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하루씩만 살아요! [구독자 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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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하루씩만 살아요! [구독자 전용]
  • 이진경
  • 승인 2020.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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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생 투병일기

4월 9일 목요일 “역경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

열한 번의 방사선치료를 끝냈다. 이제 열일곱 번 남았다. 지금까지 만 9개월에 가까운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뛰어넘어야 하는 몇 번의 고비가 있었는데 이번 방사선치료의 고비는 피로감과 무기력이다. 몸과 마음에 에너지가 돌지 않아, 저 밑바닥에서부터 펌프질을 해야 할 정도이다.

하루 중 그렇게 좋아하고 간절했던 기도 시간도 가끔 빠뜨리는 날이 생겼다. 무엇보다, 내 인생에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심지어 항암치료 때도 경험한 적이 없는) ‘입맛 없음’을 실감하면서 입맛이 있었던 게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입맛 없는 사람은 살이 찌지 않으니 관리할 필요가 없어서 좋겠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철없는 생각이었던지.

입맛이 없어지니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밥은 모래알을 씹는 것 같고, 어떻게든 맛있는 음식을 생각해내던 뇌는 정지한 것 같다. 맛있는 것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사라졌다. 

사실 치료를 받는 동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고, 아무 느낌도 없다. 방사선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잠시 누워 있다가 오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방사선을 쬐는 부위가 불긋불긋해지고 따가워지며, 점점 피로감과 무기력이 심해지고 식욕이 떨어지며 우울감이 찾아온다. 매일매일 1〜2분의 방사선인데도 이토록 몸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생각해보니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자체가 방사선을 쬐는 것 같을 때가 참 많은 것 같다. 각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욕, 자기 영광에 대한 욕망 등이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거대한 방사선 세계를 만들어간다.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 존재하는 통념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에 늘 노출되어 있다 보면 자연히 피로감과 무기력, 우울감이 찾아든다. 

이럴 때 잠시라도 하나님의 빛을 쬐는 건 강력한 힘을 지닌다. 처음엔 잘 모르지만, 매일매일 잠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꾸준히 가지면 내 안에 어떤 힘이 생겨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요즘 나는 매일 아침 시편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면서 내게 다가온 한 구절을 붙들고 하루 내내 순간순간 떠올리고 되뇐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니, 내게 두려움이 없습니다.”(시편 56:11) “내 마음이 약해질 때, 땅 끝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내 힘으로 오를 수 없는 저 바위 위로 나를 인도하여 주십시오.”(시편 61:2)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이시니, 백성아, 언제든지 그만을 의지하고, 그에게 너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라.”(시편 62:8) 방사선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 뒷산에 오를 때에도 그 하루의 말씀을 기억한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오르내리며 그 말씀을 속으로 되뇔 때 잔잔하고도 단단한 힘이 내 안에서 샘솟는 것을 경험한다. ‘말씀이 살아 숨 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나는 걸으며 암송하고 기도할 때 그것을 느낀다. 

세상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지 않으면 내 영은 금세 세상의 영으로 잠식된다. 이것은 암을 맞이한 후, 지난날을 돌이켜보았을 때 깨닫게 된 것이다.

암이라는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닫고 그것을 추구하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특별한 고난이 없었던 때에는 많은 것이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였고, 그래서 쉽게 유혹에 빠지며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착각하기도 했다.

내 욕망, 내 바람이 충족되었을 때 잠깐씩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것을 행복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암 투병을 하며 주님과 긴밀히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경험하게 되면서 그때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

세월을 견디어낸 책들이나 명설교자들의 설교에서 나온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이해되는 행복이 있다. 그 전까지 마음속 깊이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부셔하고 황홀해하게 되는 행복이 있다. 내 곁에 있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깨닫고, 날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말할 수 있는 행복이 있다.

베란다에 심은 상추 모종에 물을 주며 생생하게 자라나는 생명에 기쁨을 느끼는 행복이 있다. 수술 후 그토록 아팠던 팔의 통증이 점차 사라지고, 발바닥 통증과 다리의 근육통이 나아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경험하는 행복이 있다.

“역경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 영성 작가 조앤 치티스터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삶은 각각 분리된 순간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이 연결되어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각각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경험과 순간을 깊이 파헤쳐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라고 권한다. 예기치 못한 때에 맞이한 암 덕분에 나는 깊은 육체의 고통도 맛보았고, 과연 회복될 수 있을까 하는 불신의 순간도 맞이했고, 차츰 진행되는 회복도 경험했다. 고통의 골짜기를 건너면서 삶의 눈부심도 경험했다. 골짜기가 깊을수록 그곳을 헤어 나왔을 때의 빛은 딱 그만큼 밝았다.

예전이라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들이 깊이 와 닿고, 다수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아도 나 자신의 행복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단 하루, 단 한 순간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정성껏 보내는 법도 익혀가고 있다. 

이렇게 내 것이 된 하루가 모여 가니, 이전보다 몸의 한계는 여실하지만 삶의 기쁨은 확실히 크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이 모든 순간들이 한 컷 한 컷으로 연결되어 내 인생이라는 잘 짜인 드라마로 완성될 것이라 믿으면 희망을 품게 된다.

“우리는 환난을 자랑합니다. 우리가 알기로, 환난은 인내력을 낳고, 인내력은 단련된 인격을 낳고, 단련된 인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로마서 5:3-4) 아멘. 

 

4월 13일 월요일 “황금색 보따리는 황금 보따리!”

수술 때 나와 같은 병동을 쓴 사람이 있었다. 내 맞은편 침상에 누운 환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술도 같은 시간대였고(동시에 두 명을 수술한 것 같았다), 수술방법도 똑같았고, 나이도 같았다. 회복실에서 깨어났을 때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요” 하는 신음소리를 제일 먼저 들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의 목소리였다. 퇴원 전 교육 시간 때 그녀는 먼저 자리에 앉고는 나를 옆에 앉게 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주고받자고 했다. 나는 그녀가 손글씨로 적어준 전화번호를 두고도 저장해두지 않았는데 퇴원 후 며칠이 지나 전화가 왔다. 그녀였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물어왔고, 서로 회복 상황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그녀는 나이도 같은데 그냥 친구하자고 하면서 “진경아” 하고 대뜸 말을 놓았다. 화끈한 사교성이었다.

경북 영주에서 더 들어간 지역에서 살며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녀는 인정받는 강사이자 원장이었다. 품이 넓은 인심이라, 내가 한달살이로 몇 군데 지방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했더니, 소백산 근처인 자기 집 근처로 오라고 했다.

살아보다가 정착하고 싶으면 자기 학원 교실을 내주겠다며 거기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라고 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5분이면 소백산, 5분이면 시내에 갈 수 있는 시골이라는데 커피 한잔만 마시면 모두 언니, 오빠가 되는 곳이라며 자기랑 같이 놀잔다.

아이는 없고 남편과 강아지들과 사는 그녀는 지금 자기 집을 리모델링하려 하는데 그러면 2층을 내게 세 주겠단다. 듣기만 해도 든든해지는 말이다.

얼마 전엔 엄마와 집 근처 조용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내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벌써부터 항암 선배로서 조언을 해줄 수 있게 되다니 감사했다.

같은 병원, 같은 의사에게서 치료를 받기에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는데, 그녀는 지금 강원도 태백인 친정에 와 있다며, 자기 엄마한테 내 얘기를 했더니 냉이와 도토리묵을 보내주시겠다고 내 주소를 불러달란다.

그러면서 “도토리묵 만들 줄 아나?” 물어왔다. 당연히 모르지. 인터넷 레시피로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골 인심은 레시피로는 안 되겠던 모양이다.

어머님이 30년 된 간장으로 도토리묵 만들어 보내시겠다고. 오후에, 태백에서 키운 냉이와 직접 쑨 도토리묵을 한가득 택배로 보냈다고 연락이 왔다. 딸내미는 항암치료 중인데, 같은 병동에 입원한 수술 동기동창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이런 선물보따리를 안겨주시는 강원도 태백의 어머님.

우리는 그렇게 해서 서로 마음이 담긴 선물들을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불쑥불쑥 전화를 해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의 도시 속 자연 이야기와, 그녀의 자연 속 자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항암 선배로서 후배인 그녀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조언과 격려를 해줄 수도 있었다. 

오늘은 그녀가 나에게 병원에 언제 오냐고 문자를 보냈다. 그녀는 항암치료, 나는 방사선치료를 하는 날이었다. 마치 근처 동네에 마실 나온 사람처럼 그녀는 “몇 시에 와?” 물었다.

3월 말부터 방사선치료를 시작한 나는 피로감과 무기력, 우울감이 심해져가고 있었다. 내 상태를 말했더니, “너 주려고 계란 가져왔는데 주차장에다 놓고 갈까?” 한다. 항암치료 받는 것만도 벅찰 텐데, 여기까지 나에게 주려고 세 시간 넘는 거리에 계란을 가져오다니.

그 천진함과 마음 씀씀이에, 무기력해졌던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그녀를 만나러 항암주사실에 가니 얼마 되지 않은 과거가 생각났다. 내가 지나왔던 어려운 길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오고 있는데 나의 힘들었던 항암치료 기간이 생각나 마음이 아리기도 하고,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기도 했다.

수술 이후 직접 대면하는 것은 처음인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 숙연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항암주사실에서…. “우리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하고 반가운 마음에 악수를 했다. 

항암 탈모로 인해 모자를 쓰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는 우리는 “더 예뻐졌네!” 서로 칭찬해주었다.

수술 직후의 입원실 모습보다 예뻐지지 않기는 힘들다. 혹시나 몰라 그녀는 간호사실에 계란 보따리를 맡겨두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딱 그런 보따리였다. 황금색 보자기에 싸둔 커다란 계란 두 판 보따리. 그녀의 집에서 항생제 없이, 스트레스 없이 키운 청계의 청란이란다.

“비린내 하나 없고 쫄깃쫄깃할 거야.” 나는 시골에서 올라온 그 무거운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방사선종양학과 진료도 보았다. 이 계란 보따리가 너무 좋았다. 어수선한 코로나 시국과 암 투병으로 익숙해져버린 병원 생활 속에서 이 계란 보따리는 어떤 희망의 상징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남수단의 톤즈에서 의료선교 사역을 하셨던 고 이태석 신부님의 강연 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아이가 아파서 의료원에 입원해 있을 때 그 아빠가 수수죽 한 그릇을 갖고 왔단다.

그런데 둘이 앉아서 수수죽을 먹지는 않고 서로 째려만 보고 있었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아빠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못 드신 걸 아는데 아빠 먼저 드시라고 하니까 아빠가 한사코 안 먹겠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이태석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불쌍한 장면입니까? 아니죠. 행복한 장면이죠.”

빛이 어느 곳에나 쏟아져 내릴 때는 그 빛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지 못한다. 캄캄한 곳에 오랫동안 갇혀 있다가 작은 구멍으로 빛이 한 줌 내려올 때 그 빛은 구원의 빛이 된다. 삶의 위기와 고난 가운데서만 발견할 수 있는 보물―작은 것에 감사하고, 경탄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고, 기쁨을 새기는 것―이 있다. 그 보물을 마음속에 잘 간직하도록 위기와 고난이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4월 14일 화요일 “꼭 하루씩만 살아요!”

코로나19로 우리 사회 전체가, 아니 세계 전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조금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작년의 내가 암에 걸린 줄 모르고 7월까지 열심히 일하며 지내고 있었던 때처럼. 사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본질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모든 계획이 허사로 돌아갈 때 말이다. 

수의사인 내 친구도 계획이 허사로 돌아가는 일을 최근에 겪었다. 다니던 병원을 그만두고 개원을 하기 위해 임대계약을 하려 했는데, 계약을 하려는 순간 건물주가 마음을 바꾼 것이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보고 있지만 좀처럼 좋은 자리가 나타나지 않아 기분이 가라앉은 친구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영성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건 결국 ‘지금 여기’라 하더라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 말야.

그런데 그게 아플 때 가장 잘 적용되더라. 아플 땐 미래는 막막하고 당장 내일 일도 모르지. 게다가 몸의 고통이 있을 때는 그 하루 동안 통증을 견뎌내는 것도 힘드니까 말이야. 그래서 딱 하루씩만 살게 돼.

그럼 또 하루가 감사하게 지나가더라. 그러니 너도 계속 자리를 알아보면서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만 살아.” 유머러스한 친구는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래, 맞아. 나도 예전에 일이 정말 안 풀릴 때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생각했었지.

우리 할머니 유언이 뭔지 알아? ‘하루를 살면 하루 고생하고, 이틀을 살면 이틀 고생한다’야.” 우리는 깔깔 웃었다. 서로 어려움을 나누면서도 기어이 깔깔대는 웃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대장암을 앓으셨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 〈어떤 결심〉 중에 이런 글귀가 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아플 때/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중략)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멀리 내다보지 않는 것만큼 걱정 근심이 줄어들게 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물론, 사는 게 신나고 재밌고 즐거울 때―이런 날이 인생에 과연 많을까?―에야.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하는 것이 근사하게 느껴지겠지만, 어려움이 닥쳐 현실이 되었을 때에는 당장 하루를 사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데에만도 에너지가 든다. “하루만이 전 생애”라는 생각은 오늘 하루를 얼마나 전심으로 살게 만드는지! 

내 요즘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베란다 텃밭 가꾸기다. 텃밭이라 해봤자 베란다의 큰 화분 두 개에 각종 상추와 치커리, 케일, 바질 등을 심어놓은 것이지만, 날마다 얼마큼 자랐는지 확인한다. 적당히 자란 것은 떼어내 아침이나 점심식사에 곁들여 먹으면서 “아, 내가 키운 것이 얼마나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고 달콤한가!” 감탄한다. 사흘에 한 번씩 베란다의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날은 “계속해서 예쁘게 잘 자라라!”고 말을 건네고, 물주기를 끝낸 다음엔 바닥 청소까지 깨끗하게 하서 땀을 뺀다. 

그 외에도 매일 뒷산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햇살 아래 한 시간 정도 걷기운동을 하며 비타민D를 생성시킨다. 작년엔 일 때문에 바빠 꽃이 꽃인 줄도 모르고 지나왔지만, 올해는 원 없이 봄을 보았고, 냄새 맡고, 만졌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 곳을 다닐 순 없었지만 뒷산만큼은 부지런히 걸어 다녔기 때문이다.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철쭉이 언제 피어나고 지는지, 어떤 순서대로 꽃들이 피어나는지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또, 예전엔 매일 마시던 커피를 건강상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줄이면서, 커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맛있어, 맛있어!”를 내뱉으며 행복해한다. 방사선치료를 하고 나오면서 오늘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병원을 다녀왔다고 안도한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방사선치료 초기에 떨어진 입맛이 다시 회복된 데 대해 감사한다.

잠들기 전에 하루를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하루 동안 내게 어떤 말씀을 하셨고, 어떤 순간에 특별히 개입하셨는지 반추해본다. 크게 아프지 않고 하루를 나게 하신 데 대해 감사한다.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앞으론 어떤 일이 벌어질까?’를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보다 몇 백 배는 평온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래를 생각하면 암담하지만 오늘 하루만 놓고 보면 행복하다. 

지금은 보름 전에 주문한 빵이 온라인 주문량 폭증으로 오늘 도착한다고 하여 그것을 기다리는 중이다. 설탕을 첨가하지 않고 만든 100퍼센트 통밀빵의 맛을 궁금해 하며 기다린다. 이것이 나에겐 ‘꼭 하루씩만 사는 방법’이다. CTK 2020:5

 


이진경 CTK 창간에 힘을 보탰고, 에디터로 일했다. ‘싱글 이야기’를 연재했으며, 지금은 암 투병 중에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희망의 속도 15km/h」, 「좋은 죽음 나쁜 죽음」, 「감각의 제국-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감각의 모든 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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