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김지영이 활짝 웃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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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김지영이 활짝 웃는 날이 오면 좋겠다
  • 임지원
  • 승인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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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공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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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밀레니엄’이라는 단어가 매우 핫 하던 2000년, 첫 아이를 임신했다. 출산이라는 단기간의 목표가 생기니 막 먹고, 자도 떳떳했다. 임산부가 드문 방송국에서 나는 흥미로운 존재였다. 지금까지 이렇게 확실하게 주인공인 시절이 내 인생에 있었던가?

20대는 늘 불안했는데,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니 왠지 모든 것이 견고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처럼 계속 일을 할 거고, 아기도 잘 키울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예정일이 다가오고, 어느 새벽, 진통이 찾아왔다. 육아 관련 책에서 배운 호흡법을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들려오는 산모들의 울부짖음. 나는 저들과 다르게 우아하게 출산을 마치리라 생각하며 심호흡, 또 심호흡…. 시간이 흘렀고, 깨달았다.

너무 교만했구나. 처절하게 몸부림쳤고, 울부짖었다. 여성으로서의,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버리자 아기가 태어났다. 방금 전까지 펄펄 끓던 냄비 손잡이를 무심코 잡은 듯, “앗, 뜨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두 딸, 남편과 함께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나는 저주에 걸린 듯 며칠 동안 힘들었다. 20년 전, 첫 아이를 임신하고, 낳고 겪은 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82년생 김지영이 바로 72년생 임지원이었다.

나 역시 김지영처럼 출산 이후 일을 그만뒀다. 젖병을 거부하는 아이. 전직 간호사였다는 베이비시터는 아무리 노력해도 보리차 몇 숟가락밖에 먹일 수 없다며 그만뒀다. 아이는 엄마 젖을 기다리는데, 일을 하러 나간 엄마는 젖이 차올라도 먹일 수가 없어 스웨터를 적시고, 열이 났다.

정신없이 집으로 와 젖을 물렸다. 얼마나 시원하던지! 허겁지겁 젖을 먹고 깊은 잠에 빠진 아이를 보며 나는 항복했다. 젖만 제때 먹일 수 있으면 아무것도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아기와 나, 둘 뿐이었다…. 종종 행복했지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영화 속 김지영의 마음이었다.

저녁만 되면 가슴이 쿵 떨어진다는 그녀의 말, 그 말에 너무나 공감되어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책에서도 인상 깊게 읽은 바로 그 장면, 명절에 부산 시댁을 방문한 며느리 김지영의 이야기가 나온다. 왠지 모르게 선을 긋는 시어머니, 이상하게 굽신거리는 며느리.

게다가 이제 좀 마무리되나 싶은 상황에서 우르르 들이닥치는 시누이들. 그런 명절 상황은 나에게도 익숙하다. 나는 남편에게 요구했다. 저녁까지 시댁에서 먹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남편은 거대한 벽처럼 꿈쩍 안 했다. [전문 보기 : 세상의 모든 김지영이 활짝 웃는 날이 오면 좋겠다]

 


임지원 주부. 딸 둘과 남편, 넷이서 경기도 일산에서 씩씩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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