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그리고 ‘물러남’의 새로운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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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그리고 ‘물러남’의 새로운 시각
  • 홍승영
  • 승인 20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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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가지__홍승영 목사의 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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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 때는 부모님이 생각난다. 좋을 때도 생각하지 못해 죄송하다. 목회 길을 걸으며 만났던 스승들도 생각난다. 전화라도 드리면 격려하며 조심스레 생각을 나눠주신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이 생각난다. 부흥의 시대를 살면서는 주님 바라기가 부끄러웠다.

“내 십자가는 이것인데 네 것은 무어냐?” 대놓고 물으신 적은 없지만 내 양심이 소리친다. 지금은 모두가 인식하는 대로 한국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스스로 져낸 십자가가 아니라 여전히 주님께는 죄송하다. 그래도 주님을 더 생각하게 된다.

한국전쟁에도 없었다는 회중 예배의 중단을 우리가 겪고 있다. 목숨을 달라는 것도 아닌데 거절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 앞에 무기력하다.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니(스가랴 6:6) 주님 앞에서, 사명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를 고백한다.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예외 없이 우리나라를 찾아왔다. 1월 중순경이었다. 2월 중순이 되면서 한국 사회는 나름대로 잘 대처하고 있었고, 정부에서도 국민들을 안심시키기에 이르렀다.

“대통령께서도 너무 위축되지 말라고 하셨으니까요.”

난 웃으며 성도들을 위로했다. 예배는 물론이고 여타의 사역들도 절제된 상태였지만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고 채 한 주가 되기도 전에 한 사이비종교의 집단 감염 사태가 드러나며 악몽과 같은 현실이 강요되었다.

기존의 교회와 다른 신흥종교집단임이 충분히 알려진 후에도 여전히 ‘교회’라는 단어가 따라 다녔다. 편들어줄 만큼 사랑받지는 못했던 한국 교회였기에 위기의 때에는 여지없이 압력을 받았다. 집단 감염이 크게 확산된 지역의 교회들이 회중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 가정 예배로 전환했다.

주일마다 모여 자기들끼리 잘 지내는 것이 불만이었던 비신자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안다. 주도적으로 여론을 형성하며 당연한 듯 전체 교회 예배의 중단을 요구했다. 버티던 몇몇 대형 교회들도 회중 예배를 중단했다.

사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번 사태에 잘 대응하고 있었다. 유럽이나 미주처럼 도시를 완전히 셧다운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효과적인 대응의 결과였다. 하지만 완전히 해결되는 시점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감염이 확산되는 정도에 따라 지역별로 다양한 정책을 취해야 했다. 심각한 곳은 병상이 부족했다. 아직은 여유 있는 지역에서 중환자들을 받아주었다. 감염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지역에서도 두려움과 경계심은 대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회적인 활동들이 여전히 유지되었고 부분적인 감염 현상이 계속 발생했다. 자의든 타의든 셧다운 했던 교회들은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언제까지 교회를 폐쇄하고 있어야 할까!

우리 교회는 인터넷 예배와 함께 현장 예배도 드렸다. 우리 지역에 퍼진 감염 상황과 함께 이 바이러스의 특징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서 내린 결론이었다. 방역에 필요한 교회의 충분한 조치를 보고 지역 행정 관서에서는 격려를 전해 왔다.

또한 평상시보다 훨씬 적은 수의 성도가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다수의 성도들은 가정의 인터넷 예배를 결정했다. 듬성듬성 앉은 예배당을 보면서 ‘오늘은 비교적 안전하겠다’고 안심했다.

우리는 “오늘 이 예배를 위해 절제하며 가정에서 인터넷 예배를 하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했다. 현장의 회중 예배든, 인터넷 가정 예배든 우리는 중단(셧다운) 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고 서로를 위로했다. 우리는 다만 조금 물러났을 뿐이다.

이 기간에 우리가 묵상한 예수님은 물러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셨던 분이다. 공생애를 시작하셨던 초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분봉왕 헤롯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고향인 나사렛과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 바닷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다(마태복음 4:12~14).

물러가셨다는 헬라어 단어에는 공간이 들어있다. ‘아나코레오’는 공간을 내어주고 철수하신 것을 말한다. 은퇴를 뜻하기도 하는데, 은퇴는 자신의 자리를 다음 사람에게 내어주고 물러나는 일이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회개와 천국의 운동으로 뜨거웠던 유대와 요단강 주변을 비우고 고향으로 떠나셨다.

공관복음은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이후에 있었던 일로 붙여 기록한다(마태복음 4장; 마가복음 1:13-14; 누가복음 4:13-14). 예수님께서 물러가신 것은 패배가 아니었다. 심지어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에 의해 갈릴리로 돌아오셨다고 적고 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물러나신 것은 성령님께서 적절하게 결정하신 것이었다.

나는 예배에 관한 결정을 각 교회들이 사려 깊고 면밀하고 그리스도인답게 직접 내릴 수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다른 요소들이 많이 붙어 있었다. [전문 보기: 코로나19, 그리고 ‘물러남’의 새로운 시각]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세기 49:22)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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