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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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헌신
  • 존 D. 윗블리엇 | John D. Witvliet
  • 승인 202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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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사치스러워 보이는 경배의 행동이 우리에게 십자가로 향하는 길을 보여 준다.

 

사순절 여정은 베다니의 마리아와 더불어 예수께 대한 헌신에 초점을 맞춰 시작해 보는 게 정말 합당할 것이다. 아낌없는 환대와 친밀한 교제의 자리에 예수와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가 모여 나사로가 살아 돌아온 기쁨을 나누고 있다.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상 앞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 있다. 늘 분주하게 남을 섬기는 마르다는 오늘도 음식을 나른다. 이 광경을 그리는 화가들은 본능적으로 최대한 따뜻한 느낌의 색감을 조합해서, 사람이 어떻게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을 표현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때 마리아가 예수께 예배를 드리는 몸짓으로, 극상품 향유 한 동이를 예수의 발에 아낌없이 쏟아 붓고는 당대의 예의범절을 뛰어넘어 자기 머리를 풀어 그 발을 닦는다.

바로 며칠 전에 예수와 마리아와 마르다는 나사로의 시신이 부패하며 내뿜는 악취를 맡아야 했다. 그런데 이제 이들은 나사로와 함께 값비싼 향유의 향기에 흠뻑 젖는다.

지난 삼 년간 예수의 사역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토록 적대적이고 꼴사나운 태도로 반응한 데 비해 이는 참으로 놀라운 참 경건의 풍경이다. 마리아의 이 부끄러움 없고 겸손하며 엄청난 섬김의 몸짓을 보라.

마리아의 태도에는 먼 곳에 있는 신에게 마지못해 순종하거나, 쾌히 참여하기는 하면서도 마음 반쪽은 다른 데 가 있는 전형적 종교 의례를 닮은 데가 전혀 없다. 마리아의 행동은 사랑의 주님을 온 마음으로 경배하는 행위다.

이야기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을 부르시어 마리아를 본받으라고, 예수께 철저히 헌신하는 제자가 되라고 하시는 것을 곧 알아차릴 수 있다.

한국의 작곡가 박정관은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입 맞추고 깨뜨립니다”라고 노래함으로써 마리아의 경배에 동참하라고 예배자들을 청한다.

무릎을 꿇고 그 노래를 불러보라. 그리고 상상해 보라, 어떤 종류의 사랑에 이끌리기에 생명의 주님께 대한 합당한 반응으로 자기 연봉을 뚝 잘라 바칠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야가 확장된다.

이어서 눈에 띄게 으스스한 풍경으로 장면이 바뀐다. 유다의 반응은 처음엔 이치에 맞는 말로, 사회 정의와 검약의 미덕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말로 들린다.

일 년치 품삯으로 향유를 사느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주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한은 유다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얼른 우리에게 귀띔한다.

유다는 공금을 맡아 관리하면서 그 돈에 슬쩍슬쩍 손을 대는, 오로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자였다. 예수께서는 “그[마리아]를 가만 두라”고 하시면서 유다를 꾸짖으시고, 이에 화가들은 돌처럼 차가운 색상의 물감을 찍어 그 위선적이고 비판하기 좋아하는 제자를 그린다.

두 사람 사이의 대조가 이보다 더 뚜렷할 수는 없다. 마리아는 후하고 유다는 탐욕스럽다. 마리아는 겸손하고 유다는 오만하다. 마리아는 이타적이고 유다는 자기중심적이다. 유다는 홀로 뚝 떨어져 서 있다. 마리아는 겸손히 무릎 꿇고 경배한다.

이를 종합해 보면, 두 사람은 예수의 이 가르침을 서로 상반되는 예로 생생히 보여 주는 역할을 한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6:21)

예수께서 유다를 꾸짖는 광경은 참된 제자의 길로 부르는 또 한 번의 부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탐욕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무정한 모든 것에서 돌이키라고.  [전문 보기 : 순전한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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