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가신 하나님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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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가신 하나님 [구독자 전용]
  • 정성국
  • 승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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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도시적’ 존재 의미를 묻다

ISTOCK 건물 위에 십자가만 세워도 사람들이 몰리던 시절에는 ‘교회’에 대한 고민이 절실하지 않았다. 그 시절 교인들과 목회자들의 질문은 단연 ‘구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 이후에 얻는 영원한 복락’이었다. 사람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죽어서 가는 천국’ 이전에 ‘이생에서 얻는 물질과 건강의 축복’도 더해 주면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조금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교회에 대한 질문이 절실하지 않기는 서구 교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서구 기독교 역사의 대부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밖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었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상과 구별된 집단으로서 교회가 지녀야 할 정체성과 삶의 방식은 고민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질문이 절실해졌다. ‘어떤 교회를 세울 것인가?’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주변화’ 또는 ‘소수집단화’라는 너무나도 낯선 처지에 놓여, 교회의 생존이라는 절박한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교인 감소도 문제지만 고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한국 교회에 유독 젊은 층의 이탈 현상이 심한 이유는 교회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윤리적 지탄을 받지 않는 교회에도 청년들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교회가 청년들의 삶과 괴리되어 있고 그들을 위한 공동체가 되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고민하는 이유는, 사회학자들의 언어를 쓰자면, 기독교 진리에 대한 ‘타당성 구조’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하나의 이론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 이론이 구현된 실재 모델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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