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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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
  • 찰스 스톤 | Charles Stone
  • 승인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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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위 맞추기’ 바이러스를 퇴치하려면

 

J는 젊은 목사로 첫 교회에 부임했다. 신학교에서 굉장히 많은 신학을 배웠지만 당회는 어떤 곳이고 갈등은 또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배운 게 없다. 첫 당회부터 헤맸다.

완고하고 독선적인 몇몇 당회원 때문에 J는 자기주장을 내놓을 때마다 번번이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J가 그들에게 동의한다고 말하면(속으로는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J는 당회원들의 인정과 지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무의식적으로 어떤 사고와 행동 양식을 형성해 갔다. 다른 당회원들의 눈짓과 몸짓을 계속 살피며 회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J는 이제 눈치껏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구별한다. J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동조하고 자기주장을 접으면 회의가 순조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회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거나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J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J는 미소를 지어 보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리고 동의해 준다. 그러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회의 중에는. 하지만 다음 날이면 자기 생각을 과감하게 말하지 않은 것을 자책한다.

J는 자신에게 또 다른 변화가 생긴 것도 알게 되었다. 재직회가 열리는 날이면 언제나 두통을 없애기 위해 이부프로펜을 잔뜩 먹어야 했다. 스멀스멀 분노가 올라온다. 아내와 아이들도 회의가 있는 날이면 그가 짜증이 심해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교회에 부임해 온 이후 5년 내내 이런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고, 남들의 인정에 연연하는 리더십이 많은 목사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해 연구하기 위해서 나는 남자 목사/여자 목사, 젊은 목사/나이 든 목사, 최소한의 교육만을 받은 목사/최고의 교육을 받은 목사, 북미와 중남미에 있는 큰 교회/작은 교회 중에서 2300명의 목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놀랍게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79%의 목사들이, 그리고 12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91%의 목사들이 각자 자신의 목회 사역에서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성향이 어느 정도 있다고 인정했다.

물론 이런 성향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어떤 직업은 성격 상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갖도록 만든다. 그래야만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목회나 정치가 그런 종류의 직업군에 속한다. 목회자든 정치가든 올바른 동기를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섬기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바람은 때때로 우리를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도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0년 넘게 개척교회 사역과 부목사, 교육목사, 담임목사로 사역하면서, 나는 지금에서야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성향이 끼치는 악영향을 깨닫게 되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가족과 내가 섬기는 교인들도 이런 성향이 가져오는 결과를 느끼고 있다.

내가 섬겨 온 교회는 수적으로 성장했고 교인들도 영적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지역사회를 섬겼고 세계 여러 곳을 위해 봉사했다. 전체적으로 우리 교인들은 내가 그들을 잘 섬겨왔다고 느꼈고, 나는 우리가 주님을 영광스럽게 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의문이다. 교회의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결정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 나의 리더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당회로부터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를 자제했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을까?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남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리더십은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점검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영적 지도자의 열정과 기쁨을 짓누를 수 있다. 누가복음 6:26은 경종을 울린다. “다른 사람을 치켜세우는 말과 비위를 맞추는 행동으로, 사람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면 화가 있다.”(「메시지」) 

우리가 언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우리는 섬김과 설교와 지도를 통해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쓴다. 우리는 사람들이 만족하면 하나님께서도 만족하시리라 믿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도전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가 사람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리더십의 어려운 길을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의 인정을 추구하려는 것인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도 이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갈1:10, 새번역)

나는 영적 지도자라면 주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불건전한 동기(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건강하지 못한 동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지도자들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려는 성향에서 돌이키면, 다음과 같은 영적 능력의 신선한 파도를 경험할 수 있다.

● 더욱 큰 창의성 
● 더욱 건강한 팀들
● 명확한 비전
● 다시 새로워진 열정
● 더 큰 내면의 평화
● 더욱 분명한 의사결정
● 줄어든 불안
● 방어적인 태도의 감소
● 집중력의 증가
● 성공적인 갈등관리
●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더 명확히 들음
● 영적 훈련에서 더 많은 열매를 맺음

[전문 보기 : 누구를 기쁘게 할 것인가]

 


찰스 스톤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 웨스트 파크 교회 목사
Charles Stone, What’s Wrong with People Pleasing? Leadership Journal 2014 : 겨울 ; CTK 2014:7/8 남승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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