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는 반지성주의를 조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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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는 반지성주의를 조장하지 않는다
  • 장세훈
  • 승인 202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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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지식의 한계’를 경고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전도서 12:12

 

아마도 전도서 12:12은 성경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조차도 널리 알려진 본문일 것이다.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어떤 박사과정 학생이 이 구절이 적혀 있는 쪽지를 책상 앞에서 붙여놓은 것을 보고는 혼자 웃은 적이 있다. 종종 사람들은 연구의 무의미를 노래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곤 한다.

특히 대입 수능고사 준비에 찌든 아이들에게 이 구절은 어쩌면 청량제(?)와도 같을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 구절은 공부의 무의미함을 의미하는 것일까? 몇 년 전 건강이 조금 나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이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그만 쓰고 건강부터 챙기라고 조언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조언의 핵심은 물론 과로하지 말고 건강을 먼저 돌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참 고마운 마음 씀씀이와는 상관없이, 전도서 12:12이 그분들의 조언을 뒷받침하는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타당성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도서의 이 구절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 구절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피상적인 의미를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이 의도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전도서 전체의 맥락에서 

전도서 12:12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도서 전체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한된 지면이다 보니 여기서는 전도서의 구조를 통해서만 전도서의 의미를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

전도서의 구조적 특징은 화자의 차이를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예를 들면, 전도서에서 전도자는 1:1, 7:27, 12:9-14에서는 3인칭으로 묘사되는 반면에 다른 본문에서는 1인칭으로 표현된다.

또한 1:1과 12:9-14의 전후에는 동일한 신학적 진술,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동일한 표현이 소개된다.

또한 이 신학적 진술 전후에는 서론적 시(1:4-11)와 결론적 시(11:9-12:7 혹은 12:1-7)가 등장한다. 그러므로 전도서 전체의 구조는 1:1과 12:9-14, 1:2과 12:8, 1:4-11과 11:9-12:7이 각각 교차 대구를 이루는 형식을 취한다.

 

A. 프롤로그(1:1)
    B. 신학적 모토(1:2)
        C. 서론적 시(1:4-11)
            D. 전도자의 말씀(1:12-11:8)
        C′. 결론적 시(11:9-12:7)
    B′. 신학적 모토(12:8)
A′. 에필로그(12:9-14) 
 
무엇보다도 이 구조는 전도서 12장(특히 12:9-14)의 위치와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특히 전도서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12:9-14는 전체 전도서의 에필로그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역할은 12:9-14이 전체 내용의 핵심적 사상과 결론적 입장을 반영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전문 보기 : 전도서는 반지성주의를 조장하지 않는다]

 


장세훈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이며 「한권으로 읽는 이사야서」와 「내게로 돌아오라」 등의 저자이다. CTK 20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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