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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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
  • 튤리안 차비진 | Tullian Tchividjian
  • 승인 20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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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글로벌 가스펠 프로젝트 Global Gospel Project]

 

나님이 당신에게 말을 건네신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마 불타는 떨기나무나 하늘에서 내려온 비둘기를 통해 말씀하시던 때처럼 쉽게 알아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주요한 통로가 성경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철저한 신비로 여기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이건 정말 굉장한 설교책이로군!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데?” <심슨 가족>의 호머 심슨이 성경을 가리키며 했던 말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성경은 말 그대로 설교책이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말해준다. 성경(BIBLE)의 머리글자를 재치 있게 풀어낸 문장이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칙들”(Basic Instructions Before Leaving Earth). 교육이나 문화의 영향 덕에 우리는 종종 성경의 핵심이 선한 삶을 위한 규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물론 성경에는 규칙들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놀라운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성경은 무엇을 위한 책인가? 성경은 어떤 한 가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성경의 초점은 두 가지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두 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첫째는 하나님의 요구와 관련한 말씀인 율법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베풂과 관련한 말씀인 복음이다. 성경 어느 페이지를 펴든 당신은 이 둘 중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20:12)와 같이 뭔가를 요구하는 본문(율법)이 나오거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와 같이 뭔가를 베푸시는 본문(복음)을 만난다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 이 두 가지 모두 선하고 필요하지만(모두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하는 역할은 서로 매우 다르다.

율법과 복음의 역할을 잘못 이해하면, 우리는 복음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율법에 의존하거나, 율법만이 이룰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복음에 의존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균형 잡힌 행동

그렇다면 두 말씀의 역할은 각각 무엇인가? 율법과 복음은 완전히 반대이면서도 철저히 서로를 보완한다. 바울은 로마서3:20에서 율법이 세상에 온 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라고 선언한다.

다시 말해 율법의 역할은 죄를 드러내어 슬퍼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율법에는 죄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것은 복음만이 할 수 있다. 율법은 우리를 꺾을 수 있으나 치유할 수는 없다. 율법은 좌절하게 할 수 있으나 구원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이 필요하다. 복음의 기능은 죄를 없애고 치유하며 부활시키고 구원하는 것이다. 율법이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이라면 복음은 마지막 말씀이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직면하게 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한다. 율법은 우리의 유죄를 고발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무죄를 선언한다. 율법은 우리의 잘못을 폭로하지만, 복음은 우리의 혐의를 없애준다.

하나님의 두 가지 말씀의 역할을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율법을 폐기하자!”고 외치는 것은 매력적일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한 가지 말씀만 취하지 않는다. 율법 또는 복음이 아니라, 율법 그리고 복음이다. 따라서 복음에 다다르기 위해 율법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무너뜨리는 율법의 역할이 없다면 회복하는 복음의 역할도 없을 것이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아버지는 집 떠나는 아들에게 달려가 그를 말리며 끌어안지 않았다. 아들을 끌어안은 것은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였다.

내 인생에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부모님은 나를 떠나보내기로 했고, 그리하여 하나님이 내 인생을 무너뜨리게 했다. 어머니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휘두르며 파괴하는 작업이 끝나고 나면 언제나 복음이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율법이 파괴하는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우리의 신앙이 한 가지 말씀으로만 구성되어 있다면(율법이든 복음이든) 모든 것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그 한 가지 말씀이 율법이라면 사람들이 죄를 지었을 때 오직 정의만이 실현될 것이며 그들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그 한 가지 말씀이 복음이라면 우리는 죄의 대가를 무시하고 법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부정하게 될 것이다.
 

값싼 율법

흔히 우리는 값싼 은혜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한탄하지만, 정말 큰 문제는 값싼 율법이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완전한 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일지라도 무엇이든 받아주신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값싼’ 율법이다.

은혜를 들먹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자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사실 정반대다. 장로교 신학자 J. 그레셤 메이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율법을 경시하는 태도는 언제나 율법주의를 야기하고, 율법을 중시하는 태도는 은혜를 따라 살아가는 구도자를 만든다.”

율법을 경시할 때 율법주의가 발생하는 이유는, 율법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규칙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즉, 율법을 가볍게 다루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킬 만한 정도로 하나님의 거룩한 기준을 낮춘다.

수필가 존 딩크에 따르면, “값싼 율법은 완전함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를 약화시키며, 그 과정에서 낡은 피조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자신이 만든 의를 추구하게 한다.…값싼 율법은 우리가 타락했다고 말하지만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담고 있지는 않다.…그것이 바로 값싼 율법이라는 이단이요, 거짓된 복음이다. 그것은 은혜를 값싸게, 아니 무효화 한다.”

하나님의 율법이 확고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만 은혜(더 정확히 말하면 복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된다. [전문 보기: 두 가지 언어로 된 하나님의 말씀]

 


튤리안 차비진 플로리다 포트로더데일에 위치한 코럴리지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며, 「예수로 충분합니다」(두란노), 「은혜의 추격전」(두란노)의 저자다. 이 글은 <Liberate 2013>의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며, www.liberate2014.com에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Tullian Tchividjian, "God's Word in Two 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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