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적 교회가 된다는 것의 의미
상태바
사도적 교회가 된다는 것의 의미
  • 크리쉬 칸디아 | Krish Kandiah
  • 승인 2020.0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나는 영국에서 자랐는데, 우리 가족은 옆집 오글리브 부인에게 늘 신세를 졌다. 우리는 집안에 못 들어갈 때를 대비해서 우리 집 열쇠 한 벌을 오글리브 부인에게 맡겨 두었다.

우리는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나올 때가 종종 있었고, 현관문이 잠겨 집에 못 들어 갈 때면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항상 그녀 덕분에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글리브 부인은 외출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그녀에게는 광장공포증이 있었다. 40년이나 옆집에 살고 있지만, 나는 그녀가 집밖으로 나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집 벽난로 위에는 그렇지 않았던 시절에 찍은 사진들, 신혼 때부터 아이들과 해변에서 찍은 사진들이 있다.

오글리브 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자신을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그녀의 정원은 마치 정글 같이 되어 버렸고, 어린 나는 마체테machete[벌채나 무기로 쓰는 중남미 지역의 칼]를 휘두르며 밀림을 뚫고 지나가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그녀의 현관까지 길을 내주고 용돈을 벌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겨우 나는 그녀를 휘감고 있는 두려움과 좌절의 무거운 구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쇠약한 그녀의 창문에는 항상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지금도 가끔 나는 여전히 우리 집 문을 못 열 때가 있고, 그러면 그녀는 여분의 키를 건네주신다. 나는 그녀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좋다.

오글리브 부인과 현대 교회 사이에서 어떤 유사점이 보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커튼 뒤에서 세상을 지켜보면서 문화에 참여하지는 않은 채 비판을 한다. 많은 교회들이 지역사회와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다.

불길한 일이 들이닥칠 것이라 예언하는 무리처럼 몸을 숨기고서는 열린 광장의 다양한 관점과 생활양식을 두려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구경꾼들이 교회가 임종을 고할 날을 손꼽고 있다. 점점 줄어드는 교인 수와 스캔들, 약해지는 영향력을 보아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문을 걸어 잠그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의 교회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도 요한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1세기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로마제국이 그들의 지도자를 잔혹하게 처형했고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 잔당을 쓸어버리려고 나선 마당에. 당연히 제자들은 이제는 자신들이 붙잡혀 갈 때라고 생각했다.

요한의 설명은 두려워하며 숨어 있는 제자들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는 당시의 교회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이런 질문을 끌어낸다. 왜 저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문을 걸어 잠근 안전한 곳에서 떠났어야 할까? 왜 숨어 있는 교회로서 그냥 행복하게 지내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문을 걸어 잠근 예루살렘 교회는 300년 뒤에 니케아 신경에서 확정된 교회의 본질과 관련한 몇 가지의 설명을 충족한다. 니케아 신경은 교회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이라고 기술한다.

분명히, 문을 걸어 잠근 예루살렘의 교회는 하나이다. 곧, 그 교회는 두려움으로 하나 되어 있다. 그 교회는 거룩하다. 곧,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 교회는 거룩하다. 곧, 믿음으로 그 교회는 역사의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사도적이라 할 수 있을까?

381년 이래 다양한 전통의 신자들이 니케아 신경을 고백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적’이라는 이 형용사는 논쟁과 이견의 핵심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로마가톨릭과 정교회 그리스도인들에 의하면, 교회는 “사도적 계승”apostolic succession 때문에 사도적이다. 사도적 계승이란 성직은 예수님의 제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도의 계통을 통해서 부여된다는 뜻이다. 개신교에 의하면,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계승하기만 하면 사도적이다.

직임의 역사적 계승이든 가르침의 계승이든 이런 계승을 통해서 문을 걸어 잠근 교회도 사도적이라 부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두 가지 접근 방식 모두 교회의 사도적 본질에 대한 이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1세기 교회의 최초의 고립은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를 통해 계획하신 것에 반하는 것이었다.

요한의 이야기에서 눈을 돌리면, 우리는 사도성이 바른 슈퍼비전이나 바른 교리 이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굳게 잠긴 그 방으로 걸어 들어가시자, 절망에 빠져 있던 제자들이 담대한 사도로 변화된다.

그 변화는 우리에게 교회의 사도적 본질에 대한 더욱 충실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의 교회에 둘러친 바리게이트를 걷어치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전문 보기 : 기쁨의 폭발]

 


크리쉬 칸디아 영국복음주의연맹의 사명의 교회들Churches in Mission 실행위원장이다.
Krish Kandiah “An Explosion of Joy”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