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거룩한 교회
상태바
그래도 거룩한 교회
  • 다이앤 리클렉 | Diane Leclerc
  • 승인 2020.0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망가진 모습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거룩한 형상으로 다시 빚으신다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거룩하게 된다는 것

제구실 못했던 교회 하나를 든다면, 고린도에 있던 그 교회일 것이다.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첫 번째 서신을 보면, 얼룩진 세탁물의 목록을 보는 것 같다.

고린도전서의 모든 장에 그 교회가 교회의 표지를 잃어버렸다고 할 만한 문제가 한 개 이상 나온다. 거기에는 추문과 반목, 혼란, 명백한 죄악이 있었다. 교인들은 편을 갈라 서로 무시하고 다퉜다. 서로 할퀴고 밀어냈다.

그런데도, 첫 번째 서신 첫머리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 불렀다. 그들의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이루실 수 있는 일을 잊지 않았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이루실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떤 의미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여러분은 거룩합니다. 그러니 이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고린도 교회는 거룩하기도 하고 거룩하지 않기도 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이 역설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imputed righteousness라는 개념을 통해서다.

우리는 보통 이 개념을 개인에게 적용하지만, 교회 공동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은 그 의가 우리의 것이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의 죄악을 완전히 덮으셔서 전혀 의롭지 않은 우리를 의롭게 여겨 주실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모습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하심의 “흰 옷”을 입는 것이다.

교회가 전가된 의를 누릴 수 있다는 주장은 교회의 실패와 결점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우리에게 거룩함의 중요한 일면을 일깨워 준다. 곧, 거룩함은 다른 곳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인간의 거룩함은 다른 어떤 거룩하다는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나온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다.”(출31:13; 레22:32)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4-45)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20:7)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20:26) 성경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우리의 거룩함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우리의 거룩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 웨슬리 신학자인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pson은 이렇게 말한다.

구약성경에서 거룩하다는 말은 특별한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설명할 때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불경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 관계 차원에서 거룩한(구별된) 것 또는 불경한(범상한) 것으로 기술된 것은 제의 차원 차원에서 정결한 것 또는 부정한 것으로 기술된다.

이런 맥락에서, 정결과 부정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부여되는 성격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결하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것, 곧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하다는 것은 거룩하지 않다는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과의 관계 밖에 있거나 틀어져 있다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그 핵심은 하나님과 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이다.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는 거룩하다고 불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의 기대치는 여기까지일까? 우리는 계속 하나님을 실망시켜도 괜찮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덮어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다. 우리의 거룩함은 진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를 거룩하게 여기신다는 것에서 멈춰 버리면 안 된다. 거룩함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진정으로 거룩하게 다시 만들고자 하신다. 우리를 죄인에서 성도로 바꾸시어 우리가 거룩한 공회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거룩하다고 선언하신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함을 주입하셔서 교회로서 우리가 거룩한 존재가 되도록 하신다. 우리의 내면이 실제로 변화되는 것이다. 전가된 의 뒤에는 반드시 유입된 의imparted righteousness가 따라야 한다.
 


두 팔을 밖으로 내밀어

거룩함의 참 의미와 잘못된 의미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거룩함과 죄 짓는 행동을 피하는 것을 동일시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면 예수님과 바리새인이 서로 동의하지 않았던 것을 간과하게 된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완벽하게 따르려고 애썼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바리새인은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말한 대로) 흠 없는 사람이라고 자처할 만했지만, 정작 그리스도께서 가장 가치 있게 여기신 사랑의 삶에는 미치지 못했다.

우리가 사람의 거룩함을 죄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면, 우리는 거룩함을 부재의 개념으로만 정의하는 것이다. 거룩함은 어떤 잘못된 일들을 삼가는 수동적 상태가 결코 아니다. 거룩함은 올바른 길을 걷겠다는 목적이 분명한 갈망을 요구한다.

따라서 거룩함의 가장 좋은 정의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서로를, 그리고 세상을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구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라는 맥락에서 거룩함은 다른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 사랑의 부르심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거룩한 교회는 어떤 기능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첫째, 교회의 목적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부재한 이 세상에서 그분의 몸이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셨을 곳을 가고 그리스도께서 하셨을 일을 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우리는 그들을 먹이고 우리 안으로 초청하고, 치유하고 환대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다.

그래서 교회로서 우리는 불결하고 더러운 세상 속으로 우리의 발을 내딛게 된다. 교회가 거룩해지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궁극적 목적을 두 팔을 밖으로 내밀어 수행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생명력 넘치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감으로써 그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 몸 안에 개인주의란 있을 수 없다. 독존하는 그리스도인 같은 것은 없다.

귀나 눈이 다른 기관들에게 “난 네가 필요 없어”라고 말할 수 없다. 몸이 그 목적을 이루려면 몸의 모든 부분들에는 다른 모든 부분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온 세상을 사랑하라고 부름 받았지만, 서로 빚지고 있는 특별한 사랑도 있다.

한 지체가 슬퍼할 때 다른 모든 지체도 슬퍼한다. 한 지체가 기뻐할 때 다른 모든 지체도 기뻐한다. 삶이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서로 의지한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기 위해 우리는 서로 의지한다. 교회가 거룩해지고자 한다면 서로 사랑하고 돌보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셋째, 그리스도의 몸은 지체 하나하나의 가치를 동일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 말은 바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스로마 사회에는 “평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특정한 역할이 있었지만, 가치 있는 사람, 곧 권력이나 권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었다.

그런데 대범하게도 바울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지체도 그렇지 않은 지체와 똑같은 가치를 지니며 “장애를 가진” 지체는 특별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셈법을 제시했다. 교회가 거룩하게 되고자 한다면, 모든 지체 곧 모든 사람이 높은 가치를 지니며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사랑 받아야 한다고 천명해야 한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다음에 위대한 “사랑 장”이 따라오는 것이다. 바울은 사랑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만 하면, 13장 이전에 다룬 모든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고 암시한다. 거룩함의 중심에 사랑이 있다. 사랑은 거룩함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거룩함 자체가 사랑이라고 감히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문 보기 : 그래도 거룩한 교회]

 


다이앤 리클렉 미국 아이다호 남파에 위치한 노스웨스트 나사렛 대학교Northwest Nazarene University의 역사 신학 교수이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의 거룩 발견하기: 웨슬리 성결 신학의 핵심」Discovering Christian Holiness: The Heart of Wesleyan Holiness Theology의 저자이다.

Diane Leclerc, "The Good News about Bad Churches"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