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꺼기를 제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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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꺼기를 제거하라
  • 고든 맥도날드 | Gordon MacDonald
  • 승인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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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정비하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한때는 잘 달렸던 교회들이다. 하지만 엔진 관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찌꺼기가 서서히 쌓이기 시작했고 추운 아침이 오듯 영적 어려움이 닥치자 모든 것이 마비된 것이다.

나는 교회 정비의 이면에 있는 신학에 주목하고 싶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가 떠올랐고 성경이 말하는 일곱 교회의 문제와 그것을 지적하는 방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정비가 필요한 상태였다. 저마다 경쟁이라도 벌이듯 찌꺼기를 쌓아올렸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대신해 일곱 교회를 엄중히 꾸짖었다. 그의 말을 무시했다가는 일곱 교회는 폐차장 신세를 면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오늘날 비슷한 처지에 있는 교회가 많다. 다음과 같은 말들은 교회에 찌꺼기가 쌓였다는 표시다. “모든 게 예전만 못해”, “예배가 식었어”, “리더들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 것 같아.”

비전이 없을 때, 20년 전이 더 좋았다고 생각할 때, 불신이 만연할 때, 소문과 험담이 나돌 때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고 찌꺼기가 쌓이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라고 했지만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문제마다 갈등이 불거지고, 좋은 사람들이 하나둘 교회를 빠져나가고, 봉사하고 섬기는 교인들이 줄어든다. 가장 불행한 경우는 따로 있다. 예수님을 풋풋하게 사랑하는 것보다 프로그램을, 삶을 바꾸는 것보다 전통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죄가 움트고 믿음은 식고 관계는 부패하고 대화는 사라진다.

찌꺼기가 쌓였던 일곱 교회 이야기로 돌아가자.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지도에 따라 일곱 교회를 하나씩 꾸짖는데 거기에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듯하다. 증상은 저마다 다르나 치료의 바탕은 동일하다. 여기에 '교회 정비의 신학'이 있다.

찌꺼기가 쌓이는 교회에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정비의 얼개와 과정을 알아보자.
 

 

권위

모든 편지의 첫 문장은 “말씀하신다”로 끝난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도 흔히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라고 외쳤다. 누구의 말씀인데 주목하지 않겠는가!

사도 요한은 사실상 이 편지가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신비하게 묘사된 그리스도가 이 메시지를 직접 보냈다는 것이다. “내가 성령에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교회…로 보내라.’”(계1:10-11)

그러고는 빛나는 예수님의 모습을 놀랍게 묘사하는 대목이 이어진다. 머리와 머리털은 눈과 같이 희고, 발은 풀무불에 달구어낸 놋쇠와 같고, 음성은 큰 물소리와 같고, 입에서는 날카로운 양날 칼이 나왔다. “얼굴은 해가 강렬하게 비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대단한 묘사, 대단한 그림이다!

“그를 뵐 때에, 내가 그의 발 앞에 엎어져서 죽은 사람과 같이 되니.” 이는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 경외심에 할 말을 잃고 경청하고 순종할 자세를 갖춘 사람. 성전에 계신 주님의 환상을 보았던 이사야가 생각난다.

이것이 참된 정비의 시작이다. 리더들과 교인들이 잠잠히 엎드려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 파워포인트도 끄고 오르간 소리도 그치고 화려한 조명도 끄고 컨설턴트도 부르지 않는 것. 권위를 지니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

경청의 중요성을 잘 아는, 라르쉬 공동체의 설립자 장 바니에Jean Vanier의 말을 들어보라. “우리가 인내와 지혜로 십자가를 즐거이 지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야 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평화를 잃게 된다. 그분의 말씀을 경청할 시간을 내지 않으면 우리는 빛을 잃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의 모습에 이어 오늘날의 터키에 흩어져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이어진다. 그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음 구절은 대충 읽을 구절이 아니다.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날카로운 양날 칼을 가지신 분이…그 눈이 불꽃과 [같으신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일곱 영을 가지신 분이…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처음이신 분이 말씀하신다.” 이런 권위에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까?

이런 분의 말씀을 듣고도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 교회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권위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교회들의 습성 때문일 것이다.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1874-1936)이 [그의 소설의 등장인물] 브라운 신부의 입을 빌려 한 말이 있다. “자기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인 병이다.” 일곱 교회는 모두 자기에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헛치레를 부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밖에 없다. 정비가 필요한 교회들은 예수님의 말씀부터 들어야 한다. 일곱 교회는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전문 보기: 찌꺼기를 제거하라]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는 <리더십 저널>의 편집인이며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한국 IVP 역간) 등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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