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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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 임지원
  • 승인 202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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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줌마, 공감일기

우리 교회에 ‘부부사랑회’라는 부서가 있다. 40세 이하의 신혼부부와 기혼가정을 위한 공동체다. 우리 부부는 그 부서의 초창기 멤버로 나름 열렬히 봉사하며 섬겼다.

우리 집 여름휴가는 늘 부부사랑회 여름수련회였다. 봄, 가을 소풍도 마찬가지. 그럴 수 있었던 건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생활을 함께 한 남편의 동기들, 내 동기들 대부분이 그 당시 이 부서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커플이 우리처럼 교회 안에서 교제하고 부부가 됐고, 일부는 교회 밖에서 신붓감과 남편감을 데려와 결혼과 동시에 전도의 대업을 이뤘다.

이후, 각 가정에서는 하나, 둘, 심지어 셋까지 출산을 해내며 하나님 나라 부흥에 일조했다. 그 당시, 우리 부부는 대략 결혼 사오년 차정도 된 초보 부부 중 하나였고, 위로는 결혼 십년 차 이상 된 선배 부부들도 여러 커플, 그분들은 정말 봉사 대장, 믿음 용사였다. 나는 뭐든지 따라하고 싶었다.

여름 수련회를 가서 바비큐 파티를 한 적이 있다. 남편들은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느라 분주했고, 아내들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미리 만들어 온 밑반찬을 접시에 담고, 거대한 전기밥솥에 밥을 지었다. 아이들까지 포함하니 나름 대가족이었다. 봉사대장 선배님이 밥솥을 열자 고소한 밥 냄새와 함께 하얀 김이 훅 올라왔다. 그리고 주걱으로 밥을 푸는데, 양이 적은 밥을 먼저 담는 거다.

그러면서 이 밥이 아이들 밥이라고 한다. 엥? 늘, 언제나, 항상 어른의 밥을 먼저 퍼야 한다고 배웠는데…. 내가 의아해 하는 걸 눈치 챈 선배님은 아이들 밥을 나중에 푸면 뜨거워서 위험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 적당히 식어 먹기가 편하다며 평소에도 아이들 밥을 먼저 담는다는 거다. 그리고 어른들은 뜨거운 것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마지막에 담으면 오히려 취향저격이라고. 와! 신선한 발상이다. 뭔가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취지까지 이토록 완벽하다니.

나는 지금도 밥솥을 열면 우리 집 막내 밥을 먼저 퍼 한 쪽에 둔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의 밥을 식탁에 놓은 다음, 그 한 쪽에 두었던 밥을 우연이 앞에 놔준다. 국도 마찬가지. 지금도 나는 그분들을 바라보고, 따라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초보 부부들은 정신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모임 시간 직전에 싸움이 나 예배에 불참하기도 했다. 부부가 싸운 후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수련회 참석 중에도 싸우고, 표정관리를 못해 주변에서 “쟤네 또 싸웠어?” 쑥덕쑥덕…. 그랬다.

우리 뿐 아니라 어떤 부부는 모임에 와서 부부싸움이 나는 바람에 먼저 돌아가기도 했으며, 심지어 남편과 싸우고 교회 밖 골목에서 울고 있는 아내를 달래서 데리고 와 남편과 화해를 시키기도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때 허.물.없.이 참 잘 지냈다.

 

더 적극적인 해결을 원한 부부들은 그 당시 부부사랑회의 담당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서로의 장점쓰기 같은 과제를 하며 관계도 회복하고, 셋째도 출산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 와중에 남편과 싸운 이야기를 구구절절 써대는 한 아줌마가 있었으니, 지금 공감일기를 쓰고 있는 “접니다!” 우리 집도 그렇다며 댓글도 달리고, 다들 재밌어하기에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우리 부부의 민낯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그 홈페이지가 사라지고, 내 글도 사라지고(정말 다행이다!),

우리부부는 더 이상 초보 딱지를 붙일 수 없는 결혼 이십년 차 부부가 되고 말았다. 내가 초등부 교사를 하면서 가르쳤던 남자아이가 지금 부부사랑회 멤버다. 이제 그런 글은 쓰면 안 될 거 같은 느낌이 확실히 온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편협하고 주관적으로 써내려 간 그 글들을 다시 쓰고 싶은 욕망이 요즘, 강렬하게 들끓는다.   

코로나19로 우리 가족은 1월 말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열 번째 확진자, 열한 번째 확진자…. 지금은 호사스러워 보이는 언급조차 두려움에 떨며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부턴가 백 단위, 천 단위로 늘어가는 확진자 소식에 가슴이 조여드는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전문 보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임지원 주부. 딸 둘과 남편, 넷이서 경기도 일산에서 씩씩한 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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