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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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대화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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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점검하라
[영화_어메이징그레이스_스틸]
[영화_어메이징그레이스_스틸]

 

1801년, 영국 국회의원이며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이끌었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심각한 영적 위기를 겪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정치적인 야망 때문이었다. 만약 그때 윌버포스가 그 문제를 잘못 처리했다면 19세기 영국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

헨리 애딩톤이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면서 윌버포스의 갈등은 시작되었다. 윌버포스가 애딩톤 내각의 각료 후보로 유력하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전기 작가 갈스 린은 윌버포스가 그 추측성 소문에 몹시 들떠 있었으며 한동안 그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썼다. 훗날 윌버포스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자기 자신이 “끓어오르는 야망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리더라는 위치가 가져다주는 특혜를 경험해본 우리 중 많은 사람은 윌버포스가 경험한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야망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권력을 남용하려는 마음이 분노, 경쟁심, 부정직, 도덕적인 유혹과 뒤섞여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이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리더인 우리들이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터무니없는 생각이나 환상을 품고 깊이 빠져들면 헤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그것들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이 거의 없다.

윌버포스에게 가장 큰 유혹은 야망이었다. 리더들은 더욱 큰 것, 더욱 영향력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게 무엇인지 안다. 대개는 결국 자아가 갈망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손에 넣기 위해서 사람과 일을 조종하고 싶은 유혹이 일어난다.

윌버포스는 어느 주일, 마침내 자신의 야망을 직시했다. 예배를 드리고 홀로 시간을 보낸 후, “예배와 쉴 날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속에서 이 땅의 것들은 본래의 진정한 크기를 찾아간다. 야망은 꺾였다”라고 썼다. 위기를 넘긴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 윌리엄 윌버포스는 그의 삶의 위대한 비밀 하나를 보여준다. 정신없이 분주한 공적인 삶에서 매주 빠지지 않고 물러나오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 예배를 드리고 소수의 절친한 친구들과 교제를 나누고 조용히 묵상하는 일을 철저히 지킬 수 있었다.

이중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세 번째 활동인 묵상이다. 묵상은 내면의 대화이다. 자기 자신과 또 하나님과 나누는 이야기다. 내면의 대화를 갖는 동안 다른 사람과의 교제는 뒤로 미뤄진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보아야 하는 때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이며 사적으로 내면의 대화를 가져야 할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내면의 대화가 지닌 힘

내면의 대화를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비상상황에 처한 비행기에서 무엇을 먼저해야 하는지와 같다. 비행기에서 승무원들은 비상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전에 본인이 먼저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승객들에게 강조한다. 본능에 역행하는 말인데 특히 엄마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전적으로 타탕한 말이다.

작가인 안소니 블룸은 그의 아버지가 내면의 대화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영적으로 자신을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면 현관문에 “문을 두드리는 수고를 하지 마십시오. 저는 집에 있지만 대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쓴 표지판을 붙여 놓곤 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를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몹시 좋아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시편 기자가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스스로에게 “내 영혼아! 왜 내 속에서 낙심하는가?”라고 묻는 구절을 통해서, 혹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소서. 내 생각을 감찰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구절을 통해서 내면의 대화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때로 하나님 편에서 먼저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시기도 한다. 가인에게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라며 경책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엘리야가 이세벨이 두려워 광야로 도망갔을 때 엘리야를 붙잡는 하나님의 질문에서 그 대화를 엿볼 수 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으신 하나님은 “쉬어라. 자고, 먹고, 마셔라. 그런 다음 네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 내게 말해 다오”라고 말씀하신다. 그 후 놀랍고 신비로운 내면의 대화가 뒤따랐으며 그 대화를 통해서 엘리야의 잘못된 시각이 바로잡힌다.

“육체의 가시”와 그로 인한 좌절감을 말하면서 바울은 내면의 대화를 내비친다. 바울은 “하나님께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간구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공직에 있는 동안 윌버포스는 주일마다 갖는 내면의 대화를 거른 적이 거의 없다. 야망의 문제에 직면했던 그 주일에 이 원칙이 왜 중요한지를 그는 몸소 보여주었다. 만약 윌버포스가 그 날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그의 인생이 얼마나 잘못되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윌버포스는 내면의 대화를 위해 주일을 따로 떼어놓았을 뿐만 아니라 주중에도 그보다는 짧지만 비슷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윌버포스가 아침에 한 일들을 나는 때때로 영적 계기판에 리셋 버튼 누르기, 혹은 마음을 말끔히 청소하기라고 부른다. 윌버포스는 언젠가 그 시간을 이렇게 적었다. “분주한 일정으로 마음이 번잡해지고 지치기 전, 고요한 아침에 하나님과 그리고 스스로와 다정하게 이야기 나눌 만한, 찾기 힘든 중요한 때를 당신은 가지고 있다.”

갈스 린은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도 윌버포스가 힘을 얻고 자신과 세상을 올바른 시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른 아침 시간과 조용히 보내는 주일 때문이었으며 그 시간은 날이 갈수록 더욱 깊어졌다”고 말한다.

윌버포스가 지녔던 마음의 습관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나는 내면의 대화와 이른 아침의 ‘안식’을 지킬 수 있었다. 그의 습관에 영향 받지 않았다면 그 시간은 무시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왜 이 대화를 소홀히 하는가

젊은 목사 시절, 나는 종종 열정과 아이디어가 너무 넘친 나머지 조용한 내면의 대화를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았다. 그보다는 신문을 읽고, 조찬 회의를 하고, 일을 끝마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여겨졌다. 내가 그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피로와 좌절과 잘못된 결정과 지혜의 부족 등 증거들이 쌓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 우선순위는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

사역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거의 모든 교단의 목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가르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경영이나 교회 성장이나 설교하는 법을 강연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윌버포스처럼) 내면의 전투가 일어나는, 리더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강연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가 더 많다. 내 강연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내면의 대화가 차지하는 위치와 “당신은 어떻습니까?”라는 질문이다.

그런 컨퍼런스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조용히 만나면 몇 가지 문제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그중 많은 것이 심각하다. “너무 지쳤어요…아이디어가 고갈되었어요…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일을 하면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사람들이 나를 한 조각씩 나누어 가져서 나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자꾸만 사람들을 피하려는 내 자신을 발견해요…가족들이 너무나 불행해 합니다…포르노가 (혹은 성적인 생각들이) 문제입니다…내 자신이 몹시 실망스러워요…하나님이 너무나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져요…더 이상 아무런 재미가 없어요.”

리더들이 개인 영역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강연하려고 뉴잉글랜드 컨퍼런스 센터에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나는 뉴잉글랜드 침례교파의 역사를 기록한 낡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내용 중에 1932년에 쓰인 편지가 있었는데 좌절감과 실의에 빠진 한 목사가 교단에 보낸 것이었다.

“저는 7년 동안 이곳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저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제가 떠나기를 원합니다. 아직 제게 직접적으로 그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그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출석률은 떨어지고 헌금도 적습니다. 저는 어디든 가겠습니다. 제게 기회만 주십시오.”

이 목사는 그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가족을 위한 더 좋은 집이나 그에게 잘 해줄 장로나 집사들이 해답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편지를 읽거나 앞에서 언급했던 종류의 대화를 하다 보면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게 된다. “영적 리더들이 그렇게 느끼도록 하나님이 정말로 의도하신 것일까? 목회라는 부르심에 종종 고난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나도 안다. 그러면 이처럼 많은 지도자들이 결국은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목회자들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은 내면의 대화를 소홀히 한 결과인가?”

헨리 나우웬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리더들이) 지루하고 무뚝뚝하고 열정이 없는 관료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많은 계획과 프로젝트와 약속이 있지만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다하면서 마음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쓸데없이 걱정만 많은 노인일 수도 있다. 인정한다. 내가 이따금씩 빠졌던 함정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빠질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잘못을 범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일정 가운데 내면의 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포함시키지 않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더욱 커진다. 이런 조용한 시간이 부족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지속가능성, 그리고 꾸준히 (깊어져가고) 성장하는 능력이 점점 희미해진다. 이러한 능력은 하나님이 우리 대부분에게 허락해주신 50여 년 동안 영적 리더십을 갖추도록 하는데, 이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은밀한 내면 세계에서 하나님 앞에서 치르는 전쟁은 승리한다”면서 “절대로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상이 먼저가 아니다.…하나님 앞에서 전쟁을 치르고 그곳에서 승리한 사람은 그 어떠한 것도 넘어뜨리지 못한다”고 적었다.

그렇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주일마다 경험한 것이 이것이다.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대화, 바로 그것이었다.

영혼을 갉아먹는 질병과 싸우는 리더에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의 이상적인 일주일은 어떻습니까? 어떤 중요한 일들을 일주일 동안 하는지 이야기해주세요.” 보통 우리 모두가 익히 아는, 리더가 할 만한 일의 목록을 듣는다. 직원회의, 설교 준비, 교회 리더들과의 회의, 세미나, 예산 회의, 상담, 장기 계획 수립 등이다. 때로는 운동을 한다거나(이것은 아주 좋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이것은 더욱 바람직하다)는 대답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잘 듣지 못하는 대답이 있다. 무엇일까? 개인의 안식을 위해 시간을 갖는다는 대답이다.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폭을 넓히는 시간, 내면의 대화를 위한 시간이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식하는 시간에는 뭐하세요?”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들이 으레 기대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실망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에 그런 기교를 버렸다. 그것들이 내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더 중요해진 것은 결과였다. 그렇다면 나는 안식의 시간에 무엇을 하는가? 간단하다. 그리스도로 향하는 마음을 더욱 새롭게 하고, 성경적인 방식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내게 샘솟게 하는 확신을 북돋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런 결과를 추구하기 위한 시간이 일정표에 들어가 있는지 리더들에게 물으면 이런 종류의 반응이 돌아온다.

 너무 바빠요.
 시간을 낸다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어요.
 외향적이라서 혼자 있고, 조용히 있고, 묵상하는 것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요.
 그렇게 한다손 치더라도 즉각적인 결과를 얻지 못해요.
 그건 너무 지루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대화를 나누는 모세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머무는 진영의 가장자리에 회막이라고 불리는 장막을 세웠고 산 위에서 하나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모세가 회막으로 가면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것이 내게는 내면의 대화라고 여겨진다.

성경의 하나님은 위대하고, 신비로우며, 인간의 언어로 묘사할 수 없는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대화를 묘사하는 이 부분은 예외이다. 그 부분에서 성경은 친근한 인간의 언어로 감히 하나님을 묘사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우리 중 하나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이 저자의 목적은 아니다. 모세가 리더로서의 자기 삶을 재조정할 때 내면의 대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표현하려고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주위에서 춤을 추며 애굽의 우상 숭배로 돌아간 광경을 모세가 목격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모세의 회막 이야기 전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점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에 놀란 모세는 속된 말로 뚜껑이 열렸다. 내 생각에 모세는 다 집어치우고 떠나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를 나열한 순서에 근거하면, 이러한 모세의 심정을 두고 회막 안에서 모세와 하나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으며,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물을 수 있었고, 그의 사역과 용기를 새롭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모세에게는 (특정한 장소인) 회막이 있었다. 그리고 윌버포스에게는 (특정한 시간인) 안식일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결국 새로운 힘을 얻었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썼던 아래의 말을 실제로 실천한 좋은 예다. (유진 피터슨이 쉬운 말로 멋지게 풀어 쓴 성경에 의하면)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믿음 안에서 흔들림이 없는지 스스로 확인해보고,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적당히 지내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십시오.”

이러한 자기 점검, 즉 내면의 대화를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나는 발견했다. 질문은 호기심이 확장된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점검할 때 아주 훌륭한 역할을 해낸다.

 

 

내면의 대화를 위한 질문들

내가 좋아하는 질문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두루 살피는 것인데, 시편 기자가 “나를 살피소서!”라고 말한 바와 같은 맥락이다. 이 질문들은 한 개인의 내면이 어떤지를 알아보고 동시에 빛으로 인도하는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이다.

내게 있어 내면의 대화는 지난 주일부터 지금까지의 시간들을 돌아보고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을 살펴보면서 시작된다. 그 사건들에 의미가 있는가? 그 안에 교훈이 담겨 있는가? 그 안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는 하나하나가 다 통찰을 준다는 것이 나의 이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금이나 석유처럼 깊은 곳에 묻혀 있다. 발견해내야만 한다. 바쁜 사람들이 무척 멋있어 보이지만 종종 피상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아마 이 때문 아닐까. 그들은 금을 캐내고 석유를 퍼 올릴 시간이 없다.

내면의 대화를 시작하는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당신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은 감추어진 금을 캐내기 위한 시작용 질문 몇 가지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분을 나타내 보여주었던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였는가? 나와 세상의 가장 나쁜 것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 악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일주일 동안 일어난 일 가운데 반드시 기억해야 하거나 일기장에 기록해놓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훗날 들추어 볼 때 하나님의 (책망이나) 축복을 떠올리게 할 만한 일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대한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념비나 제단을 쌓게 하셨다. 그 기록들은 이 기념비나 제단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동안 나의 지배적인 감정은 무엇이었는가? (지금 현재, 나의 지배적인 감정은 무엇인가?) 슬픔, 두려움, 분노, 공허함이 지배했었나? 아니면 기쁨과 열정이 지배한 시간이었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혹은 직접 하나님을 통해서 내가 받은 은혜와 축복은 무엇이었는가? (때로 감사 카드나 일기에 기록하듯) 찬양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가?  

  내가 책임져야만 하는 일을 경험한 적 있는가? 회개해야 하는 일들이 일어났는가?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가? 피할 수 있는 일들이었나?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그 같은 일을 막을 수 있겠는가?

 리더로서 내가 사고할 때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고매한 생각이었나? 아니면 중요하고 도전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도피적 생각이었나?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하는 피상적 생각이었나?

 지금 내가 현실을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있나? 고통스러운 비판, 형편없는 성과,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습관적인 행동 등을 부인하고 있는가?

 사람들을 향한 원망이나 악감정이 있는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그런 감정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가?

 배우자, 자녀, 친구, 동료들과 함께 있는 리더로서의 나 자신을 떠올려보라. 과연 나는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인가?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도전을 받고, 고양되고, 열정을 얻는가? “가는 곳마다 기쁨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들이 떠남으로서 기쁨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기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성경을 통해서는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성경 이외의 다른 책을 통해서는? 하나님께서는 나와 가장 친한 사람들을 통해서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셨는가?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까?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통찰이 솟아나고 있는가? 그중에서 내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이며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내 앞에 놓인 가능성은 무엇인가? 성품과 명성과 행복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어디에 도사리고 있을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사랑받는다고, 감사한 존재로 여겨진다고 느끼게 하려면 어떤 말과 행동이 필요할까?

 내가 속한 지역 사회와 크게는 세계 속에서 사회적 약자, 가난한 자, 고난 가운데 있는 자, 압제받는 자를 돌아보고 있는가?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들을 성경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인식하고 있는가?

 오늘 내가 예수의 제자로서 더욱 성장해나가기 위해서 어떤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하는가?

 

이외에도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지고 싶다. 내 개인적인 내면의 대화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오시거나, 갑자기 예수님 앞으로 불려가서 내가 그분과 얼굴을 마주하는 날이 오늘이라면 어떨까?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말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며, 절대로 피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다.

윌리엄 윌버포스가 이 같은 질문으로 조용한 시간을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는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1801년, 윌버포스가 삶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곳에 도달했을 때 그가 내면의 대화를 통해 아주 끔찍한 실수를 피했다는 것이다. 야망이 ‘꺾이지’ 않았던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발명가였던 파스칼은 「팡세」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은 자신의 방 안에 조용히 있지 못한다는 그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라고 썼다. 내가 파스칼의 이 말을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내면의 대화를 위해 시간을 내지 않거나,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거나,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리더는 스스로를 엄청난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잘 알지 못하는 리더는 자신을 재앙에 노출시킨다.

윌리엄 윌버포스는 노예 상인이었다가 훗날 성직자가 된 존 뉴턴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친분을 유지했다. 윌버포스는 정치인이었으며 뉴턴은 목사였다. 그러나 그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사람 다 하나님을 믿었고, 영적인 능력은 (파스칼의 말을 빌리자면) 그만의 은밀한 방에서 하나님과 조용히 내면의 대화를 가지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뉴턴은 내면의 대화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나단 애트킨은 뉴턴의 자서전에서 뉴턴의 영적인 삶의 핵심인 다섯 가지 원칙을 적어놓았다. 뉴턴은 그 원칙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해주며 영적 리더로 살아가도록 그를 붙잡아 준다고 믿었다. 그는 아래 원칙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과 함께 끝내라.
 성경의 위엄에 합당한 성실함과 집중력을 가지고 성경을 정독해라.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과 함께 보내라.
 배울 점이 있는 좋은 사람들을 선택해서 친구를 삼아라.
 몇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어라.

이 원칙들은 실제로 작동했으며 여전히 유효하다. CTK 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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