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배우니 내려놓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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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배우니 내려놓음이 되었다
  • 홍승영
  • 승인 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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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가지__홍승영 목사의 목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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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화분 이야기다. 이사 간 집의 거실 천장이 낮아 키울 수 없게 되었다는 그 화분은 화물차를 타고 와야 할 만큼 키가 컸다. 사람 키만 한 잎줄기에 1미터쯤 되 보이는 잎이 달려 있는 것이, 어느 카페에서 보았던 어린 바나나나무 같았다.

반짝이는 하얀 도자기 화분에 묻은 먼지를 닦던 전 주인도 이름을 모르겠다고 웃는다. 우리는 거의 바나나나무라고 확신했다.

“바나나가 열리겠느냐?”는 어린이들의 질문에 “내가 맛있는 것으로 사다 주겠다”고 대답하며 한철을 보냈다. 

잘 지내던 그 나무는 안타깝게도 교회 리모델링 공사 와중의 사고로 큰 잎줄기가 꺾이더니, 다시 새 잎줄기가 돋았다. 아담하게 돋는 어린 잎줄기를 본 후에야 우리의 바나나나무가 ‘극락조화’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스트레리치아 레지내Strelitzia reginae라는 본래 이름보다는 새를 닮은 꽃이 핀다 하여 흔히 극락조화라 부른다. 비슷한 몇 종류가 있다는데, 키우기는 쉽지만 가정에서 꽃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매년 분갈이도 하면서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나는 그냥 생명력 충만하게 끊임없이 솟는 잎을 사랑하기로 했다. 

교회에 왔으니 옛 사람은 벗어버려야 한다! 꺾여 사라진 본래의 잎줄기에 대한 미안함은 그렇게 정리했다. 새 생명은 풍성했다. 지금도 부지런히 잎을 내는데, 한동안 공책만 한 이파리를 내더니 올 해는 60센티미터쯤 되는 이파리가 나온다. 꼭 마늘밭의 마늘종 올라오는 모양으로 돌돌 말려 올라와 1미터쯤 자란 후에는 말아두었던 종이처럼 단번에 펼쳐진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새 잎이 너무 크다보니 제대로 펴지기도 전에 가로로 찢긴다. 찢긴 모양에 마음도 아프고 보기에도 지저분하여 이번에는 돌돌 말린 것을 직접 펴주기로 했다. 그런데 눈꺼풀 붙은 것처럼 잘 떨어지지 않고 상처만 난다.

아무래도 잎이 너무 마른 상태라서 그런 듯 했다. 붙어 있는 가장자리로 물을 조금 적시고 촉촉해지기를 기다리다가 ‘탁’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가장자리가 물어 젖자 잠시 후에 기다렸다는 듯이 저절로 확 펴졌다. 아마 자연 상태였다면 적절한 때에 빗방울이나 이슬을 만나 말린 것이 다 풀어졌으리라. 결코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만드신 것이 아니었다. 

억지로 떼어내어 원하는 결과를 이루는 것은 어렵다. 가끔은 성공하겠지만 그 성공의 그늘에는 어쩔 수 없는 실패도 새겨진다. 때때로는 억지로조차 할 수 없는 일도 만난다. 요즘의 코로나19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언제 다시 예전처럼 예배하고 말씀 배우고 사역하고 교제할 수 있을까! 최근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일상을 되찾아준 고마운 방역 책임자들의 표현이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은 결코 그 이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전쟁에서 혈투를 벌이며 사회를 보호했던 그들의 노고는 별과 같이 빛난다. 동시에, 한결같은 사명감으로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이 한 말은 비장할 뿐 아니라 앞이 캄캄하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그 말이 목회적 사형선고처럼 들렸다.

더 이상 주일 점심의 애찬을 함께 나눌 수 없다. 더 이상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뜨겁게 찬양하거나 기도해서는 안 된다. 군입대하는 아들들을 안아줄 수 없으며 갑자기 찾아온 암 덩어리를 붙잡고 기도하는 성도의 머리에 손을 얹을 수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근 100년간 한국 교회가 생명처럼 여기며 성취한 신앙의 유산이었다. 억지로 할 수는 있겠지만 자칫 성도와 교회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저 예배할 수 있는 상황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전문 보기: 기다림을 배우니  내려놓음이 되었다]

 


홍승영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요셉의 무성한 가지처럼(창세기 49:22)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아름다운 가지가 되기를 소망하는 장지교회 목사. 스무 살에 어린이 설교를, 서른 살에 어린이방송을 시작했고, 마흔을 조금 넘긴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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