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품고 살아갈 단어
상태바
내가 품고 살아갈 단어
  • 이진경
  • 승인 2020.0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선생 투병일기

 

ISTOCK/Elena Sharipova
ISTOCK/Elena Sharipova

2월 17일 월요일 ‘몸의 반응과 영혼의 반응’

간밤에 혹독하게 앓았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일어나니 아침이 돌아와 통증이 덜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 살았구나!’ 안도의 한숨이 내쉬어졌다.

어제 아침과 낮까지만 해도 몸은 계속 회복세에 있었다. 수술 부위나 배액관(수술 부위의 피를 받아내는 장치) 삽입 부위가 놀랄 만큼 통증이 없어서 집안을 사뿐사뿐 흥겹게 걸어 다녔다. 하지만 저녁 무렵부터 쇄골과 갈비뼈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배액관이 삽입된 부분이 뭔가 잘못되었을까 염려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누우니 어떤 자세로 누워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전체적으로 아팠다. 염증이 났을까? 그렇다면 열이 날 텐데. 통증 자체도 힘들지만 통증으로 인해 무언가 잘못되었으리라고 상상하고 염려하게 되는 것이 더욱 힘들다.

그렇게 기도했는데, 통증이 덜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내가 이 병에서 나으면 어떻게 살겠다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기도까지 했는데…, 내 결정적인 기도는 역시 안 들으시는 걸까. 나에게 고난을 주셔서 더 성숙시키려는 의도라면 그렇게까지 괴롭히시지 않아도 될 텐데…

그리스도인은 고난이 다가왔을 때 이중고통이 있다. 이런 고통을 의도적으로 주시진 않았겠지만 허락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생각되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어느 정도, 인생이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나이가 되면, 아주 중요한 것―예컨대, 이 병에서 완치되게 해달라는—을 간구해도, 두려움이 남아 있다. 정말 그렇게 해주실까? 그것이 하나님 뜻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언제나 내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크신 분 아닌가? 그래서 더 큰 뜻과 계획을 위해, 나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신다면…. 이런 생각들이 은연중에 내 머릿속에 배여 있는 것 같다.

만약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그저 ‘운이 없다, 아니면 내가 잘못해서, 환경이 잘못되어서 이렇다, 인생이 뭐 이렇지’ 하고 단순하게 분노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과 공의이신 하나님이 왜 별로 불필요해 보이는 고통, 굳이 내가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고통을 허락하시는 걸까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세상 끝 날까지 붙들고 싶은 바로 그것, 즉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이시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때만큼 괴로울 때가 없다. 어젯밤이 그랬다. 

“이제 그만요. 제가 그렇게 기도했잖아요. 정말 많은 것을 내려놨고, 지금도 내려놓고 있고, 앞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겠다고까지 말씀드렸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아프네요. 

어떤 사람은 뇌출혈 때문에 십 수 년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거의 평생을 고통 가운데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내버려두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완치되게 해달라는 제 기도도 들어주지 않으실 건가요?

그러면 어떻게 주님을 신뢰하라는 건가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성경 말씀대로 평강만 주시고 다른 건 주지 않으실 건가요?” 

이런 기도를 했다. 하지만 누워서 끙끙 앓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플 때 난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나. 결국 하나님이다.

때로 원망하고 분노하고 힘들어 해도, 사람 가운데는 이 아픔을 대신해주거나 건져줄 이가 아무도 없고, 사랑이시면서 이 모든 것, 무엇보다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밖에 내가 의지할 데가 없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위하시는지 의심하면서도 나는 하나님께 내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만큼 하나님은 나와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밤에 진통제를 한 알 더 먹고 잠들었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불편하게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 병원에 연락했다. 병원 측의 설명에 의하면 염증이 난 것 같지는 않은데 좀 더 분명하게 현 증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당일 진료 예약을 하고 오라고 했다. 

병원에서 한참은 기다려야 하리라 각오하고 갔는데 도착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진료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날 수술하신 의사 선생님이 배액관 삽입 부분을 만져보고는 덤덤하고 무뚝뚝한 말투로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멀쩡하잖아요.

수술 아주 잘되어 있어요.” 말씀하시곤 끝이었다. 염증이 생겼을 것이라든가, 그 부분이 잘못 연결되어 있거나 쏠린 것 같다는 것은 모두 내 느낌이었음이 확인되었다.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거즈도 좀 더 단단한 것으로 갈자 통증도 나아졌다.

집에 돌아와 염치 불고하고 감사기도를 드렸다. 나는 어젯밤 예수님이 내가 탄 배에 계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믿지 못한 채 풍랑을 보고 다급히 예수님을 깨운 셈이었다.

“뭐하고 계세요, 예수님! 이러다 죽게 생겼어요!” 항암치료를 할 때에도 늘 내 영혼을 채워주시고 항암 부작용이 최소화되는 데 숱하게 응답해주셨는데, 통증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하자 그 기억과 내 안의 증거들이 깃털처럼 날아가 버렸다.

내가 오늘 경험한 것을 몸에 새기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돌아가 깊이 감사드리고 다시는 똑같은 불신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할 필요가 있었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고통의 집합체인 몸에 이상이 생기니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다.

몸의 통증에 대한 반응보다 내가 경험해온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더 빨랐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이토록 엎치락뒤치락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모든 솔직한 이야기와 마음을 받아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전문 보기: 내가 품고 살아갈 단어] 

 


이진경 CTK 창간에 힘을 보탰고, 에디터로 일했다. ‘싱글 이야기’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암 투병 중에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좋은 죽음 나쁜 죽음」, 「감각의 제국-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감각의 모든 과학」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