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아직도 “신령과 진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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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아직도 “신령과 진정”으로 ?
  • 권해생
  • 승인 2020.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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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렇게 예배라는 말을 좋아할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예배를 기뻐하시고, 예배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예배에 관한 중요한 본문 중의 하나가 요한복음 4:23-24인데, 오랫동안 이 구절은 사람들에 의해 오해를 받아왔다. 

가장 큰 오해는 개역개정 이전에 있었던 개역한글의 번역에서 비롯된 듯하다. 개역개정이 “영과 진리”로 번역하였지만, 그전에 개역한글은 “신령과 진정”이라고 번역하였다.

사람들은 “신령”이라는 말에서 거룩하고 엄숙한 종교적 분위기를 연상하였고, “진정”이라는 말에서 진심을 다해 정성으로 예배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오랫동안 한국 교회는 하나님께서 종교적으로 엄숙하게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찾으신다고 믿었다. 과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 예배는 이렇게 인간의 노력으로 드리는 예배일까? 예배는 마땅히 정성스럽게 드려져야 하지만, 과연 이 본문이 그런 뜻일까?

개역개정이 헬라어 원문에 입각해서 “영과 진리”라고 바르게 번역하였지만, 여전히 교회 현장에서는 두 가지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첫째, 읽기는 “영과 진리”라고 읽지만, 실제로는 예전 개역한글의 의미를 여전히 떠올린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노력이나 정성을 강조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떠올린다.

둘째,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면, 이러한 예배만큼 중요한 예배가 없다. 그런데 설교나 성경공부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좀처럼 부각되지 않는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깊은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추상적으로 혹은 피상적으로만 가르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바른 의미는 무엇일까? [전문 보기: 아직도 “신령과 진정”으로?]

 


권해생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신약학 교수, 작은목자들교회 협동목사. 「요한복음 주석」(고신대학교출판국, 2017)의 저자. 이 글은 이 책의 일부의 수정,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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