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품고 살아갈 단어 [구독자 전용]
상태바
내가 품고 살아갈 단어 [구독자 전용]
  • 이진경
  • 승인 2020.0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생 투병일기

ISTOCK/Elena Sharipova 2월 17일 월요일 ‘몸의 반응과 영혼의 반응’ 간밤에 혹독하게 앓았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일어나니 아침이 돌아와 통증이 덜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어제 아침과 낮까지만 해도 몸은 계속 회복세에 있었다. 수술 부위나 배액관(수술 부위의 피를 받아내는 장치) 삽입 부위가 놀랄 만큼 통증이 없어서 집안을 사뿐사뿐 흥겹게 걸어 다녔다. 하지만 저녁 무렵부터 쇄골과 갈비뼈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배액관이 삽입된 부분이 뭔가 잘못되었을까 염려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누우니 어떤 자세로 누워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전체적으로 아팠다. 염증이 났을까? 그렇다면 열이 날 텐데. 통증 자체도 힘들지만 통증으로 인해 무언가 잘못되었으리라고 상상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이 더욱 힘들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통증이 덜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가 이 병에서 나으면 어떻게 살겠다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기도까지 했는데…, 내 결정적인 기도는 역시 안 들으시는 걸까. 나에게 고난을 주셔서 더 성숙시키려는 의도라면 그렇게까지 괴롭히시지 않아도 될 텐데…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다가왔을 때 이중고통이 있다. 이런 고통을 의도적으로 주시진 않았겠지만 허락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되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어느 정도, 인생이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되면, 아주 중요한 것―예컨대, 이 병에서 완치되게 해달라는—을 간구해도, 두려움이 남아 있다. 정말 그렇게 해주실...

정기 구독을 하시면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정기구독을 하고 계신 회원은 로그인을 해주세요.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 정기구독자 중 비회원은 회원가입을 해주세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