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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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세요”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2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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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일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정말이지 딱 맞아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온다. 최근에 한 집회에서 강연할 때가 그랬다. 첫 시간에 나를 소개하는 말이 과분하게 이어졌는데 남이 들으면(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물론 듣기 좋은 말이었다.

강연을 하는 내내 나와 청중은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호흡했다. 반응이 무척 좋아 나도 덩달아 힘이 솟았다.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My Fair Lady)에 나오는 노래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밤새도록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발표가 끝나자 당황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예수님만이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내 몫으로 십분의 일을 가져왔다. 일종의 ‘십일조 뒤집기’였다. 혹시 당신은 그런 적 없었는지?

하루를 묵어야 했기에 그날 밤 숙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분했던 소개부터 청중의 반응과 엄청난 박수갈채까지,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정말로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 일에 크게 의미를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누군가와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아내는 다 듣고 나서 자기도 기쁘다고 하더니 갑자기 화제를 돌려서 내일 몇 시쯤 집에 돌아오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항공편과 도착 시간을 알려주었다. 돌아온 아내의 대답이 기가 막혔다. “잘됐네요. 집에서 점심 드신 후에 낙엽 치울 시간은 충분하겠어요.”

낙엽을 치우라고? 이 사람이 내 강연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건가? 자존심이 상한 나머지 아내에게 따지고 싶었다. “왜 나 같은 사람이 낙엽을 치워야 하지?” 나는 대단했던 강연의 여운 속에 푹 빠져 있고 싶었다. 하지만 대화는 아내의 말로 끝났다. “어서 집에 오세요. 사랑하는 가족들 품으로.”

아내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유혹과 겉치레가 많은 공인의 삶에서 나를 떼어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다시 돌려놓아야 할 때를 정확히 알아차린다. 사랑하는 가족 속에서 내 자아는 본래 크기로 되돌아온다. 낙엽을 치우란 말은 아내만의 처방인 셈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란 말을 언제 들었었나? 어렸을 때 더 자주 들었던 것 같다. 이 말은 사이가 아주 가까운 공동체를 가리킨다. 한 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 배우자(결혼했다면)와 자녀(부모라면), 친척, 혹은 아주 친한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바로 그들이다. 모임이 점점 더 커지면 커질수록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는 말은 퇴색하여 의미가 엷어진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이라는 말이 한물간 표현처럼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달하고 빠른 운송수단이 등장하면서 점점 더 얕은 관계들이 늘어나는데 이러한 흐름에 휩쓸려 사라지는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가족’으로 가꾸기

리더는 ‘사랑하는 가족’을 삶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리더가 사랑하고 우선으로 생각하는 첫 자리에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야 한다.

리더는 공적 활동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사랑하는 가족들보다 우위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당신이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나, 활기가 넘칠 때나 지쳤을 때나, 흥에 겨울 때나 낙심했을 때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처럼 “당신을 받아주어야 하는” 이들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종종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에게 사랑하는 가족들은 어떤 이들인가요?” 대답을 듣다 보면 그가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가 얼마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 속에 누구를 포함시키는지도 알 수 있다. 아주 바쁘고 성취 지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묻고 싶을 때도 생길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는 하신가요?”

나 같은 경우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우선순위 어디쯤에 두어야 할지를 목회를 시작한 초기에 결정했다.

나보다 적어도 50년은 더 연세가 드신 지혜로운 목사님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무엇을 더 우위에 두어야 할까요? 가족인가요, 아니면 주님의 일인가요?” 당시에 그 질문은 아주 적절해 보였다.

나는 ‘주님의 일’이 항상 최우선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기독교 전통 속에서 자랐다. 희생은 당연히 따르는 것이었고, 사역자는 시간과 힘을 쓸 만큼 쓰고 남은 찌꺼기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몫으로 가져갔다.

목회자였던 아버지를 떠올리면 내 마음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아침마다 교회 사무실로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내 마음속 아버지는 항상 뒷모습일 뿐,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해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스승으로부터 “하나님의 일에 헌신해야 한다. 가족은 하나님께서 돌보신다”고 배우셨다.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얼굴이 아닌 뒷모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았다.

그래서 나이 드신 그 목사님께 여쭈었던 것이다. “무엇을 더 우위에 두어야 할까요? 가족인가요, 아니면 주님의 일인가요?”

답은 명료했다. “고든, 가족이 바로 주님의 일이네.” 이 짤막한 말씀이 내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지를 결정했다.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들은 서로를 아끼고 돌보고 격려하며 서로를 인해 즐거워한다. 이런 중요한 교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꿈과 열망, 두려움과 의심을 솔직하게 나누고 그것들을 잘 다루어갈 기회를 관계 안에서 찾는다.

사랑하는 이들은 삶에 관한 여러 아이디어와 기술을 나누고 전수하면서 자연스레 그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한다. 그들과 함께하면 더 진정한(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간성을 바깥세상에서 보다 더 깊고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들 안에는 인생의 어떤 ‘기본적인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이들은 당신에게 낙엽을 치우라거나 매일 반복되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이러한 땅의 기대는 공적 활동을 하는 리더가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로마서 12장의 잘 알려진 말씀대로)으로 스스로를 높이지 않도록 막아준다.

자주 언급되지 않는 성경인물인 웃시야 왕은 왕위에 오른 초기부터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열여섯 살에 왕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적인 왕으로 자리 잡는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하나님을 찾았다.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다.”

다윗 이후 가장 위대한 왕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른 후 그는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고 만다.

웃시야를 기록한 말씀 어디쯤에서 누군가 등장해 그에게 집에 가서 낙엽을 치우라고 말을 했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그의 인생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간디가 이끌었던 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박사학위 소지자인 한 청년의 일화다. 재래식 화장실 청소를 매일 도우라는 지시를 받자 이 청년은 매우 강하게 반발했다. “저는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큰일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간디는 이렇게 답했다. “자네가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네. 자네가 사소한 일도 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네.”

 


낙엽 치우기 말고도 집안일은 무궁무진하다

낙엽 치우기 같은 사소한 일을 하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사는 모습이다. 가장 원초적인 죄가 거기서 드러난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가면은 벗겨지고 인격이 드러나며 신앙의 진면목이 평가된다. 그래서인지 몇몇 리더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적었다. “건강하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법을 모른 채, 힘과 지배력만 내세우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리더십을 행사합니다. 기독교 왕국을 세우려 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줄 줄도, 또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예수님의 이름으로」(두란노 역간)).

아내가 내게 어서 집에 오라고, 와서 낙엽을 치우라고 말했을 때, 아내는 나를 바로 이러한 함정에서 건져낸 것이다.

낙엽 치우기는 가족들이 서로를 위해 하는 많은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일들은 신기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치면 생명력 넘치는 삶을 치명적으로 손상시킨다. ‘낙엽 치우기’에 버금가는 몇 가지 일을 여기에 소개한다. [전문 보기 : 집으로 돌아오세요]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는 <리더십 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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