 성경 지식을 설교자, 작가, 강사들에게서 듣는 것으로 만족한다.

변화하는 그리스도인은 좋아하는 설교자의 독백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시편 말씀처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여 발밑을 밝히고 갈 길을 비추어야 한다.

 

 

3. 하나님의 인도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유진 피터슨은 그것을 순종의 응답이라는 표현으로 옮겼다. 재밌게도 빌립보 교회는 로마 군인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 바울의 편지에는 군사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순종의 응답’이란 표현도 그중 하나다. 바울은 군인이 전투에 대비해 훈련하듯이 그리스도인도 도덕이 붕괴된 세상에서 제 역할을 ‘다하라’고 했다.

그리스도를 좇는, 변화하는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견디지 못한다. 반대로 그는 전투를 준비한다. 선택의 기로에 서고 기회를 엿보고 반대에도 부딪힐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대비해 부지런히 만반의 준비를 다한다. 이것이 자기 수양이다. 그는 목적과 헌신으로 살고, 예수를 좇는 습관을 기르고, 이와 맞지 않는 것은 버린다.

 

 

4. 예배하고 끊임없이 회개한다.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데는 알맞은 과정의 리듬이 있다. 즉 예배다.

변화하는 신자는 예배를 통해 영원의 관점을 배우고, 내면을 깨끗이 씻고, 인생의 기쁨과 소망의 불꽃을 다시금 지핀다는 걸 알고 있다. 이사야처럼 그 역시 자신의 실상을 깨닫고 상한 심령을 마주한다. 그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른 죄를 회개한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목적과 관심사를 떠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의식을 회복하고 우리를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위해 살리라 또다시 다짐한다.

우리는 기질에 따라 예배하는 모습도 다르다. 요란하고 즉흥적인지 형식과 체계를 갖추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변화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구원자 예수와 다시금 화해했다는 것을 알고 예배당을 나서는 것이다. 그에게 예배는 재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는 것이니까. [전문 보기 : 변화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다른가]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는 〈리더십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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