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신령과 진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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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신령과 진정”으로?
  • 권해생
  • 승인 2020.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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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난제 해설  No.13 요한복음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 

 

한국 교회만큼 예배를 좋아하는 교회가 있을까? 주일 오전과 오후(또는 밤)에 드리는 두 번의 공예배를 제외하고서라도, 많은 주중 예배가 있다.

처음에는 기도회라는 말을 붙였으나, 점점 예배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다. 그래서 새벽 예배, 철야 예배, 수요 예배, 가정 예배, 구역 예배, 송구영신예배 등 많은 예배가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예배라는 말을 좋아할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시고,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예배에 관한 중요한 본문 중의 하나가 요한복음 4:23-24인데, 오랫동안 이 구절은 사람들에 의해 오해를 받아왔다. 

가장 큰 오해는 개역개정 이전에 있었던 개역한글의 번역에서 비롯된 듯하다. 개역개정이 “영과 진리”로 번역하였지만, 그전에 개역한글은 “신령과 진정”이라고 번역하였다.

사람들은 “신령”이라는 말에서 거룩하고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를 연상하였고, “진정”이라는 말에서 진심을 다해 정성으로 예배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종교적으로 엄숙하게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찾으신다고 믿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 예배는 이렇게 인간의 노력으로 드리는 예배일까? 예배는 마땅히 정성스럽게 드려져야 하지만, 과연 이 본문이 그런 뜻일까?

개역개정이 헬라어 원문에 입각해서 “영과 진리”라고 바르게 번역하였지만, 여전히 교회 현장에서는 두 가지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첫째, 읽기는 “영과 진리”라고 읽지만, 실제로는 예전 개역한글의 의미를 여전히 떠올린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노력이나 정성을 강조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떠올린다.

둘째,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면, 이러한 예배만큼 중요한 예배가 없다. 그런데 설교나 성경공부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깊은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추상적으로 혹은 피상적으로만 가르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바른 의미는 무엇일까? 

 

바른 해석을 위한 열쇠 1: 헬라어 구문

“영과 진리”에서 “영”(프뉴마)은 사람의 영이 아니다.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프쉬케’나 ‘카르디아’ 같은 헬라어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따라서 영은 성령으로 보아야 한다.

다른 한편, 영과 진리는 따로 떨어진 각각의 개념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따로 있고,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영과 진리는 한 전치사에 의해 한정을 받기 때문에 하나의 개념을 지향한다고 보아야 한다. 마치 ‘브레드 앤드 버터’bread and butter는 빵과 버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버터 바른 빵”이라는 단일한 개념을 나타내는 이치와 같다.

그래서 다수의 성격학자들은 영과 진리를 “진리의 영”의 다른 표현이라고 본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곧 진리의 영으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의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요한복음에서 진리의 영은 세 번 등장한다(14:17; 15:26; 16:13).

먼저 14:17에 따르면, 진리의 영은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영이다. 한 사람이 진리의 영을 만나면 거듭나게 되고, 진리의 영은 거듭난 그 사람 속에 계속 거하신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을 구분한다.

세상은 진리의 영을 받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진리의 영을 받아 진리의 영을 알고 누린다. 그렇다면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진리의 영은 어떤 일을 하시는가? 

요한복음은 진리의 영의 예수 증언 사역을 강조한다(15:26). 진리의 영은 신자에게 예수님을 계속 드러낸다. 그래서 신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더욱 깊이 알게 한다.

예수님을 의지하게 하고, 예수님을 닮게 한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한다. 또한 16:13에 따르면, 신자 속에 내주하시는 진리의 영은 신자를 진리로 인도한다. 그 진리의 핵심은 장래 일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신자를 인도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시는 장래의 일이다. 따라서 진리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게 한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게 한다. 

결국 진리의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여 예배한다는 뜻이다. 그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분이며,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실 분이다.

참된 예배는 바로 이러한 성령님과 예수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고 아버지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이다. [전문 보기: 아직도 “신령과 진정”으로 ?]

 


권해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작은목자들교회 협동목사. 「요한복음 주석」(고신대학교출판국, 2017)의 저자. 이 글은 이 책의 일부의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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